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미소? 가짜 웃음도 좋다는데…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3. 9. 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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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모처럼 주말에 아내와 함께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 구원(이준호 役)은 호텔 재벌 2세고, 여자 주인공 천사랑(임윤아 役)은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일하는 호텔 일등 친절 사원이다. 완벽해 보이는 남자 주인공에게 약점이 있었는데, 거짓된 웃음을 보면 이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울면서 찾아다니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이 장면은 남자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자신을 향해 거짓된 미소를 지을 때, 그는 공포와 혼란을 느낀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언제나 미소를 잊지 않는 여자 주인공에게 화난 듯 이야기한다. “웃지마. 내 호텔에서 거짓된 웃음을 없앨 거야.”
‘자본주의 미소’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치킨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던 연예인이 치킨 광고에 등장해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짓는, 진심이 없는 가짜 웃음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살다 보면 가짜로 웃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생기는 것을.

심리학 분야에서도 진짜 웃음, 가짜 웃음은 흥미로운 연구 주제였다.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기욤-뱅자맹-아르망 뒤센 드 불로뉴(Guillaume-Benjamin-Amand Duchenne de Boulogne)는 안면 근육 마비를 앓고 있는 구두 수선공을 상대로 조금은 끔찍한 실험을 했다. 얼굴의 여러 부분을 전기로 자극하고 그 전기 자극으로 인한 근육 수축이 만들어 내는 표정을 확인해, 얼굴 근육과 표정의 관계를 살펴본 것이다.

일반적으로 웃음과 관련돼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두 개의 얼굴 근육이 있는데, 하나는 큰광대근(대협골근, 광대뼈에서 양 입술 가장자리로 이어져 있는 근육)이고, 다른 하나는 눈둘레근(안륜근, 눈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이다. 이 두 근육이 함께 수축하면 웃는 표정이 된다. 큰광대근은 의도적으로 수축하는 것이 가능한데, 눈둘레근은 의도적으로 수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입꼬리를 올리는 웃음은 거짓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눈까지 웃는 웃음은 거짓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뇌파를 확인해 보니 진짜 미소를 지으면 즐거움을 느낄 때 관여하는 뇌의 부분이 활성화됐지만, 가짜 미소를 지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눈까지 웃고 있는 진짜 웃음은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뒤센 미소(Duchenne Smile)', 눈이 웃고 있지 않은 가짜 웃음은 ‘팬암 미소(Pan Am Smile)’라고 한다. ‘팬암’은 미국의 팬 아메리카 월드 항공사(Pan American World Airways)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항상 보여주는 미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그런데 왜 수많은 항공사 중에서 팬암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렇듯 가짜 미소는 눈웃음 여부가 그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의외로 가짜로 눈웃음 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눈웃음을 짓지 않는가? 사실 진짜 웃음에만 존재하는 눈웃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눈웃음과는 조금 다르다. 눈웃음을 만드는 눈둘레근은 두 부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눈꺼풀과 그 주변 피부를 수축시키는 안쪽 부위와 안와(해골에서 안구가 들어가는 뻥 뚫린 공간) 주위를 관장하는 바깥쪽 부위다. 바깥쪽 부위는 의도적인 수축이 가능하지만, 안쪽 부위는 불가능하다.(10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이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래서 바깥쪽 부위의 수축으로 눈썹과 눈썹 밑의 피부를 아래로 내리는 눈웃음은 지을 수 있지만, 눈 안쪽 부위까지 찡그려지는 눈웃음은 의도적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다. 때문에 드라마 속 주인공의 ‘가짜 웃음을 없애겠다’는 대사는 ‘호텔에 있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이 된다. 매우 감동적인 말이다.

실제로 진짜 웃음을 잘 지으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한 연구에서 1950년 이전에 데뷔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프로필 사진 속 표정을 토대로 무표정, 가짜 웃음, 진짜 웃음의 세 집단으로 나눈 후 각 집단 별 평균 수명을 확인했다. 결과는 각각 72.9세, 75세, 79.9세였다. 진짜 미소를 짓고 있는 선수들이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행복한 환경에서 진짜 웃음을 짓는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매 순간 행복할 수는 없는 법. 가짜 웃음을 짓지 말라는 말은 진짜 웃음을 지을 기회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말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진짜 행복하지 않을 때에는 가짜로라도 웃는 것이 낫다. 위에서 언급한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의 수명을 잘 보자. 진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만큼은 아닐지라도 가짜 웃음을 짓고 있는 선수들은 무표정한 선수들보다는 오래 살았다. 가짜 웃음이라도 지으면 삶이 더 나아지는 셈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웃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 화내는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보다 실제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가짜 웃음에 뇌도 속는 셈이다. 힘들 때 웃는 것이 프로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웃을 일이 없더라도 한 번 더 웃자. 그 웃음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며, 그 행복해진 마음은 다시 당신에게 진짜 웃음을 짓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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