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하나님 제대로 믿으면 삶의 근원부터 변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맹경환 2023. 9.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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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尼 자카르타국제대학교 설립
이용규 선교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국제대학교(JIU) 설립자 이용규 선교사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하나님께 제 길을 맡기고 두려움 없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특별한 하나님을 경험했다”면서 “제 삶은 하나님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국제대학교(JIU) 설립자 이용규(56) 선교사가 한국에 잠깐 들른다는 소식에 서둘러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사전 질문지를 보내고 받은 답변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신앙의 위기가 올 때가 있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이 선교사는 이렇게 답했다. “인생의 다양한 위기를 지나왔습니다. 죽음의 위협, 병고와의 씨름, 다양한 협박과 위협 그리고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으로 인한 낙심함 등이 이어졌지요. 하지만 신앙적으로 위기를 맞은 적은 고등학교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이른 나이에 신앙을 갖게 되면 신앙의 위기를 많이 겪는다. 극적인 신앙 위기와 극복 과정을 기대했지만 의외였다. 최근 베스트셀러 ‘내려놓음’의 저자로 유명한 이 선교사를 만나 고등학교 이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비결을 우선 물었다. 이 선교사는 “대체로 신앙적으로 흔들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인데 제게는 그런 의문이 없었다”면서 “하나님이 실재하시는 분으로 분명하게 믿어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신앙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핍박 속에 시작된 신앙생활

이 선교사는 유교와 원불교의 강한 영향권 아래 있던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원불교에 귀의한 할아버지는 경전을 일어로 번역하고 법사 칭호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런 집안의 ‘믿음의 씨앗’은 어머니 한행희(84·용인 목양감리교회 원로장로) 여사였다. 결혼 전 감리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어머니는 집안의 박해 속에서도 장롱 깊은 곳에 성경을 숨겨두고 몰래 이 선교사의 손을 잡고 주일 예배를 다녔다. 서울에서 잦은 이사 때마다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빨리 예배를 다녀올 수 있는 집 근처 교회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이 선교사도 하나님 없이 사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집안 제사를 책임져야 할 맏손주가 교회에 다녀서는 절대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에도 이 선교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가족과 친척의 핍박을 감당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가치 있는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시간을 가지며 ‘싯다르타’(헤르만 헤세) ‘사람의 아들’(이문열)을 비롯해 엔도 슈샤쿠, 미우라 아야코 등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또 하나님을 찾는 시간 가운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종교는 꼭 그 종교를 안 믿는다고 해서 내세에 큰 불이익이 없을 수 있는데 예수님을 안 믿으면 굉장한 불이익이 될 수 있다. 그래, 일단 예수님한테 모든 걸 걸고 믿는 시간을 갖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이 선교사는 “그 시기에 성령님께서 제 내면 깊이 찾아와서 만져주셨던 것 같다”면서 “이제 하나님을 믿으려면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우선 집안 제사 때 절을 하지 않았고 대학 때는 제사 자체를 거부했다.

선교사로 헌신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한 이 선교사는 중국 내 무슬림인 후이족에 대한 연구로 석사까지 마쳤다. 이제 그는 더 넓은 세계,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유학 자체를 반대했던 지도 교수가 유학을 가려면 아예 전공을 이슬람사로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전공까지 바꾼 유학은 쉽지 않은 도전이고 모험이었다. 고민하다 작정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라는 말씀을 주셨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라는 구절이 마음에 꽂혔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첫발을 떼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느꼈고 전공을 바꿔 유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용규 선교사가 2004년 미국 하버드대 박사과정 졸업식 때 어머니 한행희 여사와 부인 최주현 사모와 함께했다.


199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중국어와 일어에 익숙했던 그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를 새로 공부하고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는 유학 시절을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경험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힘들었던 첫 학기를 마치고 미주 코스타(KOSTA·Korean Students All nations) 집회에 참가했다.

이 선교사는 “집회 마지막 날 2년간의 선교 헌신을 위한 콜링의 시간이 있었다”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셔서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게 하시면 제 삶에서 2년을 드리겠다고 서원했다”고 말했다.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이 선교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졸업 후 갈 곳을 놓고 기도하면서 몽골 선교사님과 연결됐고, 몽골의 이레교회를 맡아 목회하면서 선교사들이 세운 몽골 국제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게 됐다.

이 선교사는 “대학 시절만 해도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었고 교수가 되고 싶었다. 돌아보면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삶이었다”면서 “미국 유학 중 낮아진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또 선교지로 나가서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여정 속에서 새로운 삶의 패턴으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1년 정도 지낼 무렵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속 선교지에 남아 있어 주겠냐고 물으셨고 그는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다. 그 후 평생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

기도의 열매가 맺다

이 선교사의 2018년 가족사진.

이 선교사는 “친척들의 강요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그분들을 섬기는 어머니를 통해 믿음의 여정은 고난과 희생을 동반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리고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온갖 핍박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전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제가 지금 기독교인이 소수인 다른 문화권에서 사역하기 위한 훈련을 어린 시절에 시키신 것임을 깨닫는다”고 고백했다. 이 선교사의 사역지인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87%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인은 7%에 불과하다.

어머니가 드린 기도의 열매도 맺고 있다. 이 선교사는 “친가 쪽에서도 신앙인이 나오기 시작했고, 할머니도 하나님을 믿고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이 선교사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치매에 걸리셨다. 미국 유학 중에 처음 소식을 접한 이 선교사는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낙망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나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교회는 가지 못했지만 늘 찬송을 부르셨다.

“예전에 어머니가 교회 일 때문에 늦게 돌아오면 역정을 내시던 할머니는 어머니가 ‘외로우셨어요. 혹시 무서우셨어요’라고 물으면 ‘얘 뭐가 무섭고 두렵니. 예수 선생과 늘 같이 있는데 나 하나도 안 무섭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예수님 때문에 무섭지 않고 외롭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난 거죠.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98년에 돌아가셨어요.”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삶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37:5) 항상 마음에 품는 말씀이자 이 선교사의 삶을 요약하는 말씀이다. 그는 “그분께 내 길을 맡기고 두려움 없이 걸어가는 여정에서 특별한 하나님을 경험했다”면서 “‘내려놓음’의 첫 출발은 ‘맡김’임을 제 삶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내려놓음’을 우리가 붙들고 사는 ‘갈망’을 버리면 하나님이 궁극적인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을 깨우쳐 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이 선교사는 늘 편안함과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했다. 미국 유학도 그랬고, 몽골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향할 때도 그랬다. 그는 “하나님의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가고, 멈추라 하는 곳에 멈추는 삶의 여정”이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늘 떠날 준비를 한다. 인도네시아의 대학 사역도 “잠시 정착하고 있는 것”이라며 “언제든 떠날 때의 모습을 그리며 제가 없어도 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 속에 평안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것으로 예비하시고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을 경험했고, 또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을 빼면 설명되지 않는 삶

이 선교사가 설립한 자카르타국제대학교 건물에 무지개가 뜬 모습.

이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학생들에게도 학업 기회를 주고 있다. 올해 입학한 학생들은 1년 반 이상 가족이 집 없이 노숙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그늘진 과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선교사는 “너희에게 고생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당당하고 귀티가 흐르는데 그 이유가 뭘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선교사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삶의 근원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난다. 인생이 너무 귀해지고 아름다워진다”면서 “그런 변화는 제 삶 가운데에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제 삶은 하나님을 빼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 없는 삶은 제게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이지요. 그나마 저같이 자기중심적이었던 사람이 누군가를 돌보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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