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기어코 미드필더처럼 쓴 클린스만, 예고된 전술 실패

김정용 기자 2023. 9. 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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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6월 예고했던 손흥민 8번(중앙 미드필더) 기용을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경기 양상은 수많은 사람의 예상대로였다. 한국의 경기력은 나빴고 손흥민의 능력은 낭비됐다.


8일(한국시간) 영국 카디프의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가진 한국과 웨일스가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로써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첫 승은 5경기째 실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앞선 6월 소집을 마무리하는 인터뷰에서 "손흥민의 8번 기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에는 손흥민을 투톱 아래에 쓰겠다는 말이었는데, 웨일스전에서 비슷한 기용을 실제로 실험했다.


선발 라인업상 손흥민이 섀도 스트라이커인 4-2-3-1 또는 4-4-2처럼 보였는데, 경기 중 손흥민이 자주 후방으로 내려가 미드필더처럼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기가 답답해 후방까지 내려가 공을 받나 싶었지만 종료 후 본인 인터뷰에서 "오늘 같은 경우는 4-1-4-1을 썼다"고 말한 점에서 손흥민의 이날 위치는 역삼각형 미드필더 3명 중 한 자리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박용우가 수비형 미드필더(6번), 손흥민과 황인범이 8번으로 배치된 것이다.


공격수를 미드필더로 써서 성공한 사례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팀이 맨체스터시티다. 지난 시즌 주력 전술이었던 3-2-4-1 포메이션이 일부 선수의 부상 때문에 4-2-3-1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두 포메이션이 혼용되고 있다. 이때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는 선수가 훌리안 알바레스다. 원래 스트라이커로 분류되는 알바레스를 엘링 홀란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고 있으며, 경기 양상에 따라서는 베르나르두 실바, 필 포든 등의 옆에서 나란히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경우 알바레스의 위치는 원톱 아래 4명 중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 해당한다. 단순한 그림으로는 웨일스전 손흥민과 비슷하다.


하지만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손흥민과 같은 스타일의 선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건 극단적인 공격 전술에 가까웠다. 4-1-4-1이라는 표기는 중앙 미드필더의 성향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콘셉트로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 앞에 배치되는 두 중앙 미드필더가 힘싸움과 중원 장악 위주인 선수일 때, 4-1-4-1이라는 숫자 표기는 사실상 4-3-3보다 두 윙어가 더 후퇴했다는 의미를 가지며 다소 수비적인 포진을 의미한다. 반면 좌우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가 모두 공격적인 선수일 때는 2선 자원을 무려 4명이나 기용하며 공격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의 배치가 된다. 이 경우에는 4-2-3-1보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 줄이고 공격형 미드필더를 늘렸다는 뜻이다.


8번으로 손흥민을 기용하는 전략이 잘 통하려면, 기본적으로 팀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야 한다. 맨시티는 선수들이 화려할 뿐 아니라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앞서가는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부분전술의 완성도 역시 최고인 팀이다. 원래 공격수였던 선수라도 전술 수행능력이 좋다면 팀이 요구하는 움직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팀의 약속된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하고 상대를 공략할 수 있다면 그 선수가 원래 공격수였는지 미드필더였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팀의 전술 완성도가 떨어질 경우에는 문제가 커지는데, 이번 손흥민이 그랬다. 손흥민이 8번으로 기용돼도 큰 문제가 없는 경우를 몇 가지 상정해볼 수 있다. 한국이 수비라인을 전반적으로 올리고 경기한다면 손흥민이 3선에 있더라도 상대 진영까지 빠르게 전진할 수 있다. 혹은 3선으로 내려왔다가 2선으로 올라가는 움직임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패스가 잘 순환된다면 팀 전체의 공격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손흥민의 위치는 공격력을 죽일 뿐이었다. 세계적으로 봐도 빌드업에 능한 수비수 김민재, 뛰어난 미드필더 황인범, 측면 플레이보다 중원 플레이가 능숙한 윙어 홍현석 및 이재성 등이 호흡을 맞췄다. 약속된 패턴 한두 가지, 또는 팀의 방향성이 약간만 정리돼 있다면 이들이 패스를 돌리면서 웨일스 중원을 교란할 수 있었다. 홍현석을 뺀 선수들은 지난 5년간 A매치에서 수많은 호흡을 맞춰 온 사이다.


손흥민(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실제로 손흥민의 미드필더 기용은 공수 양면에서 한국의 잠재력을 봉인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공격이 잘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여파로 공을 일찍 빼앗기고, 압박 대형이 부실해 상대 빌드업을 막지 못하고, 중원의 조직이 잘 구축되지 않아 쉽게 뚫리는 등 연쇄적인 부작용이었다.


손흥민의 모습은 소속팀 토트넘홋스퍼에서 지난 시즌 손흥민에게 수비적이고 도구적인 역할을 줬다가 경기력이 떨어졌던 양상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 6월부터 구상해 온 것으로 보이는 '손흥민 8번'은 실패로 돌아갔다.


클린스만 감독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로 거론했던 유럽파 컨디션 체크 역시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최근 손흥민이 소속팀 토트넘에서 윙어 및 최전방 공격수로 좋은 활약을 했는데,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를 등한시하는 대신 "여기서도 워커홀릭"이라며 세계 축구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어떤 역할일 때 경기력이 좋은지도 검토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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