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문화재전쟁] 탈라스 전투서 패한 고선지, 동·서 교류 새 물꼬 트다
세계문명사 바꾼 751년 탈라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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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 아바스 왕조-당나라 대충돌
현재의 유라시아 판도 만들어져
동양의 종이·악기 등 서방에 전수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명 꽃 피워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
20세기 ‘한인 디아스포라’ 원조격
」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은 고선지
고선지는 당나라 최대 강역을 차지하던 안서도호부 도독을 지냈다. 서기 751년 아랍 아바스 왕조와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인 탈라스 평원에서 ‘탈라스 전투’를 치렀다. 비록 고선지는 패했지만 세계 문명사를 바꿔놓은 전투로 꼽힌다.
탈라스 전투에 대한 전문 연구는 매우 적은 편이다. 고선지 관련 기록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고선지라는 이름은 당나라 역사에만 등장할 뿐 아랍 쪽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는 중국 기록도 불충분하다. 출생연도가 없고, 고구려 출신 장군인 고사계의 아들로만 전해진다.
탈라스 전투는 고구려 멸망 83년 후에 일어났다. 고선지가 태어난 것은 고구려 패망 30~40년이 지난 뒤, 중국 어딘가에서다. 아버지와의 나이 차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선지는 한국사·동양사를 뛰어넘는 가장 세계사적인 인물이다. 그를 이해하려면 한국·중국은 물론 아랍문화 확산, 중세 실크로드 고고학 등을 알아야 한다.
전투 이후 1000년간 잊혀져
고선지는 험난한 톈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을 넘어 연승에 연승을 거뒀다. 그의 유일한 패배가 탈라스 전투였다. 정작 수십 명 사절단을 이끌고 톈산산맥을 넘어 중국에서 영웅시하는 장건의 ‘서역착공’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무공이었다.
반면 탈라스 전투는 한동안 완전히 잊힌 사건이었다. 당나라와 아랍 모두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충돌을 피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탈라스 전투 이후 서역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중국은 1000년이나 지난 후에야 다시 중앙아시아로 들어갔고, 그나마도 한족이 아닌 만주족이 수립한 청나라 때였다.
아랍권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전쟁이었다. 이란 출신의 이슬람 역사가 알타바리(Al-Tabari)가 9~10세기 역사를 집대성한 『역사』에도 탈라스 전투는 빠져있다. 당시 당나라 대군을 무찌른 아바스 왕조도 이후 탈라스 계곡 너머 동쪽으로 진격하지 않았다. 탈라스를 기점으로 두 문명은 오히려 경계선을 분명히 그은 것처럼 지내게 됐다.
세기의 전투가 왜 이렇듯 철저히 잊혔을까. 의문투성이다. 한데 그 답은 중앙아시아의 토착세력에 있다.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 사이에는 실크로드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나라를 만들며 살았던 투르크계 주민이 있었다. 이들은 이 지역을 장악한 페르시아 계통의 소그드왕국을 밀어내고 세력을 키워왔다. 아랍이나 중국 모두 투르크 국가들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고선지도 부대원의 상당수를 현지 도시국가에서 지원받았다.
고선지가 패배한 결정적 원인은 투르크계 국가 카를루크의 배반이었다. 전쟁 과정도, 결과도 모두 투르크계 사람들이 좌우한 셈이다. 전쟁 직후 두 강대국 세력이 물러가고 결국 토착민이 만든 왕조가 번성했으니, 실제 승자는 바로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이었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갈등
탈라스는 매우 넓은 지역이다. 톈산산맥의 길게 이어진 산들과 그 앞의 평원을 통칭한다. 아랍권 기록을 보면 탈라스 전투는 카자흐-키르기스스탄의 국경 도시인 타라즈 주변에 위치한 탈라스 성터 앞의 벌판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타라즈는 지금도 인구가 40만이 넘는 대규모 도시라 탈라스 성터만 찾으면 된다.
그 위치를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1930년대에 활동한 고고학자 베른스탐이다. 그는 타라즈 서쪽 12㎞에 위치한 ‘주반토베’ 성터가 탈라스 성터일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발굴한 결과 고(古) 투르크문자로 ‘아틀라흐(탈라스의 또 다른 이름)’라는 글자도 나왔다.
반면 키르기스스탄 측은 자기 영토 안에 있는 ‘준토베’라는 성터가 탈라스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과 협력하여 탈라스 전투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두 나라가 서로 탈라스 전투가 자기 땅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탈라스 전투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탈라스 전투를 기점으로 현재 중앙아시아의 기반인 투르크계의 주민과 이슬람교의 국가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투르크계의 정체성은 21세기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중앙아시아 이슬람은 단순히 아랍 문명이 확장된 것이 아니다. 이슬람 문화는 투르크계 민족을 연결하는 아교풀 같은 역할을 했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는 이후 몽골과 러시아의 침략이라는 숱한 역사적 부침을 겪었지만 자기 정체성만은 잃지 않았다. 탈라스 전투로 진정한 ‘중앙아시아’가 탄생한 것이다.
탈라스 전투와 고려인 확산
탈라스 전투가 널리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문화 교류에 있다. 당시 고선지의 부대는 크게 패해서 약 2만 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14세기 아랍 기록을 살펴보면 아바스 왕조가 사로잡은 당나라 포로 중에는 제지 기술자들도 있었다. 아랍 측은 포로들을 사마르칸트로 보내 제지 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당시 고선지의 부대에는 여러 이민족이 섞여 있었다. 포로 중에는 종이뿐만이 아니라 악기·공방 등 다양한 기술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이후 근동 일대로 퍼져 나갔다. 이 중 일부는 아프리카까지 다녀와서 동아시아에 아프리카를 최초로 알려주기까지 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수많은 유민이 당나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섰다. 고선지 가족처럼 변방 군인이 된 사람들도 많았으니, 고선지의 부대에 고구려계가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른바 ‘고구려 디아스포라’가 서역으로 퍼진 셈이다.
고선지 부대가 전해준 종이가 고구려에서 개발한 만지(蠻紙)일 가능성도 제기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탈라스 전투의 진정한 의의는 이처럼 인적 교류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러한 문화 교류에서 고구려 계통 사람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몽골에서 발견된 발해 유물
고구려 후예들의 자취는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고선지 사후 약 200년 뒤에 발해가 거란에 무너졌는데, 당시 발해 유민은 몽골로 건너가서 몽골의 변경 지대를 개척하였다. 실제로 몽골의 성터 친톨고이 유적에서 실제 발해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발해 주민의 흔적이 증명된 것이다.
유라시아로 퍼진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연해주 이주를 거쳐 1937년 스탈린 시절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로 이어졌다. 스탈린의 이주정책으로 수많은 민족이 고통을 받았지만, 고려인은 강하게 살아남았고 지금도 50만 명 넘는 고려인의 후예가 중앙아시아 각국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탈라스 전투를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역사 차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탈라스 전투는 세계사를 바꾼 분기점이 되었다.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황금시대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한편 당시 번성했던 동양 문화를 아랍과 서방에 전달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1세기로 이어진 탈라스 전투
까맣게 잊힌 탈라스 전투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실크로드를 두고 영국과 러시아가 경쟁하면서 그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고선지의 탈라스 전투를 두고 러시아 역사가 바르톨드(1869~1930)가 “이 전쟁은 투르키스탄(지금의 중앙아시아와 신강성 일대)에서 두 문명이 만난 세기사적인 사건이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의 뒤를 이어 오렐 스타인은 고선지를 “동아시아의 한니발”이라 칭송했다.
세계는 지금 다시 유라시아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정세와 지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기다. 더욱이 우리에겐 고선지의 빼어난 활약과 국제감각이 절실하다. 고선지에 대한 그간의 연구 부족은 바로 우리의 좁은 역사관이 원인일 수 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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