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축구 흐름' 어디로…클린스만, 선수기용·중원활용·빌드업 모두 뒤쳐졌다

김희준 기자 2023. 9. 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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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대표팀 감독은 현대축구의 흐름과 상대국들의 준비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공부해야 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달 화상 미디어 간담회를 통해 대표팀 감독으로서 현대축구 흐름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A매치에서 현대축구에 걸맞는 모습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8일(한국시간)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 시티 스타디움에서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가진 한국이 웨일스와 0-0 무승부를 거뒀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3무 2패로 또다시 승리하는 데 실패했다.


이날 클린스만 감독은 4-1-4-1 전형을 들고 나왔다. 조규성을 최전방에 두고 이재성, 황인범, 손흥민, 홍현석을 2선에 배치했다. 박용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이기제,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를 수비에 위치시켰다. 골키퍼 장갑은 김승규가 꼈다.


2선 활용 여부가 경기 향방을 가를 게 자명했다. 공격수로 나설 때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손흥민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왔고, 중앙지향적 미드필더인 이재성과 홍현석이 나란히 윙어로 나섰다. 황인범도 기존보다 약간 올라선 위치에 선택받았다. 충분히 공격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선수 구성이었다.


손흥민(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납득할 수 없는 배치도 아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을 8번으로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손흥민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자유를 부여받으면 충분히 공격포인트를 생산할 수 있는 선수였다. 이재성과 홍현석은 소속팀에서도 윙어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고, 황인범은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부터 꾸준히 2선과 3선을 활발하게 오가는 선수였다.


그러나 2선 자원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한국은 이재성과 홍현석이 측면에만 머무르면서 중앙을 두텁게 쌓은 웨일스에 중원 수적 열세에 처했다. 이 때문에 윙어들의 중앙 가담에 힘입어 박스 타격에 주력했어야 할 손흥민은 3선까지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황인범 역시 2선도 3선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이따금 공을 배급하는 데 그쳤다. 공격 세부 전술이 전혀 마련돼있지 않았다.


특히 이재성과 홍현석 활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성과 홍현석이 터치라인으로 넓게 벌려서는 건 오프더볼과 침투에 강점이 있는 두 선수의 재능을 낭비하는 것에 가까웠다. 전술적으로도 넓게 벌려선 윙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대 측면에서 선수들이 수적 과밀화로 상대 수비를 끌어냈어야 했지만 이러한 모습이 이 경기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재성(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클린스만 감독의 아쉬운 전술 선택은 후방 빌드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민재나 정승현이 공을 잡으면 풀백이 터치라인까지 넓게 물러섰다. 센터백과 가까운 중앙 지역에는 박용우가 중심을 잡았다.


이때 공이 전방까지 잘 운반되려면 중원에 수적 우세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박용우가 탈압박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유형은 아닌 만큼 2선 자원이나 풀백이 중앙으로 들어와 빌드업에 관여할 필요가 있었다. 센터백 앞에 적어도 2명의 선수가 위치하는 건 3-2 혹은 2-3 빌드업이 기본이 되는 현대축구에 필수적 요소다.


그러나 웨일스전 한국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레프트백 이기제는 측면에 머물러야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다. 손흥민이 종종 내려왔으나 이는 전반적인 공 운반에 있어 손해에 가깝다. 황인범과 설영우가 이따금 중앙에 숫자를 더해줬으나 전술적 역할 부여때문인지 이러한 장면이 자주 나오지는 않았다.


중앙에 선수가 부족해지는 전술 선택은 빌드업을 선수 개인 기량에 의탁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이 가장 위협적인 공격 기회를 맞이했던 경우는 조직적인 후방 빌드업이 아닌 김민재가 전진 롱패스를 보내거나 손흥민이 중원에서부터 공을 운반할 때 나왔다.


김민재(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수비의 기본이 돼야 할 전방압박에서도 조직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흥민, 황인범, 박용우의 위치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4-4-2도, 4-1-4-1도, 5-4-1도 아닌 전형이 자주 연출됐다. 조규성의 적극적인 전방압박은 대표팀에 큰 힘이 됐지만, 전술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아 공격진과 미드필더진 간격을 벌리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이 잦은 해외출장 및 원격 근무 이유 중 하나로 내세웠던 현대축구 흐름 관찰에도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날 한국 축구에서 클린스만이 강조했던 현대축구는 피상적인 모습으로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신 축구는커녕 10년도 전에 정립된 현대축구 전술의 큰 틀도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포지션 플레이, 강한 전방압박, 두 줄 수비 전형 등 현대축구의 기본 사항조차 클린스만 감독 축구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유행했던, 점유를 포기하고 실리를 챙기는 전술을 채택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조직적인 훈련을 꾸준히 할 수 없는 대표팀 특성상 어느 정도 전술에서 타협점을 찾아내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스만 감독 역시 클럽과 대표팀 차이를 언급하며 한 주 한 주 집중하는 것보다 메이저 대회를 바라보며 현대축구 흐름과 변화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웨일스전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준 축구에는 현대축구 흐름도,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 내내 선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고, 심지어 선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메이저 대회인 아시안컵을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최근 흐름이 좋지 않았던 웨일스를 상대로도 과정과 결과를 둘 다 챙기지 못하는 씁쓸한 결말을 맞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서형권 기자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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