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교재에 실린 이 사건, 이제 바로 잡아주세요"

변상철 2023. 9. 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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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동림호 선장 신평옥씨 재심에서 무죄 선고... '주요 판례' 언급한 법률적 낙인 바로 잡아야

[변상철 기자]

  7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고법 법정동에서 납북어부 신평옥(84) 씨가 반공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50여 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23.9.7
ⓒ 연합뉴스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지난 9월 7일 오후 광주고등법원 앞에는 반세기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신평옥씨와 그 가족들이 무죄를 자축하며 연신 감격의 눈물을 닦아냈다. 가족들은 축하의 말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형법 교재에 기재된 73도1684, 이제는 바로 잡아주세요."

1971년 5월 20일 동림호의 선장이었던 신평옥씨는 연평도 인근으로 조업을 나갔다가 북한 경비정에 납치되었다. 다행히 북한에서 1년가량 억류 생활을 한 뒤 1972년 5월 10일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환의 기쁨도 잠시, 신평옥씨 등 선원들은 인천과 여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선장이었던 신씨는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그가 받은 혐의는 고의로 어로저지선과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 그곳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북한의 체제에 동조해 한국의 기밀을 넘겨준 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간첩 지령을 받아 왔다는 것이었다.

신씨는 재판에서 고의로 북한에 넘어간 게 아니라 한국 해상에서 북한경비정에 납치되었고, 사상교육이나 기밀누설, 간첩 지령을 수수한 바 없다고 혐의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1, 2심에서 간첩 혐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정작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대법원73도1684).
 
피고인들이 북괴 지역임을 알고 '자의'로 들어간 이상 만일의 경우에는 그 기관원에게 체포될 것을 예기 못하였다고 믿을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북괴 집단의 구성원과 회합이 있을 것이라는 미필적 예측이라도 하였다고 인정함이 타당

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신씨는 군사분계선을 월선하면 북한 경비정에 발각, 체포될 것을 미리 알고도 '고의'로 군사분계선을 월선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결국 이 판결에 의해 신씨는 징역 1년 6월이 확정되었다.
이에 더해 신씨의 판결문은 형법 교재에 '기대가능성과 강요된 행위'라는 법리를 설명하는 주요 판례로 실렸다.
 
 형법 교재에 신씨의 과거 판결 내용이 판례로 제시되어 있다.
ⓒ 변상철
 
지난 5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이후 전과자로 살아야 했던 신씨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재심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작년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한 신씨는 지난 6월 9일 광주고등법원으로부터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피고인이 귀환하여 구금된 1972. 5. 11.부터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하루 전인 1972. 6. 8.까지 피고인의 구금 상태에 관하여 아무런 법률적인 근거가 없고, 검찰에서도 그러한 근거를 별도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이유로 광주고법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 불법감금죄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결정했다(광주고법 2022재노11).
 
 신씨가 재심 재판에서 읽은 최후진술서.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된 과정과 이로 인해 가족이 받은 피해가 고스란히 기술되어 있다.
ⓒ 변상철
 
선고에 앞서 어렵게 열린 재심 마지막 재판에서 신씨는 직접 자필로 쓴 최후 진술서를 법정에서 읽어 내려갔다. 신씨는 먼저 '나의 억울함을 알아주고 이렇게 재판을 열어주시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재심 재판을 열어준 재판부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신씨는 '고의'로 북방한계선을 넘었다는 기존의 범죄 사실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 살기 위해 했던 거짓 자백'이며 당시 신씨는 그저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으로 조업한 것일 뿐 월선 조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자신이 보안법 위반자로 실형을 선고 받은 뒤 "우리 자식들은 빨갱이 새끼로 손가락질 받고 살게 되었다"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또 출소 뒤에도 "전향하라는 경찰들의 회유와 감시, 고향사람들마저 경찰에게 돈을 받고 나와 가족들을 감시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왔다"라며 "나로 인해 시작된 우리 집의 비극은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힘들게 했다"며 출소 후 연좌제로 인해 고통 받았던 가족의 비극을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신씨는 "억울함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죽는다면 자식들에게 빚을 지어주는 것 같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디 이 늙은이의 억울함을 알아주시어 얼마 남지 않은 삶 홀가분하게, 편안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살펴봐 달라"며 최후 진술을 마쳤다.

이런 신씨의 마음이 통했을까. 재판부는 두 번째 속행 기일이었던 9월 7일 당일 선고 결정을 해 수사기관의 불법 감금, 가혹 행위 등을 통해 증거 능력과 신빙성이 결여된 당시 기소 내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신씨와 가족들은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며 그동안 가족에게 가해졌던 국가의 폭력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받고 싶다고 했다. 특히 신씨의 과거 재판 기록이 형법 교재 판례로 실리는 등 사회적으로 억울한 차별과 명예 훼손을 당했다며 이제라도 국가가 이 모든 잘못을 바로 잡아줄 것을 당부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 신씨의 재판은 형법총론 등의 각종 교재에 '강요된 행위, 기대가능성'을 설명할 때 판례로 등장한다. 법률적 낙인이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형법 교재의 내용들도 전부 수정되어야 한다.

신씨는 여전히 재심을 기다리는 동료 선원들의 재심도 곧바로 열려 그들의 명예 역시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당시 범죄 사실을 조작한 여수경찰서 등 수사기관에 바라는 말이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신씨는 "나를 수사했던 수사관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나 검찰의 사과를 받고 싶다"라며 자신을 수사한 수사기관이 책임을 잊지 않고 반드시 사과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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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 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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