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0㎞로 차 몰아도 단속 안 해요"…한밤의 그 스쿨존 가봤다 [르포]
지난 7일 오후 1시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동 송원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전국 ‘스쿨존 속도 제한 완화’ 구역 8곳 중 하나다. 왕복 7차선 도로 양방향에 설치된 과속 단속 카메라에 도달하기 전 ‘가변속도제한시점’ 안내 시설이 설치돼 있다.
숫자 ‘30’이라고 적힌 LED 표지판에 어린이보호구역과 함께 ‘08시~20시 30㎞/h’ ‘그 외 시간 50㎞/h’를 안내했다. 노면에는 ‘어린이보호구역 가변속도 구간’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해당 도로는 자동차 통행량은 많지만 보행자는 찾기 어려웠다. 주변에 상가도 거의 없는 데다 가장 가까운 아파트는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다.
송원초 전학생 563명 가운데 상당수는 스쿨버스로 등하교한다. 스쿨버스를 안 타는 학생은 학부모가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시키고 있다. 인근 아파트 등에서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학생은 1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송원초 교장은 “5~6학년 고학년 학생 몇명만 걸어서 학교 다닌다”라고 말했다.
속도 제한이 완화되는 오후 8시에 다시 찾은 스쿨존에는 보행자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30’으로 적힌 LED 표지판은 8시 정각이 되자 ‘50’으로 바뀌었다. 단속 카메라 앞을 지나는 차는 속도 제한 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달렸다. 간혹 표지판을 못 봤는지 급하게 속력을 줄여 30㎞로 가는 차도 있었다.
지역 주민 반응은 엇갈렸다. 주민 박영수(68)씨는 “이곳은 보행자가 별로 없는데 왜 속도를 30㎞로 제한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기사 박주용(42)씨는 “학생들이 잘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대에는 전국 모든 스쿨존 속도 제한을 완화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며 “오전 1시~6시만 제한을 풀어줘도 택시 운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학부모 최모(45)씨는 “보행자가 적은 것은 인정하지만, 최근 전동 킥보드를 타는 학생이 늘고 있기 때문에 속도 제한을 완화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해 말 성인 44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쿨존 속도 제한 규정 완화 추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60%가 ‘필요하면 지자체 자체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도로교통공단이 같은 해 7월부터 시간제 속도 제한을 시범운영 중인 초교 4곳의 교사·학부모 400명에게 설문한 결과 300명(75%)이 ‘획일적 속도제한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경찰청은 전국 8개 스쿨존에서 지난해 시간제 속도제한을 시범 운영했다. 서울 광운초와 인천 부원·미산·부일·부내초, 광주 송원초, 대전 대덕초, 경기 이천 증포초 등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30일 9월 1일부터 스쿨존 속도제한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사실상 번복했다. 전국 모든 스쿨존이 아닌 8개 스쿨존에서만 속도제한을 완화한다고 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송원초 스쿨존은 그동안 운전자 민원이 많았던 곳”이라며 “대학교수와 도로교통공단 등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논의 끝에 완화 구역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황희규 기자 hwang.heeg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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