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보단 고독함을, 안락함보단 불편함을 찾다

우성규 2023. 9. 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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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 ‘기독교강요 핵심톡톡 Q&A 30’
저술한 박경수 장신대 교수
박경수 장신대 역사신학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교내 마포삼열기념관 연구실에서 수도원 기행 30년의 기록을 모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수도원은 한때 제도권 교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다. 어두운 현실을 밝히는 등불이었고, 성인과 신학자와 설교자를 배출한 학교였으며,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구빈원이었다. 물론 늘 긍정적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일부 수도원은 극단적 금욕주의 함정에 빠져 누가 더 금식하고 고행했는지 영웅담이 횡행했고, 중세 말기엔 미신과 무지와 방탕의 산실로 변하기도 했다.


천년 넘게 이어온 수도원 영성의 현장을 돌아보려면 이처럼 빛과 그림자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대한기독교서회)를 저술한 박경수(59) 장로회신학대 역사신학 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이 분야 적임자다. 장 칼뱅의 종교개혁사를 전공한 개신교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그는 개혁주의 시각에서 수도원 영성을 돌아본다.

‘수도원, 그 현장을 가다’는 안방에서 떠나는 수도원 순례다. 사진은 이집트 안토니오스 수도원. 박 교수 제공


1993년 처음 방문한 이집트의 안토니오스 수도원에서부터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의 콥트정교회 동방정교회 그리스정교회 베네딕투스회 프란체스코회 도미니크회 시토회 맨발의카르멜회 예수회까지 박 교수의 30년 수도원 기행의 경험이 담긴 책이 출간됐다. 지난 5일 서울 광진구 장신대 마포삼열기념관 5층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수도원 영성 역시 개신교 성도들이 누려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개신교는 이전 1500년의 초대와 중세의 유산과 전통에서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초대와 중세의 수도 전통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간직하고 누려야 할 공동의 유산입니다.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릴 당시 수도원에 대한 반감이 특히 심했던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수도 전통 자체를 부인하는 건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꼴입니다. 수도원의 빛과 그림자를 비판적으로 분별하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 광야의 소리였던 세례 요한, 공생애 시작 전에 사탄의 시험을 통과한 예수님, 사역을 감당하기 전 아라비아 사막에 머문 사도 바울 등에서 알 수 있듯 사막은 포기와 은총의 땅이었다. 로마 제국의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이집트 사막에서 수도원 운동이 시작된다. 박해받던 종교에서 이제 제국의 종교로 격상되는 바로 그 시점에 복음의 본질과 십자가의 정수를 지키고자 좁고 험한 길을 스스로 찾아간 이들이 수도원 운동을 시작했다. 분주함보다는 고독함을, 안락함보다는 불편함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다. 박 교수는 30년 전 이집트 나일강과 홍해 사이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녹음기를 샘물에 빠뜨린 일화를 설명하는 동시에 2014년 이집트 성지순례 버스 테러 당시 사망한 가이드 제진수씨를 기억하는 등 후기도 책에 담았다.

그리스 거룩한 삼위일체 수도원. 박 교수 제공


그리스의 아찔한 절벽 위에 있는 메테오라 수도원을 올려다보며 박 교수는 산 위보다 산 아래를 생각한다. 수도 생활을 위해 절벽 위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역시 인간은 영적 존재임을 깨닫지만, 변화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귀신들린 아이를 고친 예수님처럼 산 아래, 즉 자신을 넘어 세상을 품고 살리는 영성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개인적 경건을 넘어선 사회적 경건의 필요성이다.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모습. 박 교수 제공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요람인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돌아보면서 가난 정결 순명의 수도자들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일하는 영성 및 자발적 가난의 정신과는 한참 멀어진 황금으로 장식된 예배당엔 못내 불편함을 느낀다. 박 교수는 “신앙의 유산을 올바르게 계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막중한 과제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이번 책은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2013) ‘개혁교회, 그 현장을 가다’(2018)에 이은 3부작 후속편이다. 수도원을 탐방한 이번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3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400장 넘는 사진과 지도, 현장 정보와 QR 코드까지 삽입돼 탐방을 위한 팁을 제공한다.


박 교수는 이와 동시에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강요 핵심톡톡 Q&A 30’도 출간했다. 이 책 역시 ‘종교개혁 핵심톡톡 Q&A 33’(2017) ‘신학 논쟁 핵심톡톡 Q&A 24’(2021)의 후속편으로 3부작의 막내다. 수천 쪽에 이르는 칼뱅의 기독교강요는 신학자나 목회자를 제외하고 일반 성도가 읽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박 교수는 칼뱅 전공자로서 최대한 눈높이를 낮춰 성도 누구나 쉽게 접하도록 30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책을 구성했다. 기독교강요(綱要)를 강요(强要)하지 않고 재밌게 시작하도록 돕고 있다.

박 교수는 칼뱅의 조력자인 스위스 로잔의 종교개혁가 피에르 비레(1511~1571)의 전기 번역서 출간도 앞두고 있다. 그는 “종교개혁이 경제 복지 출판 등 사회에 끼친 영향을 연구해 한국교회 갱신에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카타리나 쉬츠 젤, 잔 달브레 등 여성 종교개혁가들의 연구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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