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 그냥 버릴까" 하던 마음을 다잡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성희 기자]
싱크대 위에 10개가 넘는 빈 멸균 우유팩이 있다. 2년이 넘도록 설거지하듯 씻어서 말렸는데, 최근 들어 자주 귀찮아져서, "아휴 이걸 언제 씻지, 그냥 버릴까" 싶다.
2년 전쯤, 셋째 아이 젖을 끊으면서 멸균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보관과 휴대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활용이 안 되어서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짐이 됐다.
▲ 자르고 씻어서 마르길 기다리고 있는 빈 멸균팩 자르고 씻어서 마르길 기다리고 있는 빈 멸균팩 |
ⓒ 김성희 |
36개월이 된 셋째 아이가 우유를 많이 먹을 땐 하루에 4~5개까지 먹기 때문에 빈 팩이 금세 쌓인다. 여름에는 하루만 게으름을 피워도 안에 남아 있는 우유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 그냥 일반 쓰레기로 내놓으면 편하겠지만, 굳이 자르고, 씻고, 말리고, 매장에 가져다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셋이나 되는 아이들이 자라서 내 나이가 되었을 때도 나무를 보고 흙을 밟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기쁨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비교적 시원하던 강원도 정선에 있는 친정집에도 3년 전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사과 재배를 하는 집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지구 기온이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올여름 태풍이 다녀간 뒤에 동해로 휴가를 갔는데 해변에 파도에 밀려 온 쓰레기가 쌓여 있는 걸 보면서 한숨지었다.
환경이 점점 나빠지는 걸 눈으로 보면서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손수건을 챙겨 나가고, 친환경 세제를 쓰고, 전기를 아껴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배달 주문을 해야 할 때는 가능한 그릇을 회수하는 식당에서 하거나, 그릇을 가져가 포장해 온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재활용이 될 수 있도록 빈 용기들은 깨끗이 씻어서 내 놓는다.
뜨개질로 만들어 쓰던 수세미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와 물을 오염시킨다기에 대체 수세미를 찾았다. 섬유 유연제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에 물고기들이 죽는다는 얘기에 사용을 중단했다.
지구를 생각한다면서 해오던 소소한 노력들이, 더이상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 보낸다는 뉴스를 본 이후부터다. 아무리 반대한다고 서명해도, 결국엔 방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 앞에 무력해졌다.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바다나 지구 전체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다는데, '내가 우유팩 하나 그냥 버린다고 무슨 영향이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든다.
36개월이 지난 셋째 아이는 올여름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파도가 치는 걸 보고, 모래 놀이를 실컷 하다 주워온 조개 껍데기를 가지고 놀면서 말한다.
"파도가 얼굴로 올 때 짠맛이 났어! 바다엔 조개도 살고 상어도 살지! 바다 또 가고 싶어요!"
내년 여름에 가자고 말하다가 정말 다시 갈 수 있을까, 한숨이 났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기 싫어 말을 돌리느라 "오늘은 저녁 반찬은 뭘 먹고 싶어?" 물었더니 "물고기!" 했다.
'생선 좋아하는 이 꼬맹이는 앞으로 어쩌나.......'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앞으로 생선을 못 먹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못 했다. 요즘 "왜?"라고 묻는 일이 많은데, "바다에 오염수를 왜 버렸어?"라고 물으면 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오염수 해양 방류를 멈추어주세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버리는 쓰레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필요하면 사고, 필요하지 않으면 버리고, 내가 사용한 플라스틱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버려지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가 태어나 쓰는 기저귀가 썩는데 10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기저귀를 지금 당장 안 쓸 수도 없는 노릇. 환경 문제는 멀기만 하고, 내 편리함은 가까이 있었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에 원인 불명의 하혈을 3개월 동안 하면서 뭐라도 해봐야지 하던 때였다. 어디선가 생리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용하던 일회용 생리대를 면생리대로 바꾸게 되었는데, 몸이 서서히 나아졌다.
이 일을 계기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지구에 좋다는 일은 내 몸에도 좋겠구나 싶었고,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환경 문제가 더 잘 보였고, 아이들이 자라 살게 될 미래가 걱정되었다.
점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삶의 습관들을 바꿔왔다. 애초에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서부터였다.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 하자는 마음이었다.
귀찮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가위를 들고 빈 멸균팩을 잘라 깨끗이 씻었다. 창가에 가지런히 널어 두고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기도했다. "36개월 아기가 어른이 되어서도 바다에서 놀 수 있도록, 후쿠시마 방사는 오염수 해양 방류를 멈추어주세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만배-신학림 대화는 인터뷰가 아니었다
- 원희룡 장관은 실패할 것이다
- 환경미화원이 주운 고문서 속 '만병통치 비법'... 사실일까
- 땡전뉴스 연상시키는 '대통령 해외순방' 공문
- "교사들 설문조사, 가장 많이 한 말은 '살려주세요'"
- 검찰, 중선관위 압수수색... 이재명 '쪼개기 후원' 관련
- '단식 이재명 앞 먹방' 논란에 박광온 "이게 집권당의 윤리의식?"
- '사전선거운동 혐의' 하윤수 부산교육감, 1심 당선무효형
- [오마이포토2023] 용산 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보완책 마련하라"
- '국방부 개각' 보도에 민주당 "장관 교체 필요성 공감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