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우정의 확장
우정의 확장
5월 말에서 6월 초, 스페인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리자 나 포함 총 4명으로 이뤄진 우리 여행 팀을 신기해하는 댓글이 주룩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 팀 멤버는 나와 친한 S선배, 선배의 고등학교 동창인 K언니, S선배의 아버지, 이렇게 4명이었으니까. 친구 넷이나 4인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 일반적인데 그 사이 뒤섞인 4인 구성이니 색다른 조합이긴 하다.
네 사람이 같이 떠나게 된 계기는 이랬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의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나는 혼자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고, S선배는 연로하신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운전도 하고 길도 같이 찾을 조력자가 필요했다. 해외 렌터카 여행 경험이 많은 나는 장거리 운전을 좋아하고, 선배는 그럴싸한 사진에 속지 않으면서 훌륭한 숙소나 맛집을 감별해 내는 노하우가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소문난 모범생이라 친구 부모님들의 ‘최애’였던 K언니는 S선배 아버지와 이미 잘 아는 사이로 편안한 대화 상대. 그러니 서로의 수요와 공급, 역량과 결핍이 적절하게 조우하는 지점이 스페인 남부였다. 우리는 각자 앞뒤로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 유럽 일정 가운데 겹치는 일주일 동안 4인조가 되기로 결정했다.
여럿이 가는 여행이 그렇듯 서로 원하는 바가 어긋나기도 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이 부딪칠 수도 있다는 점은 각오했다. 친하면 친한 대로, 잘 모르면 잘 모르는 대로 또래 친구끼리 가는 여행도 다툼이 생길 수 있고 귀국 이후 어색한 사이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색다른 조합은 꽤 평화로웠다. 그런 평화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면 ‘적당한 거리감’이었다. S선배는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3명과 접점이 있는 자신이 여행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정의 많은 부분을 챙겼고, 나와 K언니는 80대의 아버지가 지치지 않을까,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을까 살피며 일정에서 욕심을 덜어내고 템포를 조절했다. 아버지도 딸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말수가 더 많아졌다고 했다. ‘연세 많은 분이니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팀의 훌륭한 일원이었다. 평생 무역 회사에서 일하셔서 해외 출장 경험도 많고, 영어가 능숙해서 의사소통이 원활했다. 우리가 늦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하게 씻으러 나오면 이미 말끔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 책을 읽고 계셨다. 영문학 전공인 아버지는 론다의 누에보 다리 앞에서 감격에 겨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S선배 아버지와의 여행이 수월했던 이유는 이런 세련된 매너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은 데를 많이 다녀본 어른이니 충분히 평가하고 깎아내리기 쉬웠을 텐데도 매 순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놀라웠다. 가는 도시마다, 짐을 푸는 호텔마다, 주문해서 먹는 음식마다 여기 어떠냐고, 이거 잘 맞으시냐고 여쭤보면 돌아오는 답은 열 번 중에 열 번 “아유, 참 좋구나”였다. 당연히 여행의 모든 순간이 좋았을 리 없다. 좋은 날씨 때문에 선택한 스페인은 이상기후로 거의 매일 비가 내렸고, 준비한 옷가지를 모조리 껴입고도 덜덜 떠는 날이 많았다. 알람브라 궁전 정원에서 소나기를 쫄딱 맞은 날, 따뜻한 국물을 찾아 겨우 들어간 일본 식당은 알고 보니 배달을 위주로 하는 곳이라 활짝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우버 기사들과 함께 찬 바람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괜찮다고 말해 주니 우울하던 우리 마음도 편안해졌다. 경상도 출신 가족들과 여행하다 듣던 대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게 다가? 유명하다 카드니만은 볼 거 한 개도 없네” “맛도 없는 게 뭐 그리 비싸노?” 뭐 한 게 있다고 팁을 주노? 이 돈 낼 거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겠다” 등등. 그런 말을 들으며 애써 준비한 시간과 노력에 상처 입은 기억마저 이번 여행으로 치유되는 것 같았다.
친구들 부모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잘 지내는 편이다. 그건 적어도 내 부모와 잘 지내는 것보다 쉽다. 너무 가까운 사이엔 쉽게 상처를 주고, 그런 상처를 피하려 무심해지게 되지만 내 친구를 사이에 둔 거리에서 보면 어른들은 충분히 귀여워할 만한 존재들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 부모님과 만나는 일이란 결혼식 다음엔 장례식인 경우가 많다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리워하거나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떠나고 나서 이렇게 위로하는 것도 좋지만, 살아 계실 때 만나서 식사라도 한 번 하면서 기억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어릴 때 내 친구는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 아이였는지, 얼마나 말을 안 들었는지, 체질이나 성격은 누구를 닮았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며칠이 지났을 때, S선배 아버지에게서 카톡이 왔다. “선우 잘 지내고 있지? 스페인에서 여러모로 아빠를 잘 돌보고 보호해 줘서 별탈 없이 잘 다녀왔구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자신을 ‘돌보고 보호해 줘서’ 고맙다는 남자 어른의 말이 사랑스럽다. 내가 참 좋아하는 S선배의 다정함과 밝음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 그 품성의 계보를 확인하면서 우리 우정은 좀 더 넓고 깊어진다.
황선우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운동 애호가. 인기 팟캐스트 〈여둘톡〉 공동 진행자로 이제 지면을 넘어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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