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 원에 영화 보세요" 젊은 사장님의 패기

이선필 2023. 9. 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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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옆 독립예술전용관⑦] KU시네마테크 주현돈 대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이 위축됐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요즈음, 국내에 몇 안 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침체기에서도 나름의 자구책,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선필 기자]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 주현돈 대표.
ⓒ 이선필
 
서울 광진구엔 약 150석 규모의 단관 독립예술전용관이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쿠씨네'라 불리는 KU시네마테크는 서울 내에서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자대학교)와 함께 대학 캠퍼스에(건국대학교) 위치해 있는 영화관이다. 이곳은 광진구는 물론이고 강남권에서 예술영화에 배고픈 관객들까지 소화하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 8월 30일 극장에서 만난 주현돈 대표는 해당 극장의 영사 기사 출신으로 2019년부터 직접 사업장을 인수해 운영해오고 있다. 기술 스태프가 운영하는 곳답게 상영 환경과 시스템 만큼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주 대표의 뚝심과 내부 직원들의 헌신 덕에 휘청이지 않고 오히려 한 단계 도약을 바라보고 있다.

과감한 프로그램들

KU시네마테크는 2011년 3월 11일 개관 당시 젊은 시네마테크를 표방했다. 한창 필름에서 디지털 영화로 넘어가던 시기에 국내 독립영화의 디지털 복원과 아시아영화 중심의 기획전을 선보였고, 건국대학교 학부생과 교수진과 협업하며 졸업작품전, 테라피 시네마 등 특별한 프로그램을 매년 기획하고 있다. 운영주체가 바뀐 뒤에도 이러한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주 대표는 강조했다.

"개관 당시엔 디지털 영화가 산업적으로 용이한 측면이 있으니 보급에 힘쓴 면이 있고, 젊은층에게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며 지금의 건국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안다. 영화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지역주민에게 소중한 문화공간이 되자는 정신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영화과 전공 학생들에게 촬영 공간, 상영 기회를 주는 등 교육 연계 활동이 있다는 게 나름 특별한 점이다. 건국대 뿐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문의가 많다.

다만 전체 관객 중 학생들 비중이 엄청 높진 않다. 의외로 지역주민과 강남권 주민이 많이 온다. 비율로 치면 4대6 정도 되는 것 같다. 강남 지역에 예술영화전용관이 많지 않아서인 것 같다. 아트나인 정도인데, 접근성에서 우리 극장이 유리한 점이 있거든. 주말에 특히 부부 동반 관객이 많은 편이다."

주 대표 체제 이후 눈에 띄는 점은 동시기 주변 일반 상영관에서 보기 어려운 상업영화를 KU시네마테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죠스> <덩케르크>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 팬층이 탄탄한 영화들을 상영했거나, 상영 중이다. 1939년 첫 개봉 후 국내에도 2012년에 소개된 <오즈의 마법사>도 상영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나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KU시네마테크가 직접 DCP(디지털 상영본)를 수급해왔다. 말대로 과감한 행보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 전경. 관객 요청이 있을 때나 주기적으로 극장이 보유한 LP를 틀어주기도 한다.
ⓒ 이선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 전경. 관객 요청이 있을 때나 주기적으로 극장이 보유한 LP를 틀어주기도 한다.
ⓒ 이선필
 
"2019년 이전엔 경영난 때문에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들에 추진력이 약했다면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아직 이 방향이 성공적인지 가늠할 데이터가 쌓이진 않은 상황이다. 분명 도전적인 프로그램인 건 맞다. 나름 우리만의 네트워크 활용해 틀고 싶은 영화를 튼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가 직접 해외 작품을 들여오는 건 절대 흑자를 낼 수 없는 구조긴 하다. 자막이 없을 땐 자체적으로 제작도 해야 하니 말이다. 돈은 안 되지만, 그럼에도 그 영화를 틀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가져 오려 한다. 우리 극장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시기에 정말 필요한 영화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즈의 마법사> 땐 자막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해서 스크립트라도 달라고 요청했는데, 마치 문화유산인 것처럼 그게 뉴욕 도서관에 보관돼 있더라. 결국 도서관에 보존된 걸 복사해 사용했다."

기술 자부심

도제식으로 영사일을 배워 어느덧 10년 넘는 경력을 갖게된 주현돈 대표는 KU시네마테크 상영시스템에 자부심이 있었다. 국내 예술영화관 중 영사 기사가 상주하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 주 대표를 포함해 2인의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영사기와 스피커 등을 체크하고, 개보수에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영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일수록 예술영화관 환경이 열악한 편인데 그나마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년에 한 번 컨설팅 지원을 받는 것 뿐이다. 문제가 있다고 진단받으면 돈을 들여 고치거나 해야 하는데 상주 전문가가 있으면, 어떻게든 대안을 찾고 비용 절감 방안을 제시하거든. 당장 문제 없다고 방치하면 나중엔 더 큰 돈을 들여 교체해야 한다. KU시네마테크가 단관임에도 저와 기사님 두 명으로도 인력 부족을 느낄 때가 있다. 예술영화관이 멀티플렉스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진다는 인식이 생기기 쉬운데, 그럴수록 품을 들여 잘 관리해야 한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지원하고 있는 4K(해상도) 버전을 우리 영화관에서도 틀 수 있다. 최근에 스피커도 하나 교체했다. 그리고 4:3 화면비를 지원하는 극장이 국내에 10곳 정도로 아는데 그중에 우리 극장이 포함돼 있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데 상영 포맷이 딱 안 들어맞을 경우 대형 배급사에선 가이드라인을 주거든. 데이빗 핀처 감독의 <맨크>의 경우 화면비가 독특해서 마스킹을 잘해주지 않으면 레터박스(화면이 나오지 않는 검은 부분에 회색 영역이 생기는 현상)가 생기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게 우리 극장이 유일했다. 일반 관객분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름 여기엔 자부심이 있다."

"개봉관 중 거의 유일하게 35mm 필름상영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라고 주현돈 대표는 덧붙였다. 주 대표를 포함 내부 스태프들은 정기적으로 영사 관련 교육을 받고, 세미나가 있다면 달려가서 인프라를 개발하거나 기술을 배워올 정도로 열정적이라고 한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 주현돈 대표.
ⓒ 이선필
 
위기를 관통하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영난. KU시네마테크의 지난 10여 년 역사에서 손꼽는 위기였다고 한다. 수익 구조상 관계 당국 지원금이 절대적인 만큼 보수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 사태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사실상 검열을 당한 셈. 주현돈 대표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검열이 다시금 생길까 두렵다"며 새삼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타격으로 관람 형태가 바뀌면서 독립예술영화관 관객도 크게 떨어졌고, 이건 여전히 회복이 안 되고 있다. 결국 이런 극장들은 티켓 판매와 지원금이 큰 축인데 지원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운영 자체에 타격이 올 수 있다. 우리 극장도 결국 매표 수입과 영진위 지원금이 중요하다. 나머진 제가 개인적으로 모아 둔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인수할 때 사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직원 중 제가 가장 오랜 사람이라 하게 된 거지 특별한 포부는 없었다. 다만,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안 망하고 오래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 한 편으로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뀔 수도 있잖나.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주 대표는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2012년 고려대학교 내 세워진 KU시네마트랩의 마지막 상영 때였다. 지금은 일반 상영관으로 운영하지 않는 시네마트랩의 마지막 상영 때 한 관객이 오열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단다. 

"KU시네마가 두 군데였을 때 전 주로 고려대에 상주했다. 마지막 상영 후 문을 닫은 게 저였다. 당시 근무 때 한 관객이 절 인터뷰하고, 관객을 인터뷰하고 싶다더라. 알고 보니 2012년 처음 문 열었을 때 관객이셨다. 그분이 대학원생이 되었고, 문을 닫는다고 하니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오신 거였다. 막상 전 담담했는데 (그분이) 오열하셨다. 아, 극장이란 공간이 이런 의미가 있구나. 소중한 곳이 없어졌을 때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환기됐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만 트는 공간이 아니더라."

소중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KU시네마테크는 고군분투 중이었다. 독립예술영화관 중 할인폭이 가장 크고, 다양한 할인 이벤트가 있는 등 프로모션에도 적극적이었다. 상영 후 원하는 관객끼리 극장 사무실에 모여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무비클럽'을 비롯해 굿즈(Goods)를 제작하는 등 자체 기획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각 영화별로 별도의 도장을 제작해 쿠폰에 찍어주는 세븐 쿠폰도 KU시네마테크만의 특징이다.

"학생 할인이 2천원이다. 지역 주민 할인도 시작했다. 요즘 티켓 값 인상 피로도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거든. 어쨌든 우리가 시설 투자도 했지만, 관객 입장에서 금액 할인은 확실한 인상을 주니까 멀티플렉스보다 그런 데서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가 있는 날엔 쿠폰 적립을 하나 더 해주고, 비가 오거나 하면 또 하나 더 도장을 찍어준다. 그리고 학교 허가를 받고 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데, 고양이 사진을 찍어오면 도장을 추가로 찍어 드린다(웃음). 카카오채널에 가시면 우리 극장에서 제공하는 별도 쿠폰이 있다. 가져오시면 8천 원에 영화를 보실 수 있다."

영화 산업 위기, 극장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화두가 됐다. 몇몇 독립예술관이 자체 건물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시기다. KU시네마테크는 어떤 청사진이 있을까.

"내부에서 우리가 명확히 얘기한 게 차라리 과거로 회귀하자다. 기술 스태프도 있고, 그만큼 투자도 하고 있으니 필름 영화와 디지털 영화를 정말 제대로 상영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지만 디지털 상영이 필름 상영의 그 느낌을 따라가지 못한다. 기술로 대체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예술영화관을 찾는 관객분은 대형 극장보다 적겠지. OTT 플랫폼의 발달로 역시나 많은 사람들은 그걸 이용할 것이고. 역설적으로 우린 소수 관객을 공략하자는 거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 해야 할 게 교육이다. 마치 공공도서관처럼 예술영화관이 영화 교육과 가치 확산에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본다. <오즈의 마법사>가 좋은 사례였다. 젊은 관객들이 은근 많았다. 보시고 신기하다고 하시더라. 그렇지, 젊은 분들은 영화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어서 못 보고 있는 거였다. 그 감각을 깨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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