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포대로 가족 11명 먹고 산다" 난민에 희망 된 한국 쌀

김효성 2023. 9.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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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서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한 초등학교에서 한국 정부가 지원한 쌀로 지은 밥을 배급하고 있다. 사진 WFP

동아프리카 국가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에서 자동차로 13시간 거리에 있는 카쿠마(Kakuma) 난민촌. 연평균 강우량이 49mm에 불과한 이곳 사막 지역에 26만2283명(올해 8월 기준)의 난민이 모여 산다. 소말리아·남수단 등 인근 분쟁국에서 살길을 찾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식은 밀이지만 농사를 지을 농토도, 충분한 물도 없다. 오직 기대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되는 식량 배급뿐이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쌀은 이들에겐 마른 하늘의 단비 같은 존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식량 원조 국제기구인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올해 1~8월 카쿠마 난민촌에 3384톤의 쌀을 지원했다. 난민 19만5000여명이 이 쌀을 먹고 버텼다.

한국 정부가 지원한 쌀이 케냐 카쿠마 난민촌 소재 WFP지부에 보관되고 있다. 사진 WFP


중앙일보는 지난 1일(현지시간) 카쿠마 난민촌을 찾아 한국 정부의 인도적 식량 지원 현황을 국민의힘 김태호·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농식품부 등과 함께 살펴봤다. 카쿠마 난민촌에서는 성인 1인당 한달에 6㎏의 한국 쌀이 배급된다. 영양적 요소를 고려할 때 정량은 10~12㎏이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배급하기 위해 50~60% 수준을 나눠준다. 난민이 배급소에서 일종의 주민등록증이라 할 수 있는 확인증을 제출하면 지문 인식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한 뒤 쌀, 콩, 식용유 등을 배급받는다.

남수단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2012년 난민촌으로 들어온 마왁 볼(33)은 이날 자신과 가족 등 11명을 위한 쌀 66㎏을 포대에 받아 담아갔다. 배급을 마친 뒤 정량확인 과정에서 초과된 200g정도의 쌀을 배급관이 덜어냈지만, 그는 덤덤하게 웃었다. 마왁은 “그래도 이 쌀이 있어서 가족이 버틸 수 있다. 쌀은 유일한 희망”이라며 “이곳에서는 다른 삶을 꿈꾸긴 어렵지만, 우리 가족이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박경민 기자


소말리아 난민으로 딸 넷을 부양하는 주부 파라하 압둘라이(42)는 쌀이 배급되는 매달 첫날만 기다린다고 한다. 그는 2009년 소말리아를 떠날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이 생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한 시름 덜었다고 한다. 파라하는 “딸이 어느 날 쌀포대에 그려진 한국 국기를 보고는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더라”고 했다. 이어 “먹을 게 없는 상황은 정말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난민촌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수학·영어 등 기초적인 공부를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마음껏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이날도 녹색 교복을 입은 수백명의 아이들이 세숫대야만한 밥그릇을 들고 급식소 앞에 줄을 섰다. 반찬 없이 쌀밥 위에 옥수수가 섞인 연유를 끼얹은 것이 전부지만 배식을 받고 돌아서는 아이들의 얼굴은 환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온 아돌프(14)는 “배고픔을 잊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1일(현지시간)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서 남수단 출신 난민 마왁 볼(왼쪽 첫째)이 쌀 배급량을 점검받는 모습을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오른족 둘째) 등 한국 정부와 WFP관계자가 바라보고 있다. 사진 WFP


교사 아부 하마디(34)는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난민촌 바깥으로 나가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희망도 갖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정부가 WFP를 통해 전세계 각국에 지원하는 식량은 5만톤으로 현금 지원까지 합치면 전 세계에서 16위 규모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식량 지원을 10만톤으로 2배 늘리겠다”고 선언하면서 내년부터 지원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10만톤은 약 130만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10위권이어서 식량지원을 포함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 ODA규모를 올해보다 43.2% 늘린 6조8421억원으로 책정하고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다.

문제는 식량부족을 겪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과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 발표한 ‘2022년 세계식량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극심한 식량불안’(acute food insecurity)을 겪은 세계 인구는 58개국 2억580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1억9300만명보다 6500만명(34%) 급증한 수치다. 국회 외통위원장인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정부가 식량위기 해소를 위해 지속가능한 지원을 하도록 국회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회 산자위원장인 이재정 민주당 의원도 “우리 쌀이 어려운 분께 더 큰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규모 확대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박경란 WFP 국장 “한국 식량 지원 2배 늘려, 대통령 통큰 결단”

박경란 세계식량계획(WFP) 비상대응국장이 지난 6월 23일 이탈리아 로마 본부에서 열린 연례 집행이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WFP

“윤석열 대통령의 통 큰 결정에 감사한다.”

유엔(UN)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박경란 비상대응국장은 최근 윤 대통령의 식량 지원 2배 확대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 국장은 지난달 17일 여의도 국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은 증가하고 있는데 오히려 주요 식량 공여 국가는 지원량을 줄이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지원량을 2배로 늘린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감사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취약국의 식량 지원에 앞장서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확대하는데 동참하겠다”며 “한국의 식량 지원 규모를 매년 5만톤에서 10만톤으로 2배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2018년부터 식량원조협약(FAC)에 따라 식량원조 국제기구인 WFP를 통해 예멘, 케냐, 우간다, 에티오피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 식량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 양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계획이다.

신재민 기자

박 국장은 “한국이 식량을 지원받던 국가에서 이제는 지원하는 국가로 변모한 것에 WFP도 놀라워하는 분위기”라며 “한국의 결정은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분쟁, 기후변화 등으로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다행히 한국이 모범적으로 식량 지원을 늘리기로 하면서 다른 국가의 증량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 국장은 한국인 출신으로는 WFP 본부 내 유일한 국장급 인사다. 그는 “WFP는 단순히 식량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와 직접 만나 필요한 영양성분을 파악하고 전달 후에는 사후 모니터링까지 철저히 거친다”며 “각국이 지원한 식량이 제대로 쓰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케냐 카쿠마=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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