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깡 하면 잘 나와”…오프라인으로 나온 포토카드

유채리 2023. 9.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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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 서점에 마련된 포토카드 교환 장소. 한 팬이 바닥에 앉아 포토카드를 보고 있다.   사진=유채리 기자

온라인에서 이뤄지던 포토카드 교환이 최근 오프라인으로 확장됐다. 과거 서점 근처 지하도에 좌판처럼 포토카드를 깔아놓던 풍경 대신, 오프라인 포토카드 교환소에 모여 서로의 포토카드를 확인하는 식이다. 전보다 공식적인 활동이 된 셈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한 서점엔 바닥에 앉아 포토카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간간이 중국어나 영어도 뒤섞여 들렸다. 이날은 그룹 NCT의 새 앨범 ‘골든 에이지’ 발매 기념으로 서점 통로에 포토카드 교환 장소가 마련됐다. 탁자에도 형형색색의 포토카드가 늘어져 있었다.

팬들에겐 각자 원하는 포토카드가 존재한다. 원하는 카드를 얻기 위해 발품을 팔고 교환하는 행위는 그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토카드를 소장하고 교환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인정받는 분위기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포토카드를 소장하고 교환하는 건 팬심의 표현”이라며 “팬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언제든 만질 수 있는 ‘내 가수’

포토카드의 매력은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내 가수’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홍대 앞 거리에서 만난 A씨는 “휴대전화 영상으로도 (좋아하는 가수를) 볼 수 있지만, 형체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포토카드의 매력은) 실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어떤 상황이든 볼 수 있다는 점 같다”고 말했다.

팬들에게도 발품을 팔아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는 과정은 험난하고 힘들다. 어떤 카드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럭키드로우’로 희귀한 포토카드를 뽑는 건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는 것 역시 팬심을 증명하는 훈장이다. 이날 만난 조소영(26)씨는 “포토카드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을 증명하기 제일 쉬운 방법”이라며 “어떻게 보면 사소한 소품이지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아이돌 팬이 다른 팬들과 특정 장소에서 만나 함께 앨범을 뜯어 포토카드를 확인하는 걸 ‘오프깡’이라고 부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오프깡을 하면) 원하는 카드가 더 잘 나오는 느낌” “어떤 포토카드가 나오는 지에 따라 같이 속상해하고 같이 기뻐하는 게 재밌음” 등의 의견들이 올라왔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A(20)씨가 보여준 아이돌 포토카드. 그는 이날 10개 이상의 포토카드 홀더를 구입했다.   사진=유채리 기자

팬들 부추기는 ‘미공포’의 매력

특정 포토카드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일도 있다. 연예인 사진을 SNS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고 포토카드로만 푸는 걸 ‘미공포(미공개 포토)’라고 한다. 고화질 원본 사진을 출력할 수 없고, 한정판인 만큼 갖고 싶은 팬들의 마음을 부추긴다. 최근 그룹 에스파의 핀터레스트에 올라온 한 사진에 대해 “만약 (이 사진이) ‘미공포’였으면 펜트하우스 한 채 값”이라는 SNS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글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다.

반대로 미공포 포토카드에 대한 비판도 많다. 아이돌 그룹 소속사에서 앨범 구매를 유도하는 의도적인 마케팅이란 얘기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미공포에 대해 “적당히 해라, 진짜” “정 떨어져서 앨범 사는 것도 망설이게 한다” “미공포, 진짜 누가 시작했는지 반성하세요” 등 반응이 나왔다.

그럼에도 팬들은 여전히 포토카드에 열광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디지털 손때’가 묻었기 때문이다. 포토카드는 아이돌 멤버들이 팬들을 위해 틈틈이 시간을 내서 ‘셀카’를 찍으며 공들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룹 제로베이스원 멤버 성한빈은 셀카를 잘 못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팬들을 위해 포토카드용 사진을 200장 넘게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6일 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서 만난 강모(16)씨와 홍모(16)씨는 성한빈을 언급하며 “팬들을 위해 잘 찍으려고 노력하고, 또 그 중에서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랐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했다.

포토카드는 “팬심의 증거”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포토카드 문화를 ‘체험의 위계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예인 굿즈는 기본적으로 팬덤 안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즐겨왔는지 증명해주는 증거”라며 “인형처럼 팬들이 직접 만드는 굿즈와 달리, 포토카드는 희귀본이 존재한다. 포토카드의 희소성이 팬심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토카드를 통해 온라인에서 맺은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서로 소통하게끔 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포토카드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청년들이 서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라며 “문제점도 있지만 정도를 벗어나면, 팬들 사이에서 자정작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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