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이후에도 인조가 왕권을 유지한 비결

김종성 2023. 9. 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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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연인>

[김종성 기자]

 MBC 드라마 <연인> 스틸 이미지
ⓒ MBC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깨트리며 왕위를 찬탈한 인조(재위 1623~1649)는 바로 그 외교정책 때문에 두 번이나 굴욕을 당했다. MBC 사극 <연인>에서 다뤄지는 병자호란은 그가 남긴 치욕의 역사다.

그는 병자호란 이전의 정묘호란 때도 치욕을 당했다. 조선왕조는 여진족의 사대를 받은 나라다. 그런 조선이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 거꾸로 사대를 하는 입장이 됐다. 명나라와의 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여진족을 불필요하게 압박한 결과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조가 역대급 치욕을 연거푸 겪으면서도 왕권을 무사히 지켰다는 사실이다. 그가 광해군을 몰아낸 것은 1623년이다. 정묘호란을 당한 것은 1627년이고 병자호란을 당한 것은 1637년이다. 병자호란이 1636년에 발발했다고 서술하는 역사서들이 여전히 적지 않지만, 이는 음력 12월 날짜를 양력 날짜로 환산하지 않아서 생긴 오류다. 인조는 1637년에 병자호란을 겪고 그로부터 12년 뒤인 1649년까지 왕위를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약점
 
 MBC 드라마 <연인> 스틸 이미지
ⓒ MBC
 
전쟁에 패했다고 왕권이 반드시 불안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급 수모를 두 번이나 당하고도 왕권을 무사히 지킨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외교는 못했지만 자리는 잘 지킨 군주였다.

인조는 중종(1506~1544)과 곧잘 비교된다.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는 쿠데타를 주도하지 못하고 반정 공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한동안 공신들의 눈치를 보며 허수아비 임금으로 지냈다. 반면에,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는 쿠데타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다. 그래서 중종처럼 허수아비 임금으로 출발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집권 당시의 인조에게는 정치적 약점이 있었다. 쿠데타에 주동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집권세력 내에서는 지위가 탄탄했지만, 일반 민중이 볼 때는 정통성이 상당히 취약했다.

인조는 선조의 손자이자 정원군의 아들이다. 왕의 아들이 대통을 잇는 게 상식이던 시절에, 그는 왕의 아들이 아닌 왕의 손자라는 지위에 힘입어 왕위에 올랐다. 이뿐만 아니라 쿠데타 명분 역시 그에게는 제약이 됐다.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결함이 있어 몰아내야 했다면, 선조의 또 다른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게 마땅했다. 선조의 손자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당시의 논리에 맞지 않았다.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와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을 몰아낸 자신의 쿠데타를 적자·서자 논리로 합리화했다. 둘째 부인의 아들인 이방석은 적자가 아니라 서자여서 정당한 왕위계승자가 아니므로 정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그렇게 적자 우선의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에 이방원은 자신이 곧바로 왕이 되기 힘들었다. 생존한 적자 중에서 첫째인 이방과(정종)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이방과를 추대했다가 기회를 봐서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오르는 신중함을 보여줬다.

28세의 인조가 쿠데타를 일으킨 1623년 당시, 선조의 아들들이 여럿 있었다. 폐위된 광해군을 비롯해 인성군(35세), 의창군(34세), 경창군(27세), 흥안군(25세), 경평군(23세), 인흥군(19세), 영성군(17세)이 있었다.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결함이 있어서 광해군의 즉위를 무효화해야 한다면, 선조의 손자인 인조보다는 선조의 또 다른 아들인 이들에게 우선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은, 인조 쿠데타 이듬해에 발생한 이괄의 난 때 흥안군이 추대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인성군을 추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는 쿠데타 직후 인조의 입지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취약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인조가 정묘호란에 이어 병자호란까지 당했다. 병자호란 때는 지금의 송파구에 있는 삼전도의 모랫바닥에 이마를 박으며 청태종에게 항복을 했다. 그랬으므로 그의 위상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조를 보며 통쾌해 하는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음력으로 인조 16년 4월 8일자(양력 1638년 5월 21일자) <인조실록>에서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날 조정에서는 병자호란 직후의 민심이반 현상과 관련해 '임금이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상도의 광해군 지지 세력이 소를 잡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인 일이 있다'는 내용이 보고됐다.

인조가 왕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 
 
 MBC 드라마 <연인> 스틸 이미지
ⓒ MBC
 
농경사회에서는 웬만하면 소를 잡지 않았다. 국가적인 치욕을 당한 상황에서 지주 출신인 선비들이 소를 잡으며 잔치를 벌인 것은 인조의 외교정책에 대한 불만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 같은 민심이반은 경상도 선비들의 술 잔치로만 끝나지 않고, 드라마 <연인> 제8회의 어전회의 장면에서도 언급됐듯이 선비들이 관직 취임을 기피하는 상황으로도 연결됐다.

원래부터 정통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호란을 두 차례나 겪었기 때문에, 병자호란 이후의 인조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왕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병자호란 이후 12년을 더 살면서 왕권을 무사히 지켰고, 자기 아들인 효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청나라의 도움 때문이다. 조선을 굴복시켜 우군으로 만든 뒤 명나라를 압박해야 했던 청나라 입장에서는, 자국에 굴복한 인조가 계속해서 왕위를 지키는 게 유리했다. 이런 구도는 인조에 대한 도전세력이 대항 역량을 확보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청나라는 소현세자를 인질로 끌고 간 뒤, 인조를 대신할 카드로 소현세자를 내세웠다. 인조의 후계자는 그 아들임을 시사하는 이 조치는 인조의 권위를 보호해주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또 인조의 왕권을 과시하는 상징적 조치들도 있었다. 패전 얼마 뒤인 인조 16년 12월 3일(1639년 1월 6일)에 장렬왕후를 새로운 국모로 맞아들이는 친영례를 거행한 것은 인조가 국부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를 낳았다. 18일 뒤에는 두 명의 후궁이 승진했다. 이 역시 인조가 이 나라의 가장임을 보여주는 이벤트들이었다.

그런 것에 더해 인조의 왕권을 튼튼히 지켜주는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 강렬한 권력 의지가 그것이다. 인조는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뜻밖에도 청나라의 지지를 받게 된 아들 소현세자를 경계하고 의심했다. 아들이 자기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1637년에 끌려갔다가 1645년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아버지의 냉랭한 태도 속에서 귀국 2개월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인조 23년 6월 27일자(1645년 7월 20일자) <인조실록>은 33세 나이로 급사한 소현세자의 시신을 묘사하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고 서술했다. 이 사건은 아들을 경계한 아버지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유력하게 해석되고 있다.

소현세자가 죽은 뒤에는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이 시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소현세자의 아들들도 할아버지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됐다. 이로 인해 소현세자 독살설은 더욱 힘을 받았다. 인조가 세자 사망 사건의 배후로 더욱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청나라의 신임을 받던 소현세자가 귀국하자마자 죽은 일은 청나라가 인조의 대타로 내세울 만한 인물이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그만큼 인조의 왕권이 강해진 셈이다.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은 일과 더불어,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후계 구도에서 배제된 일, 소현세자보다 정통성이 약한 둘째아들 봉림대군(효종)이 후계자가 된 일은 상대적으로 인조의 입지를 안정시켰다. 인조의 권력 의지가 약했다면 이런 결과가 발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조가 두 차례 호란을 겪고도 무사히 왕권을 지킨 데는 권력욕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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