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 장군' 올해로 45살, 다시 만날줄 꿈에도 몰랐다
[서부원 기자]
▲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투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국가보훈부와 국립 현충원 홈페이지에 기재돼 있는 백씨의 친일행적을 지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2023.7.5 |
ⓒ 조정훈 |
일면식도 없는 장관님께 두 차례나 글을 올리게 되어 적이 송구합니다. 석 달 전쯤 '이승만 띄우기는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공개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이승만 띄우기'에 빠진 박민식 보훈처장에게 꼭 전하고픈 말 https://omn.kr/23zuj). 주저리주저리 글은 길었어도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장관님의 주장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헌법 전문엔 이승만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을 '불의'로 명토 박고 있습니다. 2.28 민주운동과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의 역사적 정당성을 헌법에 명문화한 것입니다. 권력욕에 눈멀어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헌법 정신을 짓밟고, 멀게는 반민특위를 해체해 친일 잔재 청산을 요원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을 에둘러 지적한 것입니다.
장관님께서는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치켜세우셨지만,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발행한 관보에도 대한민국의 시작을 1919년에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못 박고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본인의 서명까지 또렷합니다.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 사건과 독립운동 의연금의 사적 유용 혐의 등으로 임시의정원으로부터 탄핵이 되었을지언정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제헌 헌법에 반민족행위 처벌법의 제정 필요성을 적시한 사실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내보인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과 항일 무장투쟁의 반대편에 서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친일 세력을 처단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정기와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오롯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입니다.
친일 청산의 좌절에 가장 큰 책임이 이승만에게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군정이 친일 세력을 중용하고,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부족했던 이승만이 권력을 차지하는 데에 그들을 활용했다는 건, 중고등학생 정도면 모두 아는 상식입니다. 1946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창한 '정읍 발언'은 그가 분단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장관님께서는 이러한 반민족적, 반민주적 행태에는 눈감으시고 기승전결 '국부론(國父論)'만 주장하시니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급기야 스스로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하던 만주국 간도특설대의 일원이었다고 고백한 백선엽마저 친일파가 아니라며 장관직까지 거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하셨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친일파의 합의된 정의마저 흔드는 반역사적 망동입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결정도, 한덕수 국무총리의 홍범도함 명칭 변경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은 여론몰이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 '녹화사업'이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온 국민이 깨닫게 됐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도발한 역사, 이념 전쟁의 종착역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따로 떼어내는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반민족자가 '영웅'이 된 이유
박민식 장관님! 진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수십 년 동안 만주 땅에서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보다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싸운 장군이 진정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여기시는지요. 그가 일제 편에 서서 독립운동가들을 토벌한 만주국 간도특설대의 장교 출신이라고 해도 여전히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사 교사로서, 저는 백선엽과 같은 친일파를 차마 존경할 순 없습니다.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한 그들을 존경한다는 건, 숱한 독립운동가들의 멸사봉공의 삶을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생존을 위해 일제에 머리를 조아린 것과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건 천양지차입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맹목적인 양시론 역시 역사를 희화화하는 그릇된 태도라고 믿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6.25 전쟁 당시 백선엽의 공적이 과장됐다는 주장을 제기하지만, 낙동강 전선을 온몸으로 막아낸 그의 공적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추앙해야 할 단 한 가지 이유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전쟁 영웅'으로 거듭난 6.25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일제의 조선 강점에 가닿기 때문입니다.
▲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5일 백선엽씨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은 2분30초 간격으로 360도 회전하도록 제작됐다. 2023.7.5 |
ⓒ 조정훈 |
철저히 미국의 편에 서서 좌익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할수록 친일파라는 그들의 '원죄'는 시나브로 흐릿해졌습니다. 급기야 '조국 해방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 공산군은 남침을 감행했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 6.25 전쟁은 '친일파들의 해방 전쟁'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과 북진통일을 부르댄 이승만은 '적대적 동지'가 되어 더욱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었고, 전쟁 중 공을 세운 친일파들은 고스란히 기득권층에 편입됐습니다.
요컨대, 친일파는 6.25 전쟁으로 인한 분단 고착화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이후 "김일성보다 나쁜 놈"이라는 장삼이사의 욕설이 '적국의 수괴 찬양' 혐의를 받고, "친일파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는 말은 당연시되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빨갱이'로 낙인찍힌 이들은 연좌제에 묶여 통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마저 '빨갱이'로 내몰려 치도곤당하는 형국이니, 그들이 당한 고통을 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책임 보훈?
과문한 탓인지, 장관님께서는 평소 국가 정체성 확립의 필요성을 그토록 강조하시면서도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의 좌절이 분단의 모순과 뒤엉켜 역사의 왜곡과 가치관의 전도를 가져왔다고 믿는 제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설마 60~70년대의 철 지난 반공주의를 국가 정체성의 고갱이로 삼고 계신 건 아니시겠죠.
국가보훈부의 누리집엔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책임 보훈'이라는 비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장관님의 취임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국민 통합이라는 비전을 무색하게 합니다. 국민에겐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굴복하지 말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을 국방부가 끌고 국가보훈부가 밀고 있는 것처럼 비칩니다. 아이들조차 지금 대통령과 장관, 차관들까지 나서서 공산주의라는 허깨비랑 다툴 때냐며 비아냥거리는 지경입니다.
▲ 똘이장군 포스터 1978년 김청기 감독이 제작한 똘이장군 포스터. 반공만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다. |
ⓒ 서울동화 |
지난밤 제 꿈 이야기로 외람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40년도 더 지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에서 입상했던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1978년 김청기 감독이 만든 반공 만화영화의 대명사 <똘이 장군>을 반복해서 보며 연설문을 작성했고, 그땐 영화 속 내용이 죄다 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꿈에서 <똘이 장군>을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님, 이종섭 국방부 장관님 그리고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님 등이 돌림 노래하듯 불러대는 '반공주의 타령'이 제 뇌리에 박힌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느닷없이 역사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를 묻는 아이들에게 '반공주의'라는 철 지난 단어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부터가 참으로 난감하고 민망합니다. 장관님께선 역사 교사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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