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키스 하면 아기가 생겨?" 아직도 이게 현실입니다

임은희 2023. 9. 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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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하나, 딸 하나' 엄마의 성교육 이야기... 성에 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 많았으면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2019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을 동네 남자아이들과 함께 성교육 단체수업을 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성별에 맞춰 따로 교육을 하는 것이 유행이라 그렇게 했던 것인데 교육 후 아이가 던진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기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생기는데 성교육은 왜 남자아이들끼리 받아? 우린 교실에서 여자아이들이랑 잘 놀지도 않아. 서로 무시하거나 놀려. 말싸움하다 불리해지면 화장실로 도망가서 계속 놀려. 원래 남자랑 여자는 이런 거야?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학교 도서관에서 성과 관련한 만화책을 보며 궁금증이 생긴 아이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할지 고민하다 성교육 공부팀을 꾸린다는 말에 신청한 것인데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 동안 우린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재수가 필수처럼 여겨지고 평생학습원이 도처에 존재하는 시대라 공부는 언제든 원할 때 할 수 있지만, 사춘기는 일생에 단 한 번 온다는 점에 주목하니 국영수 선행보다 성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행과 성범죄를 먼저 떠올리는 성교육

학교에서 유행한다는 성 관련 만화책들을 빌려와서 함께 봤는데 생물학적인 성을 소개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기까지의 과정만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와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좀 더 포괄적인 수준의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은 많았지만 어쩐지 아이는 '성'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지 못했다. 성교육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성'이라는 단어 때문에 교육을 하지 않기엔 아쉽다고 생각하던 중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아웃박스, 2018)에서 '몸교육'이란 단어를 접하고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이 열린 자세로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생식 기관은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주고자 '몸'이라는 단어를 써서 이야기했다.  -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2018
▲ 다양한 성교육 관련 책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성교육 관련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잘 뒤져보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성관념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식습득과 경험인데 미성년 학생들에게 책은 지식습득과 간접경험을 위한 좋은 수단 중 하나다.
ⓒ 임은희
 
다섯 명의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개인의 경험과 교육 사례를 적은 책인데 초등학생을 단순히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 큰 충격을 안겼다. 우리 집 아이들도 유행가처럼 부르던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가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로 유통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교육의 부재는 잠재적 피해자에게만 주의를 강요하는 형식적인 성범죄 예방 교육만 남긴 것 같아서 슬펐다.

어른들이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어벤저스> 영화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 다음의 이야기가 필요한데 현실의 어른들은 주야장천 아름다운 키스신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성범죄를 조심하란다. 성관계는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어야 하는데 성폭행과 성범죄를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교육이라니.

성폭력 예방만을 주야장천 가르친 학교를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사가 개인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정규수업에 성교육을 편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 이후로 남녀 갈등의 심화가 눈에 보일 수준이고 성관계의 결과물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출산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공교육 현장에서의 성교육은 어쩐 일인지 여전히 터부시되고 있다. 성교육이 교사 개인의 역량이나 의지에만 맡겨두고 있어야 할 만큼 가벼운 사안은 아닌 듯한데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키스와 성범죄 사이의 이야기

키스와 성범죄 사이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필요성을 느꼈다. <소년들의 솔직한 몸 탐구생활>(일로나 아인볼트, 2020)을 바탕으로 궁금한 점들, 앞으로 일어날 몸의 변화들을 살펴보았고, <열두 달 성평등 교실>(아웃박스, 2021)를 함께 보고 활동지를 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활동지를 재미있게 하는 오빠를 보며 둘째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들인 첫째와 딸인 둘째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늘렸다. 

둘째의 경우 성에 관한 질문을 한 시기는 첫째와 비슷했지만 성에 관한 지적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교사가 별도로 실시한 성교육을 받기도 했고, 과학 도서를 좋아해 생물학적 지식이 많은 편이었지만 둘째는 상황이 달랐다.

물어보니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제외한 별도의 성교육은 받지 않은 상태였고 생물학적 지식은 여자에게 자궁이 있다는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엄마, 키스를 하면 아기가 생기잖아?"
"뭐라고?"
"키스를 하면 아기가 생기는 건 아는데, 분수 옆에서 키스하는 언니오빠들은 지금 아기가 생기는 중이야? 아니면 집에 가서 생겨?"

일주일 가까이 서점과 도서관을 헤매고 현직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책을 골랐다. 안나 피스케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났어요?>(군자출판사, 2021)였다.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은 그림책이었다.
 
▲ 아기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안나 피스케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났어요?'는 정확한 생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성관계 전반에 깔려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랑의 방식과 임신, 출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하기 때문에 나와 다른 이성, 다른 상황의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을 높일 수 있는 책이다.
ⓒ 임은희
 
비록 학교 도서관에는 없지만 서울시교육청어린이도서관에는 있는 책이라 좋은 책이리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학교와 공공도서관은 사서, 교육자 그리고 이용자들이 함께 책을 추천하며 서가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집단의 관심과 방향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책선정에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엔 '아기'였다는 사실에서 시작하는 그림책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과학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단순히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이야기가 아닌 다양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좋았다. 우정, 동성애, 애착인형, 취미, 반려 동물, 부부 등 사랑을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20년 한국의 평균 초산 연령은 32.3세로 세계 1등의 노산국가다(OECD, 2022 한국경제보고서). 자연스럽게 난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다양한 임신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 딸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사랑하는 어른들의 애정을 잘 보여주고 정확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그림으로 재미있게 인체를 표현한 책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로 안아주는 연인들 또는 가족들, 정동길 벤치에 앉아 키스하는 사람들, 다정하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림책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림책에 나온 사람들과 현실의 사람들을 살펴보며 책에 나온 것들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 키스를 해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남성 혹은 여성의 신체적 상황으로 자연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게 된 아이는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다정한 사람들을 보며 사랑을 이야기했고, '좋은 남자친구 고르는 법' 따위를 말하며 웃었다. 

'엄마와 아빠도 사랑해서 나를 낳았구나, 난 딱 하나의 정자와 난자였어!'

20년 후에는 듣고 싶지 않은 소식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둘 다 키우는 부모로 살다 보면 한숨이 나오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인간은 태초부터 남자와 여자, 둘이었는데 갈등은 점점 심해지는 듯하고 성 관련 잔혹 범죄들도 자꾸만 생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존중하면 좋겠다 싶은데 다른 성별까지 포용할 만큼 현실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그들 잘못이 아니니 마냥 안쓰럽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잘해야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함께요."
- <온 가족이 읽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김명남 옮김 / 2021

나는 성인이 된 아들이 N번방과 비슷한 유혹에 빠지지 않길 원한다. 비위생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여성을 아는 여성과 모르는 여성으로 나눠 다르게 판단하는 남자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매가 아닌 사랑을 바탕으로 성관계를 하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고 미디어 상의 왜곡된 성관념을 추종하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이성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멋진 남자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나는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 N번방 같은 사건의 희생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비슷한 사건의 희생자가 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불특정다수의 여성들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현실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지 않았으면 한다. 남성을 잠정적 범죄자로 규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다른 성별을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상대방을 성욕 분출의 대상으로 보는 대신 존중하고 아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하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아기를 가지기로 결심했을 때 난임이나 불임이라는 이유로 자책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대신 난임치료나 입양이라는 방법들을 적절히 이용해 사랑을 유지하며 살면 좋겠다. 자연임신도 그렇지 않은 임신도 모두가 신비로운 기적임을, 인간은 결국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아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 아이들 성교육을 위해 준비한 책들 약 30권의 책을 살펴보고 10권을 책을 추려 활용했다. 5권은 대여했고 5권은 구매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책을 구매하기 전에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아이들 성향과 수준에 맞는 책들을 골랐다.
ⓒ 임은희
 
아이들이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정용 성교육 책을 선택할 때 아쉬웠던 점은 성교육 관련 책들은 추천도서 목록에도 잘 없고 연령대별, 성별, 특성별 분류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기관이나 담당자가 구입이나 추천에 매우 소극적인 것처럼 보여서 지금 꼭 필요한 교육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다. 성과 관련한 다양한 추천도서나 수업이 공교육이나 공공 도서관의 영역에서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몸교육 시간을 통해 이야기하며 올바른 성관념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건전한 호기심을 억지로 덮어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가는 공교육이 사회의 많은 성차별과 성범죄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아직도 학교의 성교육은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하려고 애쓰는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고,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책들도 과거보다는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곡된 인식과 잘못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책과 교육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20년 후에는 '여자랑 성관계를 못해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가해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안전하고 행복한 성생활을 위한 제대로 된 성교육 과정을 만드는 대신 룸카페의 청소년 성관계가 문제라며 청소년들의 룸카페 출입을 금지시켜 화장실과 복도에서 비위생적인 성관계를 하게 만드는 일이 2043년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성문제로 인한 갈등이 지금보다는 덜한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성을 존중하며 올바르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문화가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문화를 습득한 결과가 2023년 한국의 성범죄와 남녀갈등이라면 우리의 문화를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린이 시절부터 점진적인 성교육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성별에 대한 포용력을 높여간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우리보다는 나은 성인으로 자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는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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