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한 아내들의 이름
[김철관 기자]
항일무장투쟁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홍범도 장군에 대해 정부가 해방 전 공산당 가입을 이유로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흉상을 옮기기로 결정하자, 야당은 물론 광복회, 여당의 일부 인사까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역사학계, 시민단체 등도 흉상 철거 반대에 힘을 쏟고 있다.
▲ 이윤옥 시인의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 |
ⓒ 얼레빗 |
국내, 중국(만주, 광복군, 임시정부), 미주 등에서 활약한 부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과 힘든 삶을 기록했다고나 할까. 저자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자연스레 부부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부부 독립운동가를 판별하는 기초 작업에서부터 벽에 부딪쳤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지난 수년 동안 기록을 찾아 나섰고,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 104쌍의 부부의 삶을 기록했다. 올해 제78주년 8.15 광복절을 맞춰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이 책을 정독하면서 눈길이 쏠리는 부부 독립운동가는 단연 홍범도 장군(1868. 8. 27~1943. 10. 25)의 부부였다. 현재 정부가 홍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옮기기로 하면서 현재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10월 12일, 홍범도 장군 탄생 150주년을 맞아 정부가 발행한 기념우표에, 태극기(국화)를 배경으로 군복을 입은 홍 장군의 사진을 담았다.
2018년은 홍 장군이 대활약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1주년이자, 서거 78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8월 13일 박정희 군사정권은 홍 장군의 현격한 공을 기려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를 모셨다.
1943년 10월, 75세의 나이로 서거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지역 공동묘지에 묻힌 장군의 유해가 2021년 8월 국내로 송환돼 그해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한평생 항일무장 독립투쟁의 삶을 살았던 그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1962년 대통령장과 2021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하지만 이 책은 홍 장군을 내조하며, 항일독립운동에 기여한 부인 단양이씨(1874~1908. 3. 이옥녀, 이옥구) 그리고 슬하의 자식 홍양순과 홍용환의 항일운동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럼 홍 장군은 부인 단양이씨와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장군이 금강산 신계사에서 승려의 길을 걷고 있을 때, 강원도 한 절에서 비구니의 길을 걷고 있는 부인을 만났다. 이후 연인 관계가 돼 승복을 벗고 결혼을 하게 됐단다.
"홍범도에게 귀순을 권하는 편지를 쓰라고 여러 번 협박했지만 그 때마다 이씨부인은 '계집이나 사내, 영웅호걸이라도 실낱같은 목숨 없어지면 그뿐이고, 내가 그런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 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죽어도 안 쓴다'라고 끝까지 버텼다. 자신들의 회유책에 응하지 않자, 이씨부인을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고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되자, 이씨부인(이옥녀)은 스스로 혀를 깨물어 고문에 맞섰으며 벙어리가 된 채 감옥에 갇혔고, 고문의 여독으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 본문 중에서
이후 불운은 이어졌다. 큰아들 홍양순(1892~1908.6 16)은 부친을 따라 의병 활동을 하다 1908년 6월, 17살의 나이에 함경남도 정평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의 공을 인정해 정부는 2021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작은 아들 홍용환 역시 1910년 10월 중구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에서 부친의 부하로 활동했다. 그도 정부에 의해 2021년 애족장이 추서됐다.
홍범도 장군은 마흔의 나이에 이씨 부인을 잃은 후, 20년을 혼자 살다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나이 60살에 아내 이인복을 맞아 노년을 보내다가, 75살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에 의해 홍 장군의 유해는 조국으로 봉환됐다고 하지만, 남편의 항일 운동으로 고초를 겪었던 독립운동가 이씨 부인과 둘째 부인 이인복의 유해에 대해서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보다 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안창호)." - 본문 중에서
이에 대해 부인 이혜련 지사는 어떤 답을 했을까.
"당신은 애국자요. 여걸의 인물로서 국가에 속한 사람이니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대로 마음 놓고 활동하시오." - 본문 중에서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부인에게, 부인 이혜련 지사(1884. 4. 21~ 1969. 4. 21)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이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혼인 생활 35년 중 함께 실제로 산 기간은 13년 밖에 되지 않는다. 남편이 독립운동을 위해 뛰어다닌 동안 부인 이혜련 지사는 다섯 자녀 양육과 동시에 가정 경제는 물론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남편 못지않은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이혜련 지사와 같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안창호 선생은 일제의 국권침탈 속에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고, 독립운동 외에도 흥사단을 조직해 계몽운동을 했다. 상해에서는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도 활동했다.
가짜 독립유공자에게 빼앗긴 부친의 정부 표창을 부친 사후, 자식이 되찾아 온 광복군 황영식 지사(1913~1969. 1991년 애국장)와 함께 광복군으로 활동한 부인 김봉식 지사(1915. 10. 9 ~ 1969. 4. 23. 1990년 애족장)의 얘기도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아들 황부일씨가 부친 황영식 지사가 받아야할 표창을 가짜독립유공자에게 빼앗겨 되찾기 위해 걸린 시간은 28년이었다.
중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한 것을 인정받은 황영식 지사는 63년 8월 13일 다른 광복군 출신 323명과 함께 표창을 받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안이하고 무성의한 행정 처리로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는 엉뚱한 황영석(82년 사망)씨에게 표창이 수여됐다.
당시에 아버지와 함께 광복군 활동을 한 분들이 많이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황영석'이라는 이름은 광복군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68년 8월 13일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표창을 발행한 상태였다. 69년에 부친(황영식)이 눈을 감았기 때문에, 제대로 표창이 수여됐다면 생전에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63년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명으로 발행한 대통령표창장에는 황영식이라고 되어있었는데, 19년간 황영석이라는 사람이 '식'자를 '석'자로 고쳐서 황영식의 행세를 했다. 이후 이 표창장은 다시 '식'자로 고쳐 황영식 지사의 아들 황부일 씨 품으로 돌아왔다." - 본문 중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성숙 지사와 중국인 부인 두쥔훼이 지사의 얘기도 솔깃하게 들린다. 김성숙 지사(18988. 3. 10.~ 1969. 4. 12, 독립장)는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 승녀로 있을 때, 동지들과 비밀리에 독립 문서를 만들어 일반대중에게 살포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 북경으로 가 조선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고, 임시정부 내무차장 등을 역임했다.
부인 두쥔훼이 지사는 남편을 도와 한국 독립을 위해 적극 뛰었다. 1945년 7월 11일 미주에서 발행한 신문 <독립>에 '해외 조선부녀 동포에게-혁명자 후원 사업을 하자'라는 글을 통해 조선 해방을 위한 혁명자 후원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이 책은 유관순의 열사의 모친 이소제 지사와 부친 유중권 지사가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의 총칼에 현장에서 순국했던 아픈 사연도, 남편 황병길 지사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부인 김숙경 지사의 고통도, 일본 땅에서 제국주의 타도의 선봉장으로 젊음을 불사른 박열 지사와 일본인 부인 가네코후미코 지사의 얘기 등 부부 독립운동가 104쌍을 고스란히 담았다.
특히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저자는 3년 전 완성한 원고였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쇄비가 없어 전전긍긍했다고. 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 지원을 했지만 안타깝게 떨어졌다. 원고를 폐기하려는 마음까지 생겼는데, 다시 마음을 잡고 개인 사재와 지인의 도움으로 출판을 한 책이 바로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이다.
문학박사인 저자 이윤옥 시인은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세계문인협회 정회원이다.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 시와 역사로 읽는 여성운동가 열전 <서간도에 들꽃 피다 1~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경기의 얼, 여성독립운동가 40인의 삶>,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 한중일어로 된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20권을 냈다. 이외에도 일본관련 저서도 다수가 있다.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교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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