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김유나 2023. 9. 9. 0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커버스토리] 광주 청년 정신건강센터 ‘마인드링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일 찾아간 광주광역시 청년 정신건강센터 ‘마인드링크’. 건물 밖에는 ‘정신건강’이라는 단어 대신 ‘마인드링크’ 간판과 로고만 걸려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자 커피 향과 함께 환한 조명과 노란색, 연두색의 벽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마인드링크 관계자는 “카페처럼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밝은색으로 공간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처럼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이들의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는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만이 아니라 예방과 조기발견 및 개입을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은 초기 치료가 중요한데도, 제대로 된 진단조차 이뤄지지 않고 진단 후에도 치료 거부 등으로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사례들에 대한 조기 개입을 위해서는 당사자 거부감을 줄이려는 노력과 꾸준한 관심이 절실하다. 여러 전문가는 이미 국내에서 청년 위주로 시행 중인 ‘마인드링크’가 조기 개입 모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마인드링크는 지역에 거주하는 15~30세 청년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관련 지원을 하는 곳이다. 2012년 광주 북구 정신건강 복지센터 조기 중재팀 4명이 중심이 돼 청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시작이었다. 2016년부터는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돼 운영되고 있다. 지역사회 정신건강 복지센터는 주로 40~50대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큼, 청년들이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는 대전과 울산, 충남 아산, 전남 순천, 제주 등에서도 마인드링크가 운영되고 있다.

마인드링크 내부 모습. 카페처럼 밝은 느낌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간에 청년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배치돼 있다. 광주=김유나 기자


운영 초기만 해도 마인드링크를 찾아오는 경우는 병의원이나 정신보건기관, 지역사회·학교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담자가 친구에게 소개하는 경우도 늘어났고, 대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에브리타임’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치적으로도 광주 마인드링크의 경우 전남대 바로 인근에 있다.

김성완 마인드링크 센터장(전남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조현병 증세가 있는데 전문가 상담을 받지 않거나, 적절하게 약물 투입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암 치료를 늦게 해 병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며 “마인드링크는 다학제적 협력을 하는 곳이라 의료와 심리, 복지, 신체적인 관리까지 포괄적인 지원을 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기 대응 중요한 조현병

조현병은 특히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자해, 타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정신질환이다. 조현병의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다. 잘 조율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듯이, 조현병을 조기에 잘 관리하면 일반인처럼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면서 만성 질환자로 악화되는 경우다. 조현병은 발병 시기가 15~30세 사이다. 최근의 ‘묻지마 범죄’에 종종 등장하는 중증 정신질환자들은 본인이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는 등 질병을 방치했다가 악화된 사례가 다수였다. 김 센터장은 “조현병은 조기에 치료를 하면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고, 마인드링크 서비스처럼 심리사회적 중재와 관리까지 받으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인드링크를 거쳐간 상담자 중에는 조현병을 앓던 30대 남성 A씨도 있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집에서 장기간 은둔 생활을 한 탓에 또래 친구 등 타인과의 관계성은 끊어진 상태였다. 취업하더라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해 3개월 이상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했고, 충동적인 감정 표출도 빈번해지면서 가족과의 갈등도 깊어졌다고 한다.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은 정신과 치료를 권했지만, A씨는 거부했다. 그러다 가족들의 권유로 마인드링크를 오게 됐다. 첫 방문 당시 A씨는 “다른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내 동창이 피해를 주려는 것 같다” 등으로 횡설수설했다. “내 생각이 울림으로 들린 적이 있다”고 하는 등 예민성도 높은 상태였다. 조기 정신증 징후였다.

마인드링크에서는 상담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5명의 ‘마음건강주치의’가 전문적인 면담을 진행한다. 마음건강주치의는 A씨에 대해 조현병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고 대학병원으로 치료를 연계했다.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마인드링크에서 사례 관리를 함께 하는 방식이었다. 소량의 약물로도 증상이 호전됐다. 다만 A씨에게는 아버지와의 불편한 의사소통이란 스트레스 요인도 있었다. 마인드링크에서 가족 중재를 제안했고 가족 및 다른 사람과의 그룹 인지행동치료가 진행됐다. A씨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점차 사회에 다시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면서 우울 증상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개선되는 중이다.

내가 겪은 어려움… 또래 돕는다

20대 임모씨는 중학생 때 처음 정신과적 증상을 겪고 있다고 느꼈다. 눈물이 멈추지 않거나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져서 극단적 선택을 하며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었다. 며칠 동안 씻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마인드링크를 방문했다. 임씨는 “처음으로 내 속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청년 정신건강을 돌보는 광주 북구 ‘마인드링크’에서 지난 4일 동료활동지원가 임모(왼쪽)씨가 김성완 마인드링크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김유나 기자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임씨는 자신의 능력을 살려 마인드링크 달력과 홍보물 제작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정신질환 때문에 씻기 싫어하는 친구에게 “내가 경험하기로는 중요한 약속을 잡으면 그나마 씻을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말해준다는 것이다. 임씨는 “정신질환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인드링크 역시 당사자가 원해야 개입할 수 있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결국 치료를 중단하거나 퇴원할 때 의료기관이 설득해서 마인드링크와 같은 기관으로 연계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설득하고 교육하는 데 대한 수가(진료비) 지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정 지원 확대도 시급하다. 마인드링크를 통해 도움받고 있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한 직접사업비는 연간 2000만원 수준에 그친다.

광주=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