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 '섬광기억'과 망원렌즈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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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블루문'이 뜬다 해서 고배율 줌(zoom)렌즈를 들고 나갔다.
큼직하게 성큼 다가온 달 사진을 찍으면서 그 보이는 방식이 갑자기 떠오른 오래된 기억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하다 보니 기억이 고배율 망원렌즈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사실과의 관계가 느슨하듯, 망원렌즈로 부각된 이미지가 사실과 정확히 부합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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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블루문’이 뜬다 해서 고배율 줌(zoom)렌즈를 들고 나갔다. 초저녁에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큰 달이 뒤늦게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서둘러 망원렌즈로 ‘당겨서’ 사진을 찍었다. 구름 사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던 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둥글고 선명해졌다. 큼직하게 성큼 다가온 달 사진을 찍으면서 그 보이는 방식이 갑자기 떠오른 오래된 기억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의 앞마당에 던져진 오래전 장면 하나가 바라볼수록 바로 눈앞의 일처럼 선명해지듯이...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20~30년도 넘었고, 그사이 한 번도 떠올릴 일 없었던 일이 문득 눈앞에 또렷이 나타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기억의 장면들은 되새기고 만질수록 상상과 결합해서 덧칠해지고 더 구체적으로 바뀐다.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순간보다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의 기억들이 더 절절하고 생생하다. 만족은 쉽게 잊히고 후회나 불만은 부풀려지고 예리해지는 것이니까.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감정도 예리해지고 회한의 굴곡도 깊어진다. 지금이 언젠가는 선명한 과거가 되어 불현듯 다시 찾아올 것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휘둘렀던 현재적 감정과 욕망들도 뒤늦게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되돌아온다.
‘이래서 노회한 작가들이 오래 전 과거를 구체적 현재처럼 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루스트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 어린 시절 이모 집 동네에서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고 썼다. 기억이 신체의 감각 속에 보존되었다가 일순간 터지듯 되살아난 것이다. 어떤 기억은 한 번 찾아오면 눈앞의 현실처럼 선명해지고 지나간 일에 대한 두 번째 경험이 되기도 한다. 많은 기억의 장면들이 아무 이유 없이 '번쩍' 드러난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저 브라운과 제임스 쿨릭은 이런 경우를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기억의 섬광은 근처에 있는 모든 것을 비추며, 그것도 짧은 시간에 놀랍도록 그렇게 한다.”고 했다.
사진을 하다 보니 기억이 고배율 망원렌즈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망원렌즈는 멀리 있는 것을 당겨 가까이 보여주고 부분적인 것을 확대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망원렌즈로 도달한 이미지는 공간의 깊이와 입체성을 줄이거나 지워버린다. 부각된 이미지는 선명하지만 평면적이다. 맥락도 인과관계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순간의 선명한 기억을 닮았다. 유래와 과정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고, 오로지 현재적 장면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망원렌즈가 하는 일도 그렇다. 기억이 사실과의 관계가 느슨하듯, 망원렌즈로 부각된 이미지가 사실과 정확히 부합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보이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보는 시점과 방식에 따라 다르다.
편집자주 - 사진과 보이는 것들, 지나간 시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씁니다. ‘언스타그램’은 즉각적(insta~)이지 않은(un~) 사진적(gram) 이야기를 뜻하는 조어입니다.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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