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눈 흰자 노래진 70대…수술조차 못하는 '침묵의 암'이었다

황수연 2023. 9. 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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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70·여)씨는 한 달 전부터 눈의 흰자위가 점점 노랗게 변했다. 이어 몸의 다른 부분도 노래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피곤해서 일시적으로 생긴 증상이라 여겼다. 그런데 최근 만난 친구로부터 얼굴빛이 너무 안 좋으니, 빨리 병원 가보라는 말을 들으면서 심각해졌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더니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췌장암으로 황달이 생긴 것이라며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조차 어렵다고 얘기했다.

얼굴색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은 다양한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소화기암인 췌장암, 담관암의 징후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이경주 교수의 도움말로 황달과 암의 연관성을 알아봤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이경주 소화기내과 교수. 사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제공


지방의 소화작용을 돕는 담즙은 간에서 만들어져서 담낭(쓸개)에 저장된다. 저장된 담즙은 식사 후 담관을 통해 소장으로 이동, 소화를 돕는다. 이런 담즙이 정상적으로 배출되지 못하면 담즙 내에 있는 빌리루빈 색소가 몸에 과다하게 쌓인다. 황달이 생기는 이유다. 황달의 원인은 다양한데 용혈성 빈혈과 같이 지나치게 빌리루빈이 형성되거나 간 손상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빌리루빈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췌장암, 담관암과 같은 종양이 발생한 경우에도 담관이 막혀 담즙이 흐르지 못하면서 황달이 생길 수 있다. 이경주 교수는 “암에 의해 황달이 생긴 경우 황달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암 치료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신속히 황달 증상부터 치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달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을 경우 이미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치료과정에서 응고장애, 담관염, 간부전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패혈증까지 올 수 있다”는 게 이 교수 설명이다.

황달의 원인이 암으로 인한 담관폐색으로 밝혀질 경우 내시경적역행성담췌관조영술(이하 ERCP)을 시행한다. ERCP는 내시경을 십이지장까지 삽입한 뒤 십이지장 유두부라는 작은 구멍을 통해 담관과 췌관에 조영제를 주입해 병변을 관찰하는 시술이다.

진단과 동시에 막혀있는 담관을 뚫고 스텐트를 삽입해 담즙이 정상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ERCP를 받더라도 고여 있는 담즙이 빠져나오고 황달이 호전될 때까지는 2~4주까지 걸린다. 이로 인해 황달의 치료가 늦어지면 암의 결정적인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몸의 다른 변화도 살펴야


황달은 눈의 흰자위(공막)부터 노랗게 변하기 시작해서 점차 몸의 아래쪽으로 퍼져 전신에 나타난다. 황달로 인한 몸의 변화는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의외로 본인이나 가족들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증상과 함께 몸의 다른 변화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달이 발생했을 때 함께 나타나는 증상은 소변의 색이 진해지는 것이다. 막혀있는 담즙의 성분이 소변으로 배설되기 때문이다. 또 황달이 암에서 유발된 경우 체중이 줄 수 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입맛도 떨어질 수 있다.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이 췌장(노란색)에 생긴 종양(붉은색)이 담관(연두색)을 막아 담즙(초록색)이 정체된 모습이다. 사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제공


이 교수는 “황달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암 진단을 받는다면 누구나 좌절할 수 있지만,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증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췌장암, 담관암은 ‘침묵의 암’으로 불리며 초기 증상이 거의 없는 대표적인 암들이라서다. 특히 췌장암의 경우 췌장이 몸속 깊숙이 있어 암을 발견했을 때 수술이 가능한 환자의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췌장암으로 황달이 발생하는 것은 종양이 담관과 가까운 췌장의 머리 쪽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암이 담관과 먼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 쪽에 있다면 증상이 늦게 나타나 발견이 어렵게 된다.

이경주 교수는 “암으로 유발된 황달 환자가 관련된 증상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결정적인 암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황달이 의심된다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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