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1억뷰만큼 귀한 100만뷰

2023. 9. 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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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밴드 실리카겔의 뮤직비디오
‘틱택톡’ 뜨거운 반응… 편견
뚫고 대중 향해 달려가고 있어

가끔 ‘1억뷰가 언제 이렇게 흔해졌나?’ 싶을 때가 있다. 빌보드 차트에 한국 가수 이름이 하나도 아닌 여럿 올라 있는 걸 볼 때만큼 생경하다. 요즘 이름 한 번쯤 들어봤다 싶은 K팝 가수 대부분은 1억뷰 뮤직비디오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뉴스만 검색해 봐도 태양,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엔믹스, 에버글로우 등의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BTS나 블랙핑크 같은 인기 그룹은 1억뷰가 아닌 10억뷰 조회수 달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렇다 보니 1억뷰는 이제 달성 여부가 아닌 달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더 화제다. 2023년 9월 기준, 1억뷰를 가장 빨리 달성한 노래는 방탄소년단의 ‘버터(Butter)’다. 20시간55분 만의 달성이다. 다음 역시 BTS 차지다. 2020년 발표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1억뷰를 달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3시간25분이었다.

실리카겔이라는 밴드가 있다. 한국 밴드다. 멤버 다수가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던 2013년, ‘평창국제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결성됐다. 활동 초기 영상을 담당하는 VJ 멤버를 정식으로 두는 독특함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멤버는 몇 번의 조정을 거쳐 현재의 4인조로 자리 잡았다. 건반과 보컬의 김한주, 기타와 보컬의 김춘추, 베이스의 최웅희, 드럼의 김건재가 그들이다. 사이키델릭 록을 기반으로 한다는 평을 자주 듣지만 사실 그 어떤 장르도 실리카겔의 음악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리카겔은 그냥 실리카겔의 음악을 한다. 4인조 밴드로 가능한 멜로디와 연주, 사운드의 극한을 시험하듯 온통 비틀고 확장해 완성된 소리의 총합이 실리카겔 음악이다. 그런 이들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며칠 전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신곡 ‘Tik Tak Tok(틱택톡)’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00만을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게시물이 올라온 날짜는 8월 28일. 노래가 발표된 지 채 열흘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이들이 2021년 발표한 ‘데저트 이글(Desert Eagle)’ 뮤직비디오도 100만뷰를 넘겼다. 겹경사였다.

사실 실리카겔은 처음 등장한 이후 쭉 좋은 평가를 받아온 대표적 밴드다. 2015년 발표한 첫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 가지 시각’은 특유의 개혁적이고 용감한 사운드로 호평받았다. 이듬해 국카스텐, 장기하와얼굴 등 개성 있는 신인 밴드 발굴로 잘 알려진 EBS 스페이스 공감 ‘올해의 헬로루키’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케이루키즈’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도 이들 몫이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신인 밴드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중’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다. 개성 강한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개성을 가진 이들 음악의 탁월함을 널리 알리는 길은 요원해 보였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언급한 ‘귀 썩는 음악’은 그런 이들의 음악을 대표하는 표현이었다. 자신들의 영상에 달린 댓글에 쓰여 있었다던 이 표현은 이후 실리카겔의 음악이 가진 뛰어남과 그로 인한 낯섦을 자조하듯 쓰였다. 충분히 상처받을 만한 상황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귀 썩는 음악을 계속해 보겠다’던 이들의 자세만이 달랐다. 누가 뭐래도 곧게 자신들의 음악을 해보겠다는 포부가 그 어떤 포효보다 깊고 강하게 울렸다.

100만뷰는 그런 이들에게 10년 만에 주어진 훈장 같은 숫자다. 1억뷰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이자 이제는 드물어진 밴드 음악이 만들어낸 숫자라고 생각하면 놀랄만한 수치다. 이들의 뚜렷한 상승세는 비단 조회수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올해 각종 국내 음악 페스티벌 무대를 섭렵하고 있는 이들의 공연을 아직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밴드 음악은 이제 인기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밴드로 성공하려면 김태호 PD에게 발탁되지 않는 한 어렵다는 농담에는 보이지 않는 뼈가 있었다. 그 모든 편견 어린 소음을 뚫고 실리카겔이 달려 나가고 있다. 이것을 희망이라 불러도 된다면, 한 번쯤 그렇게 불러보고 싶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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