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기독교 신앙과 이념

신상목 2023. 9. 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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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 미션탐사부장


최근 한국 기독교계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사상가이면서 한국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던 우치무라 간조(1861~1930)가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에 앞장섰던 자경단 활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지난 2일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개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우치무라가 직접 학살 등에 가담했던 건 아니지만 자경단원으로서 순찰 업무에 나섰고 ‘조선인에 의한 방화’ 같은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었다는 내용이 그의 일기를 통해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이미 일본 역사학계에선 공공연하게 알려진 내용이었다고 한다. 국내 연구자들의 저작에서도 이 부분이 어느 정도 언급됐었지만 그의 일기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처음이다. 그동안 그를 존경했던 사람들에겐 당혹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심포지엄 발표자인 홍이표 일본 야마나시에이와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문학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자경단에 참가해 활동했지만 그들의 무절제한 만행을 보고 단숨에 질려 자경단을 나와 칩거했고 후회했는데, 우치무라는 이후에도 조선인 학살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고 훗날 재개된 성서연구회에 조선인 유학생을 태연하게 초대하며 그 시대를 모르는 척 통과해 보려던 일련의 모습은 거대한 한 사상가의 인간적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실망을 안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치무라는 이른바 무교회주의 창시자로 불린다. 교회를 부정하기보다는 진정한 교회됨(에클레시아)을 추구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한다. 외국 교파와 선교사로부터의 독립,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세례와 성찬의 부정, 직업적 성직제도와 헌금제도 부정, 충실한 성서 연구 등이 무교회주의의 특징이다. 우치무라는 일본 기독교 뿌리의 한 줄기를 형성하는 삿포로밴드의 대표적 인물이다. ‘소년이여, 그리스도를 위해 야망을 가지라(Boys be ambitious for Christ)’를 외쳤던 미국의 열정적 기독교인 윌리엄 클라크가 세운 삿포로농학교 2기생으로서 클라크 교장의 영향 아래 기독교인이 됐다.

자서전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나’를 비롯해 ‘기독교 신자의 위로’ ‘구안록(求安錄)’ ‘로마서 연구’ 등의 명저를 집필했고 ‘성서 연구’를 창간해 잡지와 성서 강의로 강렬한 감화를 남겼다. 당시 그를 추종하던 조선인도 많았는데 김교신 함석헌 최태용 등은 그의 제자였다. 도쿄조선기독교청년회 초대 총무를 지낸 김정식과는 평생 우정을 견지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형제 됨을 확신했다고 한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소식을 들은 우치무라는 ‘행복한 조선’이란 제목의 글에서 “지난날 동양 문화의 중심이 되고 그것을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전한 네가 이제 다시 동양 복음의 중심이 되어 그 광휘를 사방에 퍼트리기를”이라고 희망하기도 했다.

우치무라는 평생 ‘지저스’(Jesus·예수)와 ‘재팬’(Japan·일본)이라는 2개의 ‘제이’(J)를 추구하며 이른바 ‘일본적 기독교’를 이루려 한 기독교 지도자였다. 그는 당시 간토대지진을 일본이 은혜와 속죄의 길로 나아가는 첩경으로 봤다. 우치무라는 “(대지진은) 정결해지기 위한 멸망이고 구원을 위한 멸망이며 신천지의 시작이고 신일본 건설의 절호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런 참회와 기대 속에서도 가짜뉴스를 믿으며 조선인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을 표출해 자경단 활동에 참여한 것은 지저스보다는 재팬을 우위에 두면서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쉬움은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민족주의와 이념 속에 복음을 가두고 있는가. 게다가 요즘은 난데없는 이념 과잉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교회마저 여기에 편승한다면 복음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우치무라의 한계를 기억하자.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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