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는 신인종 예술가 윤진섭 개인전

이혁발 2023. 9. 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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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병상일지', 서울 종로 gallery pi & kim에서 10월 14일까지

[이혁발 기자]

▲ 전시 광경 윤진섭 작가가 거리 퍼포먼스를 끝내고 나서 전시장에서 포즈
ⓒ 이혁발
전 세계에 이런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전 부문에 활화산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쉬지 않고 뿜어내는 이런 유형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라 아니 할 수 없다. 윤진섭 스스로 자신을 크리큐라티스트(비평가(critic), 기획자(curator), 예술가(artist)를 조합한 단어)라고 명명할 정도로 비평, 기획, 작가 세 분야에서 혁혁한 공들을 쌓아왔고 쌓아가고 있다.

1, 3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예술감독, 2000 서울국제행위미술제 총감독 등의 기획자로서 역량을 펼쳤고, 단색회화란 말을 만들고 세계적으로 한국의 단색화 붐을 불러온 것은 그의 비평가 역량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작가로서는 교수직을 그만둔 이후 매일 증식하는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작품을 토해낸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페북에 올린 작품(주로 드로잉)이 2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작업도 평면 드로잉, 입체 드로잉, 설치미술, 개념미술, 행위미술까지, 즉 전통적 그림에서부터 전위적 실험적 예술까지 아무 경계가 없다.
 
▲ 윤진섭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드로잉 작업 우측 하단의 얼굴 사진은 1977년 행위미술 <어법>을 했을 때의 사진 중 하나
ⓒ 이혁발
 
한 몸 안에 100여 명의 작가

<추사, 명호처럼 살다>(최준호 지음)라는 책에 따르면, 추사 김정희의 호가 334개였다 한다. 이 부분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윤진섭도 100여 개의 예명을 쓴다. 내일이면 또 다른 예명을 들고 나올 것이다. 모든 이들은 ‘이름’이라는 고유성을 유지하고 유명해지려고 한다.

윤진섭은 이 고유명사에 대한 고착된 사고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 또 사람들이 자기 작품인줄 모르는 혼동을 겪는 것을 즐기며 놀이처럼 하고 있는 이 예명 쓰기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자신 속의 다양한 자아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측면에서도 개념미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중 자아는 범죄자나 사이코패스, 정신병자에서 자주 드러나는 편인데, 이것을 예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놀이처럼 긍정태/긍정적 에너지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종이컵 등에 드로잉한 작품들
ⓒ 이혁발
 
삶이 예술... 일상용품(폐품)을 작품화

이번 윤진섭 개인전 주제는 '40일간의 병상일지'이다. 건널목에 서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국립의료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뇌가 깨진 상태였다. 이 40일간의 투병 생활 동안 약 600여 점의 드로잉 작업을 만들었다. 포장판매 종이컵, 과자 상자, 병원 환자용 수저 종이봉투 등 일상에서 만났던 버려지는 것들과 노트 위에 드로잉 작업을 하였다.

전시는 병원에서 하였던 이 작업들과 주걱, 술병, 등 일상용품 드로잉, 골판지에 테이프로 드로잉한 작품, 비닐 뭉텅이(공 모양=주변인들이 보내오는 도록의 비닐표지를 모아 만든 작품) 등의 그전 작업들 총 2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병원에서 한 나머지 400여 점의 드로잉은 화면 '슬라이드 보기'로 보여준다. 또 행위작업도 상영되고 있다.
 
▲ <밤 바다> 종이 상자에 테이프 등을 이용해 밤 바다 풍경을 만듦
ⓒ 이혁발
거리행진이 끝나고 그 소품들까지 전시장에 모아둔 모습은 일견 쓰레기장 같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버려지는 일상용품(폐품)을 작품화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예술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또 그냥 버려질 것들, 그 보잘것없는 것들에 생명을 부여하였다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물에 귀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물과 함께 너울거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주창한 것이다.

윤진섭은 직접 만드는 것만 작품으로 생각지 않는다. 개념미술가답게 길 지나다가 만나는 세월이나 자연현상으로 빚어진 어떤 상황의 한 장면이 자신이 만든 것보다 더 의미 있을 때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내가 바라보고 선택한 한 장면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만들거나 만들어져 있거나 온갖 것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예술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지향점인 '삶 자체가 예술'인 삶을 끝없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 행진 퍼포먼스 모습
ⓒ 이혁발
 
"예술은 소똥(소통)이다"

윤진섭은 행위미술 분야에도 이론가이자 실천가다. 1995년 <행위예술 감상법>이란 책을 썼고, 1977년, 22살이라는 약관의 나이에 13세 연상인 이건용과 '윤진섭, 이건용 2人 EVENT'를 열었었다.

2023년 9월 5일 개막일 17시, 종로구 팔판동 전시장 주변을 거리행진 하는 행위미술을 펼쳤다. 윤진섭은 병원 약봉지 과일 보호 싸개 등 각종 쓰레기를 온몸에 부착한 후 드로잉 때 사용했던 칠판펜을 테이프로 붙여 만든 총과 실탄을 들고, 휴대용 스피커를 사용하며 행진을 이끌었다.

참여자들에게는 종이상자 판에 예술에 대한 단상을 쓰게 한 후, 그것을 들고 선글라스 낀 후 행진을 따르게 했다. "예술은 자유다", "예술은 소똥(소통)이다" 등의 여러 구호를 윤진섭이 앞부분을 선창하고 뒤따르는 사람들이 뒷부분을 외쳤다.

이번 거리행진 퍼포먼스는 1969년 '제4집단'의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을 떠올리게 했다. 그 행진은 기존 문화예술에 대한 신랄한 비판 행위였고, 이번 행진은 "일상도 예술"이다. "모두가 예술가"이다. "예술처럼 살자"라는 의미가 있는 '예술 폭탄 터트리기/퍼트리기' 행진이었다.

행위미술은 짧고, 행위 즉시 사라진다. "예술은 자유다"란 외침은 행위미술처럼 사라지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고,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는 것이리라.

또 어떤 제약도 없는 예술작업, 그 본능적 창작 욕구의 분출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해방감의 비를 뿌려준다.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즐거움은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 다방면에 감각이 발달하여 있는 윤진섭은 무엇이든 예술화 하고자 하는 이 자유로운 창작 작업에 최적화 돼 있는 인간 유형인 것이다.
 
 쓰레기도 예술이 된다는 구호 자체가 예술이 된다.
ⓒ 이혁발
 
전시장에선 작가가 그간 한 행위미술 작품도 압축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전시는 종로구 팔판동의 gallery pi & kim에서 10월 14일까지 이뤄진다. 전위나 아방가르드라는 거창한 용어의 예술이 쓰레기들 속에서 나뒹굴며 반짝거리고 있음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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