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마지막 피난처', 이대로 없앨 텐가
[정수근 기자]
▲ 금호강 팔현습지에 수녀님들과 함께 선 오동필 단장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이 금호강 필현습지를 찾았다.
오 단장은 지난 5일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와 대구기후위기비상행동이 공동주최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상영회 후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대구 '오오극장'을 찾았다가 행사를 모두 마치고 다음날인 6일 팔현습지를 방문한 것이다.
이날은 마침 대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와 부산 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 예수성심시녀회 수녀 세 분이서 10월과 11월 있을 수녀회 차원의 팔현습지 순례를 위해 사전 답사차 팔현습지를 찾은 자리였다. 이들 세 분과 오동필 단장 그리고 필자가 함께 팔현습지 탐방에 나섰다.
약간 무덥긴 했지만 날은 쾌청하니 맑아서 답사하기엔 참 좋을 날이었다. 방촌동에서 강촌햇살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들면 나오는 하천숲에서 모였다. 이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팔현습지 구간에서 가장 팔현습지스러운 곳 중 하나다.
금호강을 따라 발달한 하천숲이 온전히 보전돼 강이 펄펄 살아 흐르던 1980년 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고 자갈밭이 있고 뒤로는 버드나무군락이 숲을 이룬 형태로, 필자가 유년시절이던 1970년대 말 경험했던 금호강의 모습이라 반가웠다.
물론 더 이전의 금호강은 모래톱이 넓게 발달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1980년 영천댐이 들어서기 전 금호강의 모습은 곳곳에 모래톱이 넓게 발달한, 마치 모래강 내성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하천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전쟁 이후 대구에 잠시 머물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 '동촌유원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금의 동촌유원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의 해수욕장 수준의 풍경이 펼쳐진 그 모습에서 금호강의 원형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모래강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영천댐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팔현습지가 가장 금호강다운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 고라니들의 놀이터로 이용되는 왕버들 앞에 수녀님들과 오동필 단장이 함께 섰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한 뿌리에서 다발로 자라난 팔현습지 왕버들숲의 한 왕버들 앞에서 수녀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곳이 대구에 아직 남아있다니 너무 놀라워요."
"대구 도심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어려서 이 부근에서 살았는데 아직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신기해요."
영천댐에서 탁수가 흘러나오는 영향으로 이곳 강물이 완전히 맑은 강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산업화 시절의 금호강 모습에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동행한 수녀들이 계속해서 감탄사를 내뱉은 이유다. 수양버들과 왕버들이 적당하게 썩인 이 하천숲은 마치 금호강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동필 단장은 어느새 큼지막한 조개의 폐각들을 주워들고 나타난다. 그러고는 강물 속에서 다슬기와 고동을 발견해낸다. 이들은 금호강 하천바닥인 저서생태계가 완벽히 부활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조개의 폐각은 '대칭이'라 불리는 녀석이고, 다슬기는 '주름다슬기'로 다른 곳의 다슬기와는 조금 다른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완벽한 습지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 하천숲이 끝이 나면 나타나는 작은 산 제봉의 절벽, 즉 하식애(河蝕崖) 지형인 이곳에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가 산다. 그리고 그 앞으로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초지를 따라 더 내려가면 팔현습지에서도 가장 자연성이 살아있는 곳인 왕버들숲이 나타난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 김종원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특히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인간 개발 등을 피해 마지막으로 머물 수 있는 피난처인데, 생태학적 용어로는 '숨은서식처(cryptic habitat)'라 한다. "이런 숨은서식처가 사라지면 멸종위기종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왕버들숲에 수리부엉이가 나타나고 깊은 산골에서나 목격되는 담비가 나타나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곳이 마지막 남은 숨은서식처여서 아닐까.
이곳 왕버들의 특징은 가지를 다발로 뻗어서 자라났다는 점이다. 한 나무가 여러 다발의 줄기로 자라난 것으로 그 둘레를 모두 합치면 어떤 것은 10여 미터에 이른다. 수령이 최소 100년은 넘은 녀석들로 이곳 팔현습지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체다.
고라니들의 놀이터로 이용된 왕버들이 있는가 하면 수리부엉이 유조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왕버들도 있고, 누워서 자라는 왕버들도 있다. 각양각색의 왕버들 10여 그루가 다발로 자라나 마치 수십 그루의 효과를 나타낸다.
이곳에서 지난 8월 1일 담비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이날 담비에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라니 새끼의 뼈도 발견됐다. 두개골과 갈비뼈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으로 이곳이 야생의 세계에 가깝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녀들과 필자가 고라니 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동필 단장은 하식애 절벽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해낸다. 바위에 새겨진 1950년 8월 15일을 뜻하는 숫자와 사람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인간의 접근이 거의 허용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을 아는 극소수의 이들만 이곳을 찾아 들어올 뿐 철저히 고립된 생태계로 야생의 세계에 훨씬 더 가깝다.
▲ 고라니 새끼의 뼈. 담비나 수리부엉이에게 당한 개체로 추정된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숨은서식처'가 위험하다
그런데 이런 곳으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길을 내려 한다. 교량형 탐방로를 놓아서 수시로 인간이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개조하려 한다. 야생동물의 마지막 피난처와 같은 숨은서식처를 인간의 영역으로 뒤바꾸려 한다.
"이곳에 탐방로를 만들겠다는 것은 마치 새만금 수라갯벌에 비행장을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탐욕적 행위다. 보전해야 할 곳이 있고 개발이 가능한 곳이 있다. 이곳은 인간의 발길이 끊긴 곳으로 야생의 세계로 그들에게 온전히 내어주어야 할 공간이다. 이런 곳까지 인간이 개발한다는 것은 탐욕으로 공존의 질서를 해치는 것이다. 인간과 야생의 공존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서도 이곳 팔현습지만큼은 꼭 지금 이대로 보전돼야 할 것 같다"
오동필 단장이 팔현습지 왕버들숲의 공사용 깃발 앞에서 한 말이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종들의 서석처를 파괴하고 공존의 질서를 깨는 짓을 벌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결단이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다.
▲ 금호강 팔현습지 하천숲. 가장 팔현습지다운 공간 중 하나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팔현습지 왕버들숲에 공사용 깃발이 꼽혀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하식애 바위에 자리잡고 앉아 금호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리부엉이. 팔현습지의 깃대종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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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현습지 왕버들숲.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아직 살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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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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