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아냐?"…시청률 대박난 '연인', 이 영화 대사까지 판박이였다

이지영 2023. 9. 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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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인’의 한 장면. 여주인공 유길채를 연기하는 안은진과 남주인공 이장현 역의 남궁민. 사진 MBC


지난 2일 MBC 드라마 ‘연인’이 파트1을 마무리지었다. 이날 드라마는 12.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1회 5.4%, 2회 4.3% 시청률로 초반엔 경쟁작에 밀렸지만 이내 입소문을 타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출연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했던 남궁민의 탁월한 안목과 탄탄한 연기도 다시 입증됐다.

총 20회를 두 파트로 나눠 편성한 ‘연인’은 잠시 휴지기를 가진 뒤 10월 중순 파트2로 돌아온다. 예상치 못한 결말로 파트1을 마무리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됐다. 더불어 ‘연인’을 둘러싼 논란 역시 가열되는 양상이다. 1936년 출간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의 유사성 논란이 그것이다. 소설은 1939년 할리우드에서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10개 부문을 수상했다.

‘연인’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 연인의 사랑과 고난 속에 희망을 일군 백성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애초 황진영 작가는 “비극적 상황에 내동댕이쳐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면서 “병자호란 같은 경우 독한 패배의 역사이기에 쉽게 손대지 못했는데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영감을 받아 고난의 역사를 조금은 경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표방했다고 공표한 셈이다. 그러나 단지 영감을 받았다기엔 흡사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표절설’이 거론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인’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장면장면 비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유길채와 이장현…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 중앙포토

드라마 ‘연인’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캐릭터 설정, 이야기 전개, 심지어는 대사까지 판박이인 대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마을 청년들을 사로잡으려 ‘밀당’하는 양갓집 규수 유길채(안은진)는 농장주의 딸로 동네의 남자들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닮았다.

승산 없는 전쟁을 반대하고 결혼과는 거리가 먼, 비혼주의자로 살면서 유길채에게 반하지만 훌쩍 떠나버리는 남자주인공 이장현(남궁민)은 레트 버틀러를 연상시킨다.

또한 길채의 첫사랑이자 길채의 절친 경은애(이다인)의 남편인 강직한 남연준(이학준)은 애슐리 윌크스를, 성격이 온화하고 현명한 여인 경은애도 멜라니 윌크스(결혼 전 성은 해밀턴)를 닮았다.

유길채를 짝사랑하며 그와 결혼하려는 구원무(지승현)는 스칼렛의 두 번째 남편 프랭크 케네디를 닮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길채에게 청혼한 공순약(박종욱)은 스칼렛의 첫 번째 남편인 찰스 해밀턴과 캐릭터 설정이 비슷하다.

드라마 ‘연인’의 한 장면. 사진 MBC


인물·설정·스토리 흡사…모티브? 오마주? 리메이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비비안 리와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 사진 피터팬픽쳐스

캐릭터뿐만 아니다. 두 작품은 공간적·시대적 배경도 다르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물론 세세한 장면과 대사까지 유사하다.

길채가 짝사랑하던 연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 당하고 그 모습을 장현이 몰래 보다가 놀린다. 스칼렛 오하라도 애쉴리 윌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이 모습을 레트 버틀러가 우연히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잔치 중 전쟁 발발 소식이 전해지거나, 피난 도중 출산을 도와 아이를 받게 되는 장면,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아버지, 되풀이되는 꿈을 꾸는 것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떠오르게 한다.

은애를 겁탈하려는 청나라 오랑캐를 길채가 단도로 죽이는 부분은 소설 속 북부 병사가 스칼렛을 겁탈하려 하자 총으로 죽이고 멜라니와 함께 시체를 치우는 것과 비슷하다. 비밀을 함께 공유하게 된 여자 둘이 처음으로 우정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전쟁이 끝난 후 스칼렛은 목재소를 하는 프랭크를 만나 사업수완을 발휘해 목재소를 키워 돈을 번다. 마찬가지로 길채는 구원무의 대장간을 이용해 전란으로 화폐 가치가 뚝 떨어진 동전들을 모아 유기그릇을 만들어 판다. 스칼렛과 길채가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닮은 것이다.

드라마 ‘연인’. 사진 MBC

저작권은 만료…“한국식 해석으로 봐야”


두 작품이 비슷하다고 해서 법적 시비가 붙을 가능성은 없다. 국내에선 저작권의 법적 권리보호가 원작자 또는 저작권자 사후 70년까지 가능하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6년 출간됐고 원작자 마거릿 미첼은 1949년 사망해 현재 저작권이 만료된 상태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고전 재해석을 넘어서 대사와 세세한 에피소드까지 지나치게 유사한 상황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식의 설명 보단 창작물이 아닌 원작을 조선시대로 옮겨온 리메이크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작가가 “영감을 받았다”고 이미 언급했고, 원작을 모티브 삼아 한국 사극으로 충분히 새로운 부분도 보여줬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두 작품 설정에 유사한 구조가 있고 시청자들 입장에서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인’은 작품이 들어가기 전에 작가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밝혔기 때문에 표절보다는 모티브 삼아 한국식으로 해석을 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연인’은 오는 10월 파트2로 나머지 절반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 달 뒤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놓기 전 이 논란을 어떻게 대처할지, 혹은 파트2에서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로 표절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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