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생일잔치를 세 번이나... 나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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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 새로 출간한 책과 축하 꽃바구니. 새로 나온 책을 회원들에게 선물 주기 위해 쌓아 놓았다. |
ⓒ 이숙자 |
내 나이 팔순인 올해, 나이가 무슨 자랑도 아닐진대 어쩌다 시도 때도 없이 팔순이란 말을 외치며 살고 있다. 지난달 4번째 출간한 책 제목도 <80세, 글 쓰고 시 낭송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다.
팔순 생일잔치를 가족과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서울에 살고 있는 딸들 가족과 함께 했고, 또 한 번은 뉴욕에 사는 또 다른 딸이 방한을 해서 두 번째 생일을 했다.
어제는 예기치 않게 또 한 번의 생일잔치와 출판회까지 있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시 낭송 모임인 '한시예'가 준비한 행사였다. 올해 나에게 귀인이라도 찾아오는 운수가 있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살면서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행운 같은 날이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살면 그만인 삶이다.
팔순이란 '산수'라고 말한다. 병 없이 하늘이 내려 준 나이라고 표기돼 있다. 병이 없다는 말은 누워 있지 않고 움직이며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이해를 해야 할 듯하다. 나이 팔순인데 병이 없을 수는 없다. 아무튼 지금까지 살아 있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준비해야 하는 먹거리가 있다. 찻자리 준비는 내가 한다고 약속 한 터라 찻자리에 필요한 다구 소품을 준비할 때는 먼저 그 자리에 맞는 찻자리를 하기 위해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이 보기에 미적 감각과 그에 알맞은 도구의 선택과 운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기분이 좋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신경 쓰인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익숙하지만 며칠 서울 다녀온 후로 바쁜 일상에 피로가 가시지 않아 짐을 챙기면서 혼자 "이게 다시 할 일은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구시렁거린다. 이제는 짐을 챙기고 각가지 물건 보따리 싸는 일이 힘겹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 쌀 케익과 연차 케이크와 연차가 준비됐다. |
ⓒ 이숙자 |
어제는 보따리 보따리 쌓아놓은 짐을 들 수가 없어 손잡이 밀대를 이용해 차에 옮겨 싣고 장미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도 오시지 않았다. 내가 너무 빨리 온 것이다. 동행한 남편에게 부탁해 테이블 가져다 고정시키고 테이블 보를 깔아 주고 남편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나는 보따리에 쌓인 다기를 꺼내 세팅을 한다. 늘 해왔던 일, 찻자리 세팅을 하는 일은 즐겁다.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무슨 일이든 집중할 때 잡념이 없고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다. 글쓰기를 하고 시를 낭송하고 명상하듯 홀로 앉아 차를 마실 때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그냥 행복하다. 이제는 무엇이 부러운 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물건도 없는 나이다.
차츰 회원님들도 도착하고 회장님도 도착했다. 준비된 찻자리 앞에 둘러 서서 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 축하노래를 한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다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울컥했다.
어쩌다 시가 좋아 우연히 만난 인연들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들, 시와 함께 하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마음 또한 따뜻하고 속 깊은 분들이다. 요즘처럼 사는 일이 각박한 세상 속에도 이처럼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내 노년이 빛이 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무대는 분기별 나눔이 있다. 나는 지금 몇 번째 인생 무대에 서 있는지 셈을 해 보아야 할 듯하다. 모두에게 축하인사를 받고 나는 고마운 마음에 표현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웃기만 하고 있다.
회장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귀한 선물을 받았다. 지난번 엘도라도 여행 간 날 밤, 소파에 앉아 무심코 앉아서 턱을 고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모델이 된 그림이다. 마음에 담긴 선물은 그 여운이 오래간다.
나는 외롭지 않은 노년이다. 마음 안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나만의 아름답고 그립고 가슴 절절한 시어들이 나를 살게 한다. 낭송을 하고 극 연습을 끝내고 우리는 곁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저녁도 마음을 나누는 비빔밥을 먹었다. 귀한 시간 내어 따뜻한 마음 건네준 분들과 식사는 더 훈훈하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었다.
▲ 생일축하 노래하는 모습. 케이크를 놓고 찻자리를 준비하고 즐거운 시간. |
ⓒ 이숙자 |
▲ 시 낭송 모임 회장님이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
ⓒ 이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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