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52시간 걸려도 간다"…러, 민간인 죽는 전쟁터로 휴가 왜 [세계 한잔]

문상혁 2023. 9.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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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많은 러시아인이 크림반도 휴양지를 찾아간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로이터통신)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9개월, 전쟁과 휴가라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만나고 있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해변과 찬란한 햇빛으로 유명한 크림반도 이야기다.

'흑해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크림반도는 2021년 러시아 본토에서만 950만 명이 방문했던 러시아인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지난해 전쟁 발발 후 수는 다소 줄었지만, 여름 휴가를 위해 크림반도를 찾는 러시아인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52시간 기차 여행도 감수


로이터에 따르면 전쟁 전엔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크림반도까지 항공기로 약 네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적어도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린다. .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간 뒤 기차로 다시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 약 1300km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기차로만 52시간을 걸려 크림반도로 휴가를 가는 관광객도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전쟁 때문에 여객기가 크림반도 상공을 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를 두 차례 공격한 뒤 러시아 당국은 크림반도의 항공로를 전면 폐쇄했다.

크림반도 휴가의 더 큰 장애물은 안전상의 위험이다. 최근 크림반도는 군 기지, 공항 등 주요 시설과 장비를 타격하려는 우크라이나 측의 드론과 이를 격추하려는 러시아군 방공망 사이의 격전장이 됐다. 그래서 ‘흑해의 보석’ 크림반도가 ‘전쟁의 새로운 화약고’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8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크림대교에서 벌어진 폭발사고. AFP=연합뉴스


실제로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 사건도 생겼다.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에 따르면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측의 수중 드론정에 크림대교가 폭파될 때 러시아인 가족의 차량이 피해를 입었다. 탑승했던 부부는 모두 숨졌고 동승한 14세 딸은 중상을 입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일부 러시아인은 러시아의 방공 시스템을 믿는다면서 안전상의 위험을 무시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크림반도의 한 여행가이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많은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발(發) ‘가짜뉴스’에 겁을 먹었지만, 크림반도 해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붐비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표적' 오데사에서 해수욕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도 휴양지를 마련하고 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시당국은 지난달 해수욕장 6곳을 개장하는 등 해변을 개방했다.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된 지 18개월 만이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항구이자, 전통적인 피서지다. 동시에 지난 7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20여명의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러시아군의 주된 공격 목표이기도 하다.

CNN에 따르면 당국은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해수욕을 금지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해변 개방에 맞춰 올레 키퍼 오데사 군사행정 책임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바닷속 폭발물 검사를 통해 안전이 확인되면 해변의 더 많은 구역을 개방할 예정”이라며 “개방된 해수욕장에는 폭발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명보트와 그물망 울타리가 필요하며, 필요한 경우 더 많은 흑해 해역을 조사하기 위해 잠수부를 파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나디 트루카노프 오데사 시장은 해수욕장 개장을 알리면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 수호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고 있는 동안 휴양으로서의 해변 휴가는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침공 18개월 만인 지난 8월 다시 문을 연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한 해수욕장에 모인 피서객들.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전 미군 다낭·파타야서 휴가


이처럼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풍경이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역사상엔 전쟁과 휴가가 맞닿아 있는 듯한 모습이 종종 나타난다.
베트남 전쟁 중 다낭의 차이나비치에서 휴가를 즐기는 미군들. 베트남 전쟁 웹사이트(CherriesWriter) 캡처.


베트남 전쟁(1955~1975년) 때도 그랬다. 남북으로 길쭉한 베트남의 '허리' 부분에 있는 다낭은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격전지이자 파병 미군의 휴양지였다. 전쟁 당시 다낭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차이나 비치(China beach)’에선 미군이 지은 ‘R&R(Rest&Recuperation)’ 센터에서 서핑하고 요트를 타는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파병 군인들은 1년에 한 번 5일에서 일주일 간 휴가를 받아 당시 미군의 주요 공군기지인 탄손누트(Tan Son Nhut)를 통해 다낭에서 휴가를 즐겼다.

태국 파타야도 베트남 전쟁 중에 발전한 휴양지다. 파타야는 미군의 B-52 폭격기가 출격하던 태국 우타파오 공군기지와 수도 방콕 사이에 있던 한적한 어촌이었다. 휴가를 위해 찾는 미군이 늘면서 1970년대 호텔업이 번성하고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전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전면 개입한 1965년부터 종전 직전인 1973년까지 미군 장병 70만명이 파타야 해변에서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지난해 7월 크로아티아의 휴양지 두브로브니크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크로아티아의 ‘지상낙원’ 두브로브니크도 인근 지역의 분쟁에도 불구, 여행객의 발길이 이어졌던 사례다. 25년 전 코소보 전쟁(1998~1999년) 당시 코소보가 가까운 두브로브니크 공항은 전쟁 탓에 폐쇄와 개방을 반복했다.

하지만 당시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두브로브니크엔 전쟁 기간인 1998년 2~4월 1만3526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당시 두브로브니크 관광청 대변인은 NYT에 관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하루에 200명 정도는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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