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억을 4배 불렸다…천안문 시위 주역, 이젠 중국에 베팅
" 이 사람만큼 믿기 어려운 인생 이야기를 가진 투자자는 없다. "
'중국계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투자전문가 리루(57·李錄)를 두고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이 표현했다. 리루는 실제 워런 버핏의 오른팔로 통하는 찰스 멍거(99)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자산을 맡기는 유일한 외부 펀드 매니저다. FT에 따르면, 리루는 2004년 멍거가 투자한 약 8800만 달러(약 1173억원)를 네 배 이상으로 불렸다. 한때 버핏을 이을 버크셔 해서웨이 투자책임자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월가(街)에서 명망 높은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FT는 "중국에서 도망쳤던 이가 지금은 중국에 수십억 달러를 베팅하는 인물이 됐다"며 그의 삶을 조명했다.
FT에 따르면, 리루는 1966년 4월 중국 탕산(唐山)에서 태어났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대변혁의 시기였다. 그가 돌도 채 되기 전에 아버지는 광산으로, 어머니는 노동수용소로 가야 했다. 보육원과 친척집을 전전하던 그는 양부모를 만났지만, 10살 되던 해 고향 탕산을 뒤흔든 대지진으로 양부모 마저 잃었다.
중국 최초의 여성 교육자 중 한 명이었던 할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던 그는 난징(南京)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23세였던 89년 봄, 천안문(天安門) 광장에선 민주화 운동이 벌어졌다. 리루는 단식투쟁에 나서는 등 학생 시위 대표단으로 활동하다가 전국에 수배를 당했다. 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해 사태 진압에 나서자, 그는 프랑스로 도망쳤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FT는 "미 컬럼비아대 박사 출신인 할아버지의 도움이 컸다"고 전했다. 이후 출판 기업 랜덤 하우스의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번스타인 등 인권운동가들의 도움으로 컬럼비아대에 진학한 그는, 96년 졸업하며 경제학 학사, 경영학·법학 석사를 한 번에 받는 기록을 세웠다.
투자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건, 93년 모교인 컬럼비아대에 강연하러 온 워런 버핏을 만나면서다. 별다른 연고 없이 미국에 온 리루는 학자금과 생활비 때문에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친구가 "미국에서 돈을 벌고 싶으면 이 강연을 들어보라"고 추천했는데, 버핏(Buffett)의 성을 '뷔페(골라 먹는 식당·buffet)'로 잘못 보고 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는 간결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버핏의 주장에 매료됐고, 주식으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그는 졸업 뒤 투자은행에서 잠시 일하다가, 97년 투자회사 '히말라야 캐피탈'을 세웠다. FT는 "서구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선택해 부를 축적한 중국 반체제 인사로 월가에서 이름을 알렸다"고 전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회는, 2003년 인권 운동을 하며 알게 된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찰스 멍거를 만나며 찾아왔다. 지인의 남편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였던 덕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멍거는 훗날 "리루는 매우 똑똑하고 자신감 있는 젊은이였다"며 "난 그의 혁명 경험보다 자본주의적인 자질에 매료됐다"고 회상했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멍거는 자신의 자산 일부를 그에게 맡겼다. 리루는 2008년 중국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를 추천했고, 그 결과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고 10배에 달하는 투자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10년엔 "리루가 버핏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전망이 돌았다. 투자 정보 전문 사이트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히말라야 캐피탈의 운용자산은 21억 5000만 달러(2조 9000억원)이다.
리루는 비영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난 2021년 아시아계 미국인 경영인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아시안 아메리칸 재단'을 세우고 팬데믹 뒤 반(反)아시아적 인종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1억 달러(약 1335억원)를 모금했다. FT는 "리루는 문화혁명 시대에 태어나 중국·미국 모두에서 성공한 본보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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