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검사 또 받아” 재정낭비 비판받는 ‘건강검진’
전문가들, 과도한 검진 경계…“합병증 발생·의료비 증가”
“국공립병원들조차도 과잉 검진…의료체계 훼손”
복지부, 민간 검진센터 규제안 등 고심
건강검진 제도가 빈축을 사고 있다. 조기에 진단해 병을 예방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병을 키운다는 비난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원흉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본래의 취지가 무색한 빛바랜 제도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7일 국립암센터와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국립암센터 국가암예방검진동 국제회의장에서 ‘우리나라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23회 보건의료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건강검진 제도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비효율적인 검사 항목 구성에 따른 중복 검사와 재정 낭비를 지목했다.
과거 건강검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아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직장·지역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암 검사 등이 이뤄지는 일반 건강검진이 전부였다. 이후 2007년부터 영유아 검진, 생애전환기 검진, 암 검진 등 국가 주도 건강검진이 확대됐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나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이 진행하는 의료급여 대상자 검진, 노인 건강진단, 치매 조기검진, 청소년 건강진단, 근로자 건강진단 등과 더불어 민간검진까지 난립하면서 검진 중복 현상이 불거지게 됐다.
수검자(검사받는 사람)가 암이나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이미 진단받았는데 민간검진 등에서 이를 또 검사하는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검진으로 인해 수검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행여 잘못 진단됐을 경우 불필요한 치료로 이어져 오히려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의료비용 증가를 이어지며 건강보험 재정 낭비와 직결된다. 전문가들이 과도한 검진을 경계하는 이유다.
강은교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 선임연구원은 “민간 검진센터들 중에는 수검자들이 평소 갖고 있는 특정 암이나 질환에 대한 두려움, 검진 호용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자극해 특정 검사가 필요하다며 과도한 검진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자칫 불필요한 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나친 검진은 지나친 치료로 이어져 합병증이나 불안감이 뒤따를 수 있고 의료비 증가라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0월1일부터 12월28일까지 총 7개 민간 암검진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민들이 불필요한 과잉 검진을 받지 않도록 검진에 대한 적정 정보 제공과 함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검진기관의 기본 검진 가격대는 가장 낮은 25만원에서 가장 높은 99만원까지 약 4배 정도의 금액 차이를 보였으며, 기본 검진 프로그램에 추가적인 검사를 더하는 프리미엄 검진의 경우 숙박검진을 운영하는 기관이 가장 고가였다. 숙박을 제공하는 검진기관의 경우 700만원에서 1100만원대 초반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 검진기관 중 5곳이 국가검진 항목과 같은 검사를 시행하고, 나머지 2곳만이 국가검진 항목 외 추가로 맞춤형 검진을 시행하거나 국가검진 병행 시 비용을 줄여주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강 선임연구원은 “건강검진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부작용에 대한 인식 부족은 불필요한 검사를 일으키고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어 적정한 검진 정보 제공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가검진에 대한 국민 인식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불필요한 검진을 받지 않도록 검진 실태를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가톨릭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교수 역시 건강검진의 시장화를 우려했다. 건강검진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보건의료 영역인지 아니면 수익 창출을 위한 산업 영역인지 그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미국, 영국 등의 건강검진은 주로 1차의료(동네병원) 의사를 통해 이뤄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대형병원이 검진센터를 갖고 있는 기형적 구조에서 검진센터를 통한 검진이 이뤄지고 있다”며 “검진 후 사후관리에 있어서도 1차의료 의사를 건너뛰고 검진기관이 바로 직접 3차병원으로 의뢰한다. 이는 곧 의료서비스 분절화, 의료체계 훼손, 3차병원 환자 쏠림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일반 건강검진 수검자 중 20% 이상이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이미 치료를 받고 있는데 주치의와 상의 없이 획일적으로 불필요한 검사를 시행해 재원이 낭비되고 있는 점도 문제”라며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공립병원들조차도 과잉 검진을 자행하고 있어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건강검진 제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고심이 깊은 모양이다. 김한숙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민간검진은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기기 때문에 국가의 관리 기전이 아예 없다”며 “검진 능력을 평가하거나 규제하는 등 잘못된 기관은 철퇴를 내리고 싶은데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여건이 없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환자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검진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게 힘들다”며 “국가검진을 논할 때 검진 기준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하려는 목적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건강관리를 위한 건지 방향이 결정돼야 하는데 앞으로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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