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버스' 단속 미뤘는데…이젠 학교서 수학여행 줄취소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최근 2학기 현장체험학습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정부가 수학여행 등 현장체험학습 전세버스에 대한 단속을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법을 위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측은 “사고 발생 시 인솔 교사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보험금 지급도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체험학습 취소에 학부모 “학원 보낼래”
노란버스 논란은 2학기 개학을 앞두고 교육부가 일선 초등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가려면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어린이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며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법제처가 만 13세 미만 어린이들의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이동도 도로교통법상 ‘어린이의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데 따른 조치다. 학교 현장에선 이미 가을로 예정된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전세버스 예약이 끝났고, 어린이 통학버스는 당장 구하기 어렵다는 반발이 나왔다.
체험학습 취소 소식이 이어지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아이가 코로나 시기에 입학해 이번 체험학습을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버스 때문에 취소돼 속상해했다”며 “체험학습을 하는 학원에라도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초등교사 56% “현장체험학습 폐지해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7~8일 전국 초등교원 1만21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과반수인 55.9%가 ‘안전사고 등 민원‧소송 부담이 크므로 (현장체험학습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미 ‘위법행위로 판단해 취소했다’고 답한 교원은 30.5%였고, 취소 여부를 논의 중인 교원도 29. 6%에 달했다.
학교 현장에선 교권침해 논란으로 아동학대 신고나 학부모 민원에 대해 예민한 상황에서 현장체험학습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부담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교총에 따르면 대부분의 교원이 ‘현장체험학습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한 학부모의 민원, 고소·고발 등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실제로 ‘본인이나 동료 교사가 현장체험학습과 관련된 민원이나 고소·고발을 겪었다’는 교원은 30.6%였다.
현장체험학습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학교에서도 관리자와 교사들 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서울의 초등교사 김모(35)씨는 “교사들이 안전사고가 나면 부담이 너무 커서 진행을 못 할 것 같다고 했는데, 학교장이 학부모 의견만 듣고 수학여행을 강행한다고 결정했다”며 “교사들이 노조에 알려 학교에 항의했다”고 말했다.
대책 내놓겠다던 교육부…“실효성 없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법안이 발의돼있지만, 처리에 한 달만 걸려도 이미 9~10월에 집중된 현장체험학습은 다 끝난 후”라며 “법제처 해석은 강제성이 있진 않지만, 민사소송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17개 시·도교육청이 모두 법률적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해석을 유예하거나 발표하라고 요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현장체험학습과 관련된 소송 발생 시 대상자를 교사 개인이 아닌 교육감으로 변경하는 피고경정신청을 하도록 요구했다. 이미 부산시교육청은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교육청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공문을 관내 학교에 보낸 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건에 따라 법률적으로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육청보다 상위법이 먼저라고 반대하는 교사들이 많다. 이미 무기한 연기를 안내한 학교들도 있다”며 “아이들이 안타깝지만, 교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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