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진짜 한국 히어로물의 등장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3. 9. 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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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콘텐츠미디어그룹 NEW의 콘텐츠제작계열사 스튜디오앤뉴에서 제작하고 OTT 디즈니+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무빙'(연출: 박인제, 박윤서 / 각본: 강풀)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에선 TV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TV-OTT 종합 화제성 1위에 올랐고, 디즈니+에선 아태지역에서 공개 첫 주 시청 시간 기준 가장 많이 시청한 시리즈에 올랐다. 전 세계 OTT 플랫폼 내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이 공개한 2023년 34주 차 디즈니+ TV쇼 부문 월드와이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OTT 훌루(Hulu)에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중 공개 첫 주 시청 시간 기준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에도 등극했다.

디즈니+가 넷플릭스보다 규모가 작다보니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만큼 세계적 화제성이 뜨겁게 터지진 않았다. 만약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면 지금쯤 ‘오징어 게임’을 방불케 하는 국제 신드롬이 터졌을 거란 이야기가 국내외에서 나온다. 어쨌든 디즈니+ 방영작 중에선 놀라운 주목을 받으면서 ‘무빙’이 디즈니+판 ‘오징어 게임’의 위상에 올라서는 분위기다. 국내에선 ‘무빙’ 이후 디즈니+ 가입자가 증가했다. 하락세를 보이면서 ‘무빙’ 방영 직전에 가입자 200만 명 선이 무너지기까지 했지만 이 작품 공개 이후 200만 명 선을 회복했다.

해외에서 찬사가 쏟아진다. The Hollywood Reporter(할리우드 리포터)는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주연작 '무빙'이 디즈니+와 훌루에게 '오징어 게임' 같은 순간을 선사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 종합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IGN은 ‘모든 것이 놀랍고 강력하다. K-시리즈가 슈퍼 히어로 장르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답을 제시한다’고 했다. 미국 대중문화 매거진 Variety(버라이어티)는 ‘'오징어 게임'에 이어 아시아에서 탄생한 히트작’이라고 보도했다.

해외 OTT가 아니었으면 제작이 불가능했을 작품이다. 볼 만한 특수효과 액션 장면이 연이어 등장한다. 제작비가 500~650억원이나 투입됐다. 그 결과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슈퍼히어로물이 탄생했다.

그동안 ‘한국적 히어로물’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다. 악당을 무찌르는 헐리우드 히어로 같이 한국에서 악당을 무찌르고 서민들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런데 헐리우드 히어로처럼 초현실적인 액션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한국형 히어로들은 그저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일반인 정도이거나, 초능력이 있더라도 소소한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극중 초능력 보유자가 많지도 않았다.

반면에 ‘무빙’에선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하고 그들의 격돌 장면도 수시로 펼쳐진다. 한국 드라마에선 초유의 광경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엑스맨’에서 저마다 특화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등장했었다. ‘무빙’도 그런 느낌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한국형 히어로물이 등장했다.

‘무빙’은 헐리우드 히어로물과는 그 내용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내용은 확실히 ‘한국형’의 내음이 짙다. 헐리우드 히어로물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다. 마냥 신비로운 판타지 활극이 아닌, 시대의 격랑 속에서 힘겹게 살아내는 서민의 눈물과 웃음이 담겼다. 비록 액션의 규모는 헐리우드 히어로물보다 작지만, 현실에 발 딛은 이야기가 만들어낸 공감 때문에 시청자는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지구 또는 우주를 지키는 헐리우드 히어로들과 달리 ‘무빙’의 히어로들은 그저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시민일 뿐이다. 현역일 땐 그 능력을 국가에 착취당했고, 은퇴한 후엔 능력을 숨기고 서민으로 살아간다. 능력을 유전 받은 자식들이 부모처럼 국가에 착취당하지 않도록 결사적으로 지키려 한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헐리우드 히어로물보다 훨씬 깊게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작품 초반엔 10대의 풋풋한 이야기가 펼쳐졌고, 그 후엔 안기부에서의 첩보멜로가 나왔다. 괴물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두 액션의 쾌감과 더불어 짙은 감성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몰입이 강해진다.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몰입하게 되면서 캐릭터의 매력도 폭발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미국의 Forbes(포브스)가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 탄탄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고 한 것이다. 이제 후반부엔 북한 공작원들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대액션이 펼쳐지고,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함께 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 착취당했던 부모세대 초능력자와 달리 자식세대는 어떤 미래를 살게 될 것인가도 관심사다.

헐리우드 히어로물은 보통 막판 액션이 얼마나 스펙타클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이는데, ‘무빙’은 액션도 액션이지만 앞으로의 전개가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만큼 이 작품의 이야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헐리우드 히어로 블록버스터는 요즘 저조하다. 막대한 자본으로 현란한 액션을 만들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젠 한국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무빙’의 성공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의 핵심은 역시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사람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K-드라마의 힘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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