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검증에 '반역' 딱지 붙이는 현실... 법원에 기대한다

이주희 2023. 9. 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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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TBS⑨] 반대 언론 없애겠단 폭력적인 목적만 담고 있는 TBS 폐지 조례안

정치권력이 '돈줄'로 언론을 옥죄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2년 TBS 지원을 중단하는 조례를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제작 마비 상황에 직면한 수도권 유일의 공영방송 TBS는 새로운 조례가 없으면 2023년 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시민의 소중한 미디어 자산인 TBS를 이렇게 빼앗길 순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제안으로 언론단체, 마을미디어, 5개 야당 서울시당 등이 모여 제대로 된 공영방송 TBS를 만들기 위한 '주민조례발안운동'을 시작했다. 오는 9월 26일까지 2만 5천 명의 서울시민 서명을 받는 게 1차 목표다. 권력에 빼앗긴 TBS를 주민조례를 통해 시민이 직접 되찾자는 '리셋 TBS',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보려 한다 <편집자말>

[이주희]

* 이 글은 TBS 구성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TBS지원폐지조례 무효확인소송 첫 재판이 열린 8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주희 변호사의 발언문입니다.
 
 지난 9월 8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TBS지원폐지조례안 무효확인소송 기자회견이 열렸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지역 공영방송의 지원금을 끊고 하루아침에 폐지하겠다는 무지막지한 일이 실제가 될 시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 경악스럽고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와 여당의 인사들이 친위적 언론을 빼고 비판적 언론을 고사하고자 공격하는 일이 불과 1년 사이에 전방위적으로 계속돼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기간에는 언론자유를 강조했지만 해외 순방에서 일어난 자신의 욕설파동의 책임을 MBC에 돌리고,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고, 광고 중단을 요구하고, 검찰을 동원해 기자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전용기에 탄 수십 명의 언론사 중 본인 입맛에 맞는 언론사만 불러 대화하였습니다. YTN 일부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공기업 지분을 통째로 매각하고 민영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검사일 때는 방송장악, 여론조작, 민간인 사찰, 언론탄압이 불법이라며 관련 인사들을 처벌했는데 이제는 그 핵심에 있던 이동관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오르게 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부터는 대선 시기 윤 대통령을 비판한 뉴스타파를 타깃으로 당정이 맹공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소위 팩트체크를 통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고, 김기현 여당 대표는 "사형 처해야 할 반역죄"라고 하면서 포털의 저급한 댓글 수준의 막말을 하였습니다. 언론의 검증과 비판 활동을 반역이라 하는, 이런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표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언론 보도가 진실에 기반해야 하고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언론중재위원회나 제소 등 이미 존재하는 합리적인 해결기구를 통해 교정하고 구제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지금 여권은 법과 제도도 깡그리 무시하고, 정권과 여당, 대통령에 비판적인 보도 전체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고 매체의 목숨을 아예 끊어놓으려 합니다. 엄밀하게 사실을 검증해야 한다는 그런 논리는, 왜 대장동 사건이나 야당 관련 사안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온갖 전언 수준의 보도를 내보낸 여러 보수 매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이렇게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존을 거부하는 행태의 뿌리는 '혐오'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 하여 불편한 존재 자체를 완전히 없애고자 하는 것은 혐오에 의한 폭력 그 자체입니다.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파시즘이고, 독재의 시작입니다. 이 정권은 자신이 혐오하는 정치적 반대자를 검찰과 감사원 등 각종 권력을 동원해 처단하고 물리치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홍범도 흉상 철거와 역사 지우기가 그러하고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의 폐지가 그러하고, TBS라는 지역 공영방송을 폐지하겠다는 이 조례가 그러합니다. 오세훈 시장은 중증장애인들이 시위 집회에 참여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장애인들의 공공일자리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수순에도 들어갔습니다. 힘을 숭상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이런 혐오정치가 많은 시민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행정활동과 정책에 대한 비판에 직면할 때 걸핏하면 자신의 자리를 걸겠으니 당신은 무엇을 내놓을 거냐고 하는 장관들의 겁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9월 8일 TBS지원폐지조례 무효확인소송 첫 재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희 미디어언론위원회 회원
ⓒ 민주언론시민연합
 
너 아니고 나만 있어야 한다는 이분법, 공존할 의사도 필요도 못 느끼는 이러한 일도양단식 이분법의 세계에 사는 분들이 하는 정치가 얼마나 병적이고 미숙한지 그 밑바닥을 생생히 보고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공동체의 삶과 생존에 대한 깊은 실존적 성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도 발달단계가 있다면 사회도 그러할텐데 현 정부와 여당인사들의 사회적 관점과 공동체적 가치관은 발달의 초기에 멈춰버려 무려 40년 전으로 우리 사회를 되돌리고 있습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소멸과 지역붕괴, 기후위기, 환경재앙, 중산층 붕괴, 장기불황 등 현재 우리 사회가 공멸을 막기 위해 해결해야할 난제가 산적한, 절박한 이 시점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소리 없는 권력의 칼로 입을 막고 존재를 없애버리겠다는 이런 원시적인 정치가 사회의 성숙을 후퇴하고 과거로 회귀시키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혐오의 정치는 민주주의와도 어울리지 않고 우리가 나아갈 미래도 결코 아닙니다.

윤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걸핏하면 자유를 강조하고 있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어떠한 자유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권력을 가진 강자가 생각이 다른 타자와 약자를 겁박하고 처단할 자유를 우리 헌법과 법률은 그 어디에도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 TBS 폐지조례안은 헌법 및 상위 법률, 행정행위의 기본적 원칙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반대 언론을 사라지게 하겠다는 폭력적인 목적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몽매한 혐오의 정치로 인해 수많은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행정에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역할을 이번 행정소송이 할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판결은 사회 인식의 수준을 사후적으로 반영하지만, 때로는 판결로써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장해줄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충분한 심사와 심리를 통해 행정소송의 고유한 역할 중 하나인 위헌 위법적 행정을 심판하는 역할을 다 해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TBS 구성원 분들께도 한없는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TBS 주민조례 서명에 참여할 수 있는 QR코드
ⓒ 민주언론시민연합
 
* 응원의 목소리는 큰 힘이 됩니다. 링크(https://www.juminegov.go.kr/ordn/reqDtls?pSfLgsReqOnlineSno=C20230000000553) 또는 QR코드를 통해 서명에 함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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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회원 이주희 변호사입니다. 지난 8일 열린 TBS지원폐지조례안 무효확인소송 기자회견에서 이 변호사가 한 발언을 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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