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핵무기 협박 잦아진 김정은의 계산

2023. 9. 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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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군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방문해 ‘남한 영토 점령’ 훈련 계획을 점검했다. 김정은이 핵무기 사용을 특정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바로 다음 날 실시된 미사일 발사는 ‘전술핵 타격 훈련’이었다. 지난 2일에는 ‘전술핵 공격 가상 발사 훈련’을 위한 미사일 추가 발사가 있었다. 북한이 군사 기지 공격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 남한 겨냥한 전술핵 발사 훈련
북한 핵 사용 3가지 시나리오
최근 나온 대화 신호도 주목을

에버라드 칼럼

일부 평론가들은 북한이 한반도 핵무기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파멸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실제 사용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위험하다. 북한 지도부가 북한이 한국을 전술핵으로 공격하면 미국이 자국 도시의 희생을 무릅쓰고 전략핵으로 보복할 거라고 실제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을 수치화하긴 어렵지만, 가능성이 0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이 핵 공격에 나설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피해망상, 무능, 치밀한 계산이 그것이다.

북한의 피해망상은 뿌리가 깊다. 핵무기 발사는 순간의 결정이다.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빠진 북한 지도부가 특정 사건을 최악 상황으로 오판해 핵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최근 그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첫째, 한·미 연합훈련에 배치된 무기의 다양성이다. 북한군 입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무기 체제의 행동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추적해야 한다. 충분히 상황을 오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2022년 9월 8일 발표한 북한의 새로운 핵무기 운용교리다. 새 교리는 특정 상황에서 김정은의 직접적인 승인 없이도 핵무기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권한 위임은 무능에 의한 핵공격 위험성을 더욱 키운다. 북한 정권은 김 위원장의 연설에도 지적됐듯이 비효율성이 지배하고 있다. 핵공격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판과 실수의 리스크도 비례해 커진다. 종종 김정은은 한동안 종적을 감추곤 하는데, 지하 벙커에서 세상과 단절된 북한 군부가 김정은의 부재를 암살로 오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는 김정은이 건강에 이상이 왔는데 군 간부가 이를 암살당한 것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핵 공격이다. 현재 북한 정권은 수많은 난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6월 19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미·중 협상이 잘 진행된다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다. 또 북한의 경제난 때문에 많은 간부의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미래의 어떤 순간에 북한 정권 붕괴가 임박했고 유일한 탈출구는 한국 침략밖에 없다고 판단한다면 한국의 우방이 개입하기 전에 침략전을 끝내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술 핵무기로 한국의 전력을 파괴해야 한다. 또한 북한 지도부가 핵 공격으로 잃을 게 없다는 판단에 이른다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잔혹하고 비이성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방어용으로만 핵무기를 쓸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한 줄기 희망은 있다. 코로나 이후 최초로 북한의 해외 대사관이 9월 9일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행사에 외국인을 초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의와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더욱 굳건해지는 한·미·일 동맹에 맞서 북한은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북한 외교관의 정상적인 업무 복귀는 좋은 뉴스다.

이런 북한의 두 가지 다른 움직임은 정교하게 짜인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교류는 가능하지만 동시에 도발 시 파멸적 무력을 쓰겠다는 위협이다. 북한 내 강경론자는 핵미사일 사용으로 한국을 위협하고, 동시에 북한 외교관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재개하려 노력 중이다.

북한 대사관의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외부인 초대는 미사일 도발과 핵전쟁 위협의 그림자에 가려 큰 빛을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누군가는 외부 세계와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들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귀에 가 닿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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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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