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승은 미국?" 드림팀 신화는 끝났다

이준목 2023. 9. 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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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월드컵] 독일, 113-111로 미국 제압... 세르비아와 결승 진출

[이준목 기자]

 미국을 꺾고 기뻐하는 독일 선수들
ⓒ AFP/연합뉴스
 
국제 농구에서 '어우미(어차피 우승은 미국)'의 속설은 이제 옛말이 됐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국 농구가 또다시 무너졌다. 독일은 대어 미국을 잡고 역사상 최초로 농구월드컵 결승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며, 세르비아와 우승을 놓고 다투게 됐다.

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23 FIBA(국제농구연맹) 농구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독일은 미국을 113-111로 제압했다. 독일은 안드레아스 옵스트(24점 3점슛 4개 6어시스트)와 프란츠 바그너(22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 다니엘 타이스(21점 7리바운드 2어시스트)가 모두 20점을 넘겼고, 데니스 슈뢰더(17점 9어시스트)도 고비마다 힘을 보태며 전원 NBA(미프로농구)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을 격침시키는 이변을 연출했다.

미국은 농구에 있어서는 항상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국가다. 올림픽에서는 최근 4연패를 비롯하여 16번이나 금메달을 획득했고, 농구월드컵 역시 5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국이다.

하지만 2010년과 2014년 대회를 연달아 제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 농구의 독주체제는 주춤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중국 대회에서는 7위에 그치며 종전 2002년 미국 대회(구 세계선수권)의 6위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경신했다. 명예 회복을 노렸던 이번 대회에서도 불안한 경기력을 이어가다가 16강 조별리그 리투아니아전에서 첫 패배를 당한데 이어, 4강에서는 독일에서 덜미를 잡히며 결국 2회 연속 결승진출조차 실패했다.

미국 농구의 부진은, 가장 먼저 '최상의 선수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표팀은 파올로 반케로(올랜도 매직), 미칼 브리지스(브루클린 네츠), 제일런 브런슨, 조쉬 하트(뉴욕 닉스), 앤서니 에드워즈(미네소타 팀버울브스), 타이리스 할리버튼(인디애나 페이서스), 브랜든 잉그램(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자렌 잭슨 주니어(멤피스 그리즐리스), 카메론 존슨(브루클린 네츠), 워커 케슬러(유타 재즈), 바비 포르티스(밀워키 벅스) 오스틴 리브스(LA 레이커스) 등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NBA 4회 우승을 이끈 '우승청부사' 스티브 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미국은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지미 버틀러, 제이슨 테이텀 같은 현역 최고의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했다. 이번 미국 대표팀에서 가장 최근에 치러진 메이저급 국제대회였던 2020 도쿄올림픽 우승멤버도 전무하다.

선수 개개인의 커리어 역시 할리버튼 같은 올스타 멤버로 일부 포함되기는 했지만, 현재 NBA를 이끌어가는 슈퍼스타라기보다는 아직 성장 중인 유망주들 위주의 라인업이었다. 오히려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지난 2019년 대회보다도 못한 전력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아무리 선수층이 두터운 미국이라고 해도, 슈퍼스타도 없고 국제경험도 지극히 부족한 로스터를 가지고 우승을 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지며 NBA 최정상급 선수들로 구성된 '드림팀'을 앞세워 세계 무대를 장악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찰스 바클리,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등이 거쳐간 역대 드림팀은 상대팀보다는 자국 대표팀간 시대별로 누가 최강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로 평가받았다.

다만 미국은 최전성기에도 올림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농구월드컵에는 관심이 소홀했다. 미국에서도 농구월드컵은 우승 여부와 별개로, 드림팀의 계보에 포함시키지않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NBA 슈퍼스타들이 비시즌에 열리는 국가대표 차출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면서, 그나마 올림픽보다 비중이 낮게 평가받는 농구월드컵에는 최고의 선수들을 소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미국이 자의반 타의반 젊은 유망주들 위주로 세대교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다른 문제는 높이 열세였다. 2000년대 이후 NBA와 현대농구의 트렌드가 스몰볼로 바뀌고, 흥행을 고려한 공격농구를 유도하기 위해 골밑 3초룰이 강화된 환경속에서, 자연히 정통 장신 센터는 점점 사라졌다. 이로 인하여 미국은 대표팀에서 국제대회마다 빅맨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며 단신팀이 되어버렸고, 높이가 강한 빅맨진을 보유한 팀을 만날 때마다 고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현재 NBA를 살펴봐도 지난 시즌 MVP 니콜라 요키치(덴버)를 비롯하여 야니스 아데토쿤보(그리스), 도만티스 사보니스(리투아니아) 칼 앤서니 타운스(도미니카), 루디 고베어(프랑스) 등 엘리트급 센터는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미국은 케빈 가넷,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같은 다재다능한 포워드들이 국제대회에서 골밑까지 커버하는 변칙적인 스몰 라인업 전술을 구사해야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미국 대표팀 라인업에 7피트 이상의 장신이자 정통빅맨라고 할만한 선수는, 비주전인 수비형 센터 워커 케슬러 단 한명에 불과했다. 파올로 반케로, 바비 포르티스, 자렌 잭슨 주니어같은 포워드들이 유사시 센터도 소화할 수는 있지만 안정적인 골밑 장악을 기대할수 있는 카드는 전무했다. 반면 상대팀들은 주전은 물론이고 벤치에도 경쟁력있는 장신 빅맨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이 최근 국제대회에서 고전하거나 패배한 경기들을 보면 모두 리바운드 싸움에서 밀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투아니아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18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포함하여 43대 27로 미국을 완전히 압도했다. 심지어 리투아니아는 에이스 도만타스 사보니스가 이번 대회 참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NBA리거인 요나스 발렌슈나스를 앞세워 미국의 골밑을 장악하기는 충분했다.

독일전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미국 ESPN은 이날 경기를 분석하며 "높이 차이를 극복하는데 실패했다. 미국은 활기차고 공격적이었으나 키가 너무 작았다. 리투아니아전에서의 패배를 반복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독일은 공격 리바운드에서 12-7로 앞서는 등 중요한 순간마다 높이의 우위를 점했다.

한편으로 세계농구의 다원화와 상향 평준화를 확인했다는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난히 이변이 많은 이번 농구월드컵에서는, 미국과 함께 국제대회에서 그동안 전통의 강호로 대접받던 프랑스와 스페인이 나란히 8강에도 들지 못하며 동시에 몰락했다.

반면 언더독으로 평가받던 독일이 탄탄한 전력을 구축하여 미국을 꺾고 결승까지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에이스 데니스 슈뢰더는 NBA에서는 준수한 주전급 선수 정도지만 국제대회만 나오면 슈퍼스타급 활약을 펼치고 있고, 안드레아스 옵스트, 프란츠 바그너, 다니엘 타이스 등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실한 선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또한 니콜라 요키치의 세르비아, 루카 돈치치의 슬로베니아 등 NBA에서도 최정상급으로 꼽히는 슈퍼스타들이 미국의 상대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다.

미국은 최정예 멤버들을 출격시킨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은 지켜냈지만 예선에서 덜미를 잡히는 등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고전했다. 다가오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미국이 다시 슈퍼스타들을 끌어오마 최상의 전력을 구축한다고 해도 반드시 우승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농구대표팀은 이제 더 이상 다른 팀들이 넘을 수 없는 산처럼 우러러 보기만 하던 '드림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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