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전의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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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낙하산 사장'들만 한데 모으면 웬만한 공수부대를 창설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두 달 후 여야 4당 대표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공기업의 보은·낙하산 인사 문제와 관련해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임기 말까지 낙하산 인사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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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낙하산 사장’들만 한데 모으면 웬만한 공수부대를 창설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두 달 후 여야 4당 대표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공기업의 보은·낙하산 인사 문제와 관련해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임기 말까지 낙하산 인사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최근 공기업, 공공기관 이런 데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 이런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며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지만 ‘친박 낙하산’은 위세를 떨쳤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을 시킨다? 저 그런 거 안 할 것”이라며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으나 이미 빈 공약에 그친 모습이다.
김동철 전 국회의원이 오는 18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선임될 예정이다. 1961년 한전 주식회사 출범 이후 무려 62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200조원 넘은 한전의 부채 문제나 국제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을 고려한 인선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도운 공을 인정받았다. 호남 출신으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정치 이력 대부분을 보낸 그는 윤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에서 새시대준비위원회 지역화합본부장을 맡은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윤 대통령으로선 보수 정당이 다가가기 어려운 광주 광산구에서 4선 의원을 한 그가 힘을 보탰으니 사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개혁을 선언한 뒤에도 낙하산 인사 파티는 멈추지 않았다. 대표 사례로는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용기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있다. 이들 모두 국민의힘 계열 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뒤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했다.
다만 김 전 의원의 경우 전문성은 없더라도 낙하산의 폐해를 잘 알고 있는 만큼 한전의 위기를 얼마나 잘 극복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 전 의원은 2018년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맡았을 때 문재인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중단을 촉구했다. 당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문제를 지적하면서 “실력이 아닌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임명권자나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낙하산 기관장에게 과연 공정한 채용을 기대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물론 논공행상을 완전히 없애기 어려운 정치 현실이 존재한다. 이런 차원에서 김 전 의원이 국회에서 대표발의했던 ‘공공기관 낙하산인사 방지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은 제도적 해법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안은 ‘공기업의 설립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에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공기업 사장 추천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안에는 공기업 사장을 추천하는 임원추천위원회는 ‘국회의원, 정당지역위원장 등이 그 직을 사임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으면 후보자로 추천해선 안 된다’는 파격적인 조항도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김 전 의원은 한전 사장 후보로 거론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자신들 밥그릇 하나 치우는 입법을 서둘러 추진할 리 없다. 결국 갈 길 먼 제도화 전까지는 인사권을 쥔 대통령의 판단과 의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는데 극단의 이념 싸움과 편 가르기가 부각된 현재로서는 별 기대를 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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