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신작으로 돌아온 무라카미 하루키…새로운 테마 '벽'
벽·그림자 모티브…"코로나19·우크라이나 전쟁 고민했다"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무라카미 하루키가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으로 돌아왔습니다. 6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인데요. 이번 소설의 첫 문장이 그간 청년 문학의 정수로 꼽혔던 하루키의 면모를 보여준다며 찬사를 받기도 했죠. 이 작품은 43년 전인 1980년 하루키가 문예지에 발표한 중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다시 갈무리하고 덧붙여 낸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앞서서 발표가 됐는데요. 일본 언론들도 하루키 인터뷰 기사를 일제히 보도하는 등 신작 열풍이 뜨거웠습니다. 특히 이번 소설의 경우 ‘벽’이라는 주제가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한 지점과 맞닿아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일본 언론에서 하루키의 이번 신작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오늘은 하루키와 그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작품은 하루키가 데뷔 이후 유일하게 단행본으로 출간하지 않았던 중편소설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루키는 당시 도쿄 재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필에 온전히 힘을 쏟기 어려웠죠. 이후 이를 묻어두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다시 꺼내게 됩니다. 이후 장편으로 완성하는 데는 2년 반이 걸렸다고 해요. 당시 글쓰기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던 만큼, 이번 소설은 쓰고 며칠 뒀다가 다시 고쳐 읽고,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작성하는 등 이번 작품에 많은 애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이번 장편은 3부로 구성됩니다. 1부에서는 17세의 나, 그리고 30대 나이를 먹은 나의 이야기가 교차로 등장하죠. 17세의 자신이 만나고 있는 16세 연인인 ‘너’는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 거리 안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이윽고 자취를 감춥니다.
한편, 이 주인공이 사는 곳도 높은 벽에 둘러싸인 조용한 거리인데요. 거리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그리고 아무도 그림자를 가지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벽 안쪽에 머물러야 할지,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할지 갈등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로 옮겨가는데요, 이곳에서도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이후 다시 ‘그 거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 소설에는 벽과 그림자가 모티브로 작용하는데요. 그림자는 하루키가 그동안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장치죠. 하루키는 “그림자라는 것은 내게는 잠재의식 속의 자기 같은 것으로, 나의 상사형인 동시에 나의 부정형이기도 하다”며 “소설, 특히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의식에서 벗어난 의식 같은 것을 파고드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벽은 제목에도 드러나 있듯 중심 역할을 하는데요. 하루키는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벽은 이쪽과 저쪽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고, 벽을 벗어나거나 벽 너머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굉장히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불확실한 벽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지만, 안에 있는 사람이 바뀌면 벽의 형상도 목적도 달라진다는 점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고 했는데요.
특히 하루키는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의 벽,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벌어지는 갈등을 고려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5월에 신작을 발표했을 당시에는 미국에서 '역병과 전쟁 시대의 소설 쓰기'라는 제목의 강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신간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언급하며 "제 독자들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분들이 제 책을 소중히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하기도 했는데요.
이번 소설이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내포하게 되면서, 일본에서는 이미 하루키의 신간은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상태입니다. 또다시 한번 하루키 신드롬을 맞이한 셈인데요.
하루키의 벽은 공간을 가르는 벽이 아니라 넘나드는 행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그의 생각이 갈등과 양극화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또다시 한번 한국에서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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