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까지 소유했던 브레게 가문...항공 시계 잘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더 하이엔드]

이현상 2023. 9.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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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의 대표 항공 시계 컬렉션 타입 XX. [사진 브레게]

시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5대손인 루이 샤를 브레게(Louis Charles Breguet)는 일찍이 항공 업계에 관심이 많았다. 하늘을 정복하겠다는 당찬 꿈을 가진 루이 샤를은 1911년 루이 브레게 항공 공방을 세우고 헬리콥터의 전신인 자이로플레인을 비롯해 여러 항공기를 만들었다(현재 이 공방은 프랑스의 항공기 제조사인 다소 항공(Dassault Aviation)으로 발전했다). 시계와 항공 분야에 걸친 브레게 가문의 행보가 이채롭다.

브레게와 항공 산업과의 인연은 1세기를 훌쩍 넘어선다. 사진은 프랑스 다소가 제작한 항공기로 이 회사는 루이 브레게 항공 공방에서 발전했다. [사진 브레게]

항공과 시계 업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확한 시간 측정은 곧 비행기에 올라탄 파일럿과 승객 모두의 생명과 직접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타입(Type) XX는 이처럼 항공 산업과 워치메이킹 분야의 긴밀한 관계와 두 분야에 모두 관심을 가진 브레게 가문의 염원으로 탄생한 시계 컬렉션이다.

항공기 조종석 계기판에 탑재한 브레게의 시계. [사진 브레게]

타입 XX가 탄생한 건 70년 전. 하지만 브레게는 이전에도 항공 전문 시계 제작에 대한 전문성을 드러냈다. 브레게 아카이브에 따르면 브레게는 1930년대부터 특수 항공 시계를 제작했다. 군용 항공과 에어프랑스에 납품하기도 했다. 항공기 조종석 계기판, 특히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에 탑재된 항공 클록은 브레게 연혁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로 꼽힌다. 조종사의 손목에 채워질 시계, 즉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의 중요성도 커졌다. 1950년대 초 타입 XX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다.

비행의 영원을 담다
당시 프랑스 공군은 야광 인덱스와 시곗바늘을 더한 블랙 다이얼, 기압 변화 및 가속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무브먼트, 재빠르게 재측정이 가능한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회전 베젤 등 다양한 기술과 스펙을 갖춘 조종사용 시계를 찾고 있었다. 이에 여러 브랜드가 경합을 벌였고 그 결과 항공 시계 부문에 풍부한 경험이 있는 브레게가 선택됐다. 1952년 프로토타입 제작, 1953년 프랑스 항공 기술 서비스의 승인을 거쳐 타입 XX는 1954년 프랑스 공군의 손목에 얹혀진다.

1950년대 중반 제작된 타입 XX 모델. [사진 브레게]

이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만든 시계는 파일럿 크로노그래프 워치의 정석과도 같았다. 30분 크로노 카운터가 있는 매트한 블랙 다이얼은 가독성이 뛰어났고 양방향 회전 베젤을 얹은 케이스는 견고했다. 백케이스에는 'BREGUETTYPE20-5101/54’ 공식 문구를 새겼다. 1959년까지 프랑스 공군이 주문한 이 시계의 개수는 1100개였다. 한편, 비슷한 시기 프랑스 해군은 해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와 선원을 위한 시계 500점을 주문했다. 12시간 카운터와 15분 카운터를 탑재한 시계였고, 백케이스에는 ‘BREGUET-MARINE NATIONALE-AERONAUTIQUENAVALEN°X /500’을 새겨 정식 군수품임을 밝혔다.
이후 타입 XX의 명성은 치솟았다. 민간 항공 조종사와 일반 고객도 타입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1세대 타입 XX는 1970년까지 판매됐다. 2세대(71~86년)와 3세대(95~2022년)로 이어진 타입 XX는 진화하며 정통 파일럿 워치 계보를 이어 나갔다.

새로운 전설의 시작
올해 브레게는 타입 XX 탄생 70년을 맞아 2점의 4세대 타입 XX를 출시한다.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67 모델(왼쪽)과 2057 모델. 두 시계 모두 70여 년 전 생산한 초기 타입 XX 컬렉션을 재해석해 완성했다. [사진 브레게]

첫 번째는 일련번호 2057을 받은 모델로, 1959년까지 1100점 생산한 군용버전 타입 20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됐다. 블랙 매트 다이얼 위에 민트 그린 야광 염료를 입힌 인덱스와 시곗바늘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시계다. 3시 방향에는 크로노 30분 카운터, 9시 방향에는 초침 역할을 하는 스몰 세컨즈를 배치했다. 세로로 길게 홈을 낸 플루티드 베젤과 서양 배(pear) 모양의 크라운 등 70년 전 처음 출시된 모델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57. 매트한 블랙 다이얼 위 민트 그린 야광 염료를 입힌 인덱스와 시곗바늘이 시선을 모은다. [사진 브레게]

또 다른 모델은 일련번호 2067을 내건 민간용 버전으로 1957년 만든 모델을 재해석했다. 2057 모델과 다르게 이 시계는 3개의 카운터를 다이얼에 두었다. 3시 방향엔 15분 카운터, 6시 방향에는 12시간 카운터, 9시 방향에는 스몰 세컨즈가 있다. 인덱스와 핸즈에 더한 아이보리 컬러 야광 염료는 송아지 가죽 스트랩과 조화를 이루며 빈티지한 무드를 완성한다. 양방향 베젤 위에 새긴 숫자 눈금도 파일럿 무드와 잘 어울린다.

밀리터리 무드가 짙은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67 모델. [사진 브레게]

두 시계 모두 4시와 5시 방향 사이에 날짜 창을 탑재했다. 시계의 심장은 60시간의 파워리저브 기능을 갖춘 셀프와인딩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다. 백케이스로 드러난 무브먼트의 고급 장식 기법과 칼럼 휠·로터의 블랙 DLC코팅 방식에선 하이엔드 시계 명가로서의 면모가 느껴진다. 케이스의 방수 성능은 100m로 웬만한 여가활동에도 너끈하다.
두 시계 모두 가죽 스트랩 이외에 나토 패브릭 스트랩을 추가로 제공해 활용도가 높다. 별도의 도구 없이 스트랩을 손쉽게 교체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추가 제공하는 나토 패브릭 스트랩을 케이스에 연결한 모습. 스포티한 연출에 좋다. [사진 브레게]

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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