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들

최현준 2023. 9. 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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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은영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현준 기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 술기운을 빌려 가끔은 인생에 대한 푸념과 해결되지 않을 고민들을 종종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위로답지 않은 위로가 들려오곤 한다. 

"어쩔 수 없지 뭐."

친구 딴엔 위로로 한 말이겠지만, 술김에 부끄러움을 감추고 입을 뗀 나에겐 기운이 주욱 빠지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체념이 아닌 위로가 필요했었나. 나 역시도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씁쓸하게 소주잔을 비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발하곤 한다. 문제에 맞서 싸우기보다 현실에 순응하는 방향을 택한다. 세상은 원래 그렇고,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인생을 수월하게 사려고 뱉었던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되려 인생을 피폐하게 만든다. 최은영의 신간 단편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우리는 그러한 인물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최은영의 세번째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Yes24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 하는 것. 
- '답신' 150p

지금까지 최은영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전부 여성들이었고, 이번 소설집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포함한 7편의 소설은 모두 여성의 시각으로 전개되었다. 저자는 각 작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희생당한, 혹은 강요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가장 많이 놓이는 때는 바로 결혼과 육아를 맞닥뜨릴 때이다. 여성은 결혼 후 '아내'라는 지위에, 출산 후 '엄마'라는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된다.

단편 '몫'에서 항상 솔직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편집부 선배 '정윤'은 같은 부원인 '용욱'과의 결혼으로 인해 주인공 '해진'에게 솔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단편 '답신'에서 등장하는 언니 역시 동생을 분명히 사랑함에도, 가정과 남편, 그리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끝내 거짓된 미소를 짓는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이들은 '저항'이라는 단어도 떠올리지 못한 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다.
 
"그때야 다 그랬다지만 ... 다 그랬던 건 아니야."
 - '이모에게 ' 237p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단편 '파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딸 '소리'와 그녀의 오빠 '민혁'은 타인의 고까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민혁은 '소리'를 어른스럽다고 칭찬하는 이들에게 정색하며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또,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빨리 철이 들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규칙을 경계한다.

이들은 '텃밭 가꾸기'라는 다소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며 세상이 정한 행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한다.

단편 '이모에게'에 등장한 나의 '이모' 역시 어쩔 수 없는 세상에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남들이 정한 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부터 이모에게 자란 소설 속 '나'는 그러한 모습이 못마땅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자 조금씩 이모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꿈쩍 않는 세상과 맞서 싸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인생을 수월하게 살 수 있는 마법 같은 문장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를 상실하는 파괴적인 문장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날에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죄의식과 책임감에서 잠시 벗어나 실패자가 된 느낌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분명 긍정적인 정신상태를 가져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 소설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하고 스스로를 포기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이 노력해도 사회는 바뀔 수 없으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와 같은 좌절감과 무기력은 결국 더 큰 자책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의 냉철함과 현실의 쓴맛을 겪은 이들에게 무작정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무작정 남을 탓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진정으로 '어쩔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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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현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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