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을 조롱하지 말라

김만배와 신학림 사이에 오갔다는 '책값' 1억 6천만 원에 대하여

[최경순 기자]

天作孼(천작얼) 猶可違(유가위), 自作孼(자작얼) 不可活(불가활)
'하늘이 내리는 재난은 피할 수 있지만, 자기가 만든 재앙는 피할 수가 없다.'
- 서경(書經)

9월 6일. 야근 날 자정.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는 김만배를 기다렸다. 워낙 핫한 뉴스메이커라서 언론들이 장사진이었다. 12시가 되자 구치소 문을 걸어나와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이 쏠렸다.

그중에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 지도>라는 3권짜리 신학림의 책을 '1억 6천 5백만 원에 샀다'라는 논란에 대한 김만배의 당당한 변명에 깜짝 놀랐다. '책값'이 맞고 '평생의 업적이 깃든 예술 작품'이란다.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선거철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를 연다. 행사에 찾아온 사람들은 서적을 구입하는데 정가로 책값을 내지 않는다. 마치 결혼식 축의금 내듯이 각자 성의껏 금일봉을 전달한다. 유력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가보면 행사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흰 봉투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봉투 안의 금액은 책값의 수배에서 수십 배에 이를 것이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왼쪽)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 ⓒ 오마이뉴스 복건우/연합뉴스

일반 국민은 생각할 수도 없는 큰돈을 건네주고는 '예술작품 같은 책'이라는 얄팍한 말장난으로 눈 가리고 아웅을 하려는 김만배의 변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거기에 더해 언론계의 사표로 삼는 '신학림'이 자기가 받은 1억 6천5백 만 원이 책값이 맞다며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을 보니 더 할 말이 없다. 신학림은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그런 편법적인 구태를 가장 앞서서 비판하던 언론인이었다. 차라리 비루할지언정 '생계비'나 '언론 운동 격려비'로 받았다는 말이 솔직했을 것이다.

김만배가 신학림에게 건넨 그 돈이 인터뷰 조작 비용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당한 '금품제공'과 '금품수수'이다. 이것에 대해 '책값'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두 번 기만하고 조롱하는 거다. 정치인입네, 지식인입네, 언론인입네 하는 자들이 부당하고 은밀한 거래의 방편으로 '책'을 이용하고 그 '가치'를 예술품으로 둔갑시켜 희화화하는 것이 개탄스럽다. 우리 편이니까 봐주고 남의 편이니까 후벼파는 '보수 대 진보', '여당 대 야당'의 진영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의 문제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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