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했던 여름을 보내며

강지선 2023. 9. 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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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이 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숨쉬기 힘든 여름이었다.

그 사이,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사건은 수많은 우려를 뒤로하고 끝내 현실이 됐다.

흉흉한 사건들은 해마다 심화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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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선 TBN PD]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력 수요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8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에 설치된 전력 수급 현황 전광판에 현재 전력 사용량과 금일 예상 최대 전력수요가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한여름이 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숨쉬기 힘든 여름이었다. 쉴 새 없이 쏟아붓던 폭우가 삽시간에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극심한 더위를 끝내 견뎌내지 못한 사람도 서른 명에 달했다. 극한의 기후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면수심의 무차별한 흉기난동과 끔찍한 사건들이 줄지어 터져 나왔고, 꽃다운 나이의 선생님이 스스로 생을 달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사건은 수많은 우려를 뒤로하고 끝내 현실이 됐다. 같은 바다를 공유한 전세계 사람들은 이제 모두 미증유의 실험대상이 된 것이다.

흉흉한 사건들은 해마다 심화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반지하주택과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2022년 온열환자는 1년 전보다 13%이상 늘어난 1500여 명으로 기록됐다. 지난해에도 세간을 경악하게 한 스토킹 살인사건이 있었고, 제빵공장 산재 사망사고에, 이태원 참사까지 났다. 구태를 답습하는 사건들은 해를 달리할 때마다 심화해 되풀이되고 있지만, 대처는 무엇 하나 진일보한 것이 없다. 제 때 처리하지 못한 숙제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개인은 무력함을 느낀다. 폭우나 폭염에 대비하자는 것도 생계 앞에서는 느슨한 구호가 되고, 강력범죄에 개인이 할 수 있는 대응은 호신용품을 불티나게 구매하는 것뿐 이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내린 결단 앞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무의미해지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정책이나 법 제도로 해결돼야 할 거대한 문제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과 법제도를 만들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기후문제처럼 거시적 담론으로 보이는 문제는 더 그렇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4일, 청소년들이 주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 사법부는 몬태나 주정부가 화석연료 사업을 승인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며, 주정부가 아닌 청소년들의 손을 들어줬다. 젊은 세대에게 건강한 환경을 누릴 법적 권리가 있다는 꿈같은 판결이었다.

판결에 앞서 열렸던 재판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이 목격한 기후위기의 실상, 산불로 인한 천식, 강물의 온도 상승으로 초래된 어류 피해 등을 증언했다. 해결해야 할 태산같은 문제들 앞에서 개개인은 약하고 무력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작디작은 개인의 필요와 관심, 열망에서 풀리기도 한다.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자극적이고 끔찍할거야. 막을 수도, 없앨 수도 없을거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가 마치 지금의 현실을 마주한 우리의 독백같이 느껴진다.

오늘이 흉흉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막을 수 없거나 없앨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 결국 건강한 환경을 누릴 자신들의 권리를 찾은 미국 청소년들처럼 더 흉흉해질 내일을 막아낼 힘은 시민에게 있다. 숨쉬기 힘들었던 이 계절의 기억 탓에, 우리사회가 무력감에 잠식되진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가벼워진 바람결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길, 다시 목소리를 낼 힘을 불어넣어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강지선(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TBN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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