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시진핑 리스크가 주는 교훈

고세욱 2023. 9. 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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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중국 위기가 일본과 다른 것은 1인 체제가 정책 실패 낳은 점
실용주의 외면 교조주의 회귀 시대착오에 세계 시선도 싸늘
인치와 집권층 독선의 위험 우리도 반면교사 삼아야

많은 이들이 지금 중국 경제 위기를 말한다. 부동산 거품, 막대한 부채, 수요 감소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기와 흡사하다고 한다. 하지만 외신이나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1990년대 초의 일본과 현 중국의 차이점이 있다. “국가 지도자의 중앙집권화 가속이 초래한 광범위한 경제 정책 실패가 있고 없고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바로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 리스크다.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전임 주석들은 중국의 황금기를 일궜다. 실용주의, 구동존이(다름을 인정하고 공동 이익을 추구)로 세계의 환심을 샀다. 경제의 입지도 잘 다져놨다. 미국, 유럽이 휘청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중국은 탄탄한 경기부양력으로 대응하며 홀로 세계 경제를 구하다시피 했다. 주룽지(장쩌민 주석)·원자바오(후진타오 주석) 총리는 경제를 책임지며 경이로운 국가 발전을 주도했다.

이런 유산을 물려받고도 탈을 냈다. 시 주석이 내건 대표 구호는 ‘공동부유’(모두가 잘 살자)와 ‘국진민퇴’(국영 비중 늘리고 민영 축소).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이전 정권에서처럼 실용적 자본주의 활용법 중 하나려니 했다. 그런데 교조적으로 경제에 접목했다. 부자들만 배불러선 안 된다며 부동산 규제의 칼을 뺐다. 하향평준화(공동부유)와 정부의 과도한 간섭(국진민퇴)은 알리바바, 메이퇀, 텐센트 등 세계적 빅테크들의 도약에 족쇄가 됐다. 무모한 봉쇄로 경제 활력을 잃은 코로나 사태 때에도 이를 고집했다. 비대면 시대 빅테크 진가가 발휘된 다른 선진국들과 판이했다. 2021년 7월 애플 등 미국 기술주들의 시가총액이 425조원 늘어날 때 중국 기술주들에선 333조원이 증발했다.

경제전문가를 총리로 앉힌 관례를 무시하고 3연임 때 충복을 임명하며 1인 지배체제를 굳혔지만 시진핑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코로나 봉쇄 후에도 국민들은 미래가 걱정돼 소비를 삼갔고 민간 기업들은 움츠린 채 채용문을 닫았다. 남들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 중국만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뒷북만 거듭하며 국내 1, 2위 부동산 개발업체가 부도 직전까지 갔다. 규제 완화, 기업 차별 정책 철폐, 소비 부양이 시급했지만 시 주석은 오불관언이었다.

아집만 늘었다. 청년 실업이 6월에 사상 최고인 21%까지 도달하자 이후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한술 더 떠 반간첩법으로 외국과의 교류를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나섰다. 시 주석은 실업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에게 “젊을 적에는 쓴맛을 보라(eat bitterness)”고 목청을 높였다. 주위엔 “문화혁명 기간 동굴에서 생활하고 도랑을 팠을 때 겪은 고난을 통해 허리띠를 죄는 긴축이 번영을 낳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고 역설한다(월스트리트 저널). 중국인들은 요즘 “자고 일어나니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갔다”는 걸 실감한다.

세계의 시선도 싸늘하다. 신미국안보센터의 리차드 폰테인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세계는 중국이 거침없이 부상하는 점을 우려했는데 이제는 중국 경제의 돌이킬 수 없는 쇠퇴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윌리엄 허스트 교수는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붕괴되기에 앞서 천천히 망가진다”며 중국 문제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봤다.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들은 사상 최대 수준인 16조4000억원 상당의 중국 주식을 매도했고 지난 1분기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해 동기 대비 80%나 감소했다.

중국 위기설에 맞춰 국내에선 ‘9월 위기설’이 돈다. 자영업자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9월에 각종 부채 파동으로 금융권 부실을 낳을 거란 얘기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정부는 전체 만기 대출의 92%(약 71조원)에 대해 2025년까지 만기를 연장해줬다. 긴장의 끈은 놓지 말아야겠지만 이번 위기설도 설로 끝날 것이다.

반면 국가 리더가 경직되거나 외곬일 때는 위기를 예상해도 막기 어렵다. 시진핑 중국이 이를 웅변한다. 체제가 다르고 언론의 권력 견제가 확실한 한국에겐 남 얘기일까. 대신 중국에 없는 극심한 진영 논리가 집권층 독선을 부추긴다. 자기 확신과 편향성으로 인한 왜곡된 정책 고집. 문재인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낯설지 않게 맞이하는 풍경이다. 인치의 위험은 치명적이고 반드시 위기를 초래한다. 시진핑 리스크가 주는 교훈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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