남편·아내에게 정떨어진다고? ‘콩깍지’ 벗겨진 후의 사랑법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2023. 9. 9. 1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공정규의 ‘부부 뇌 설명서’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연애할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이렇게 이상화하는 경향 때문에 “콩깍지가 씌었다”라든가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다. 연애할 땐 노래방에서 애인이 노래를 부르고 60점 이하를 받아도 “어쩜 자기는 못 하는 것이 없구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다르다. 노래방에 함께 가지도 않는다. 만약 함께 가더라도 아내가 노래를 불러 점수가 95점 이상 나오면 “너, 나 모르게 자주 놀러 왔느냐”라고 아찔한 도발을 한다.

연애시절에는 상대방이 자신의 열등감을 만족시켜 주길 기대한다. 예를 들면, 얼굴에 자신감이 없는 남성은 얼굴 예쁜 여성을 찾고, 자신의 능력이나 재력에 자신이 없는 여성은 능력 있어 보이고 돈 잘 쓰는 남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열등감이나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대놓고 드러내진 않는다. 이에 서로가 서로의 속내를 모른 채 결혼한다.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면 각자가 품은 기대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실망의 시간이 시작된다. 얼굴이 예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화장발이었다든지, 돈 잘 써서 능력 있는 줄 알았더니 다 갚아야 할 카드빚이었다든지 하는 식이다.

연애를 할 땐 상대방의 장점이었던 것이, 결혼 후엔 단점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남자 친구가 유머러스하고, 상냥하고, 친구도 많다면 연애할 땐 즐겁다. 데이트할 때 맛집이나 갈 만한 곳을 남자친구가 잘 알고 있는데다, 남자 친구의 모임을 따라 함께 놀러 다닐 수도 있다. 결혼 후엔 이게 단점이 된다. 아내나 가정에 신경 쓰기 보다 친구들 만나길 더 좋아하는 남편이 되기 때문이다. 유머와 상냥함을 아내 말고 다른 여자들에게 써먹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과묵하고 진지한 사람과 연애하면 되는 게 아닐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발생한다. 처음 만났을 땐 과묵하고 말 없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믿을 만한 사람이니 함께하면 행복하리란 기대로 결혼한다. 결혼 후에도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집에 들어오면 적막한 공기가 나를 짓누른다.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아내의 예시를 먼저 들었지만, 남편의 시선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말을 재밌게 하는 여우 같은 여자친구와 결혼하면, 아내의 말이 너무 많아 견디기 힘들 때가 온다. 반대로 차분한 곰 같은 여자친구와 결혼하면, 아내가 너무 조용해 집안이 적막한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그러나 대부분이 놓치는 사실이 있다. 배우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배우자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변한 것이란 사실이다. 늘 같은 모습이었던 상대방에게 멋대로 콩깍지를 씌웠다가 벗긴 건 나다.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 연애는 환상으로 시작되지만, 결혼은 서로에 대한 비합리적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부부가 환상과 현실을 함께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가 되려면, 자기중심적 관점을 내려놓아야 한다. 

첫째, 사랑하는 것은 능동적 행위이다.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맞추어야 한다. 사랑은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둘째, 사랑의 문제를 상대방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다가 갈등이나 문제가 생기면 이를 너무 쉽게 상대 탓으로 돌린다. 즉, 상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상대를 만나면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키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도 고통은 반복된다.

셋째, 사랑을 방해하는 내면의 장애물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무의식과 아동기 감정 양식의 핵심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늘 벽에 부딪힌다. 내 문제부터 알아야 한다.

넷째,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집착, 과도한 희생, 회피, 증오로 이어진다. 서로 사랑하려면 타인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늘 같은 고통과 갈등, 그리고 좌절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결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면, 결혼할 것을 권한다. 결혼은 인생 성장과 행복의 최고의 기회이다. 

(*이 칼럼은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의 기고입니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