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화나게 한 中화웨이 폰에 '하이닉스 칩'…"거래 한 적 없다"
중국 화웨이가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 자국 기업 SMIC가 개발한 7나노미터(㎚·1나노=10억 분의 1m) 반도체와 SK하이닉스가 제조한 D램을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의 수출 통제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선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가 나온다.
7일 정보기술(IT)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는 최근 7나노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5세대(5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선보였다. 블룸버그통신은 반도체 컨설팅 업체 테크인사이트에 의뢰해 이 제품을 해체 분석한 결과 SMIC가 제조한 ‘기린 9000S’ 칩이 탑재됐다고 보도했다. SMIC는 중국 1위, 세계 5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다. 테크인사이트는 이 칩에 대해 “세계 최첨단 기술보다 2∼2.5단계 뒤처진 것이며 중국 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뺨을 때리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인 TSMC 창립자인 모리스 창은 지난 3월 대만의 한 반도체 행사에 참석해 “중국의 기술은 대만보다 5~6년 뒤처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TSMC가 7㎚ 공정을 활용한 반도체를 만든 건 2018년 4월이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이 최첨단 기술보다 약 8년 뒤진 14㎚ 칩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해 왔다. 2019년부터는 화웨이와 SMIC를 블랙리스트(거래 제한)에 올려 관리했다. 하지만 이런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은 기술 격차를 8년에서 5년으로 줄인 것이다.
백악관 “안보 초점 맞춰 기술규제 계속”
중국 반도체 기술의 급성장 배경에는 중국 정부와 기업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다. 화웨이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1615억 위안(약 29조4123억원)을 투입했다. 전체 매출 6423억 위안의 25%에 육박한다. 지난 10년간 R&D 투자액은 총 9773억 위안으로 이는 알파벳(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계 4위다.
중국 정부도 적극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3000억 위안(약 54조7000억원) 규모의 ‘중국집적회로산업 투자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2014년(1387억 위안)과 2019년(2000억 위안)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에는 기존과 달리 반도체 제조 장비에 집중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미국 제재를 피해 파운드리 분야에서 ‘차이나 칩’(중국 반도체)의 추격이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선 제재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화웨이 신형 스마트폰은) 미국의 기술 없이는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SMIC가 상무부의 해외 직접제품 규칙(FDPR)을 위반했을 수 있다”며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를 방문 중인 마이클 매콜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도 이날 “SMIC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지적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SMIC 반도체를 사용했다는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이 미국의 수출 규제 실패와 규제조치 위반을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때까지 언급을 보류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라는 원칙에 맞춰 국가안보 우려에 초점을 맞춘 기술규제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미국의 제재에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중앙정부 기관 소속 공무원은 몇주 전부터 업무용 기기로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거나 사무실에 가져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이닉스 “화웨이폰 관련 경위 파악 중”
한편 메이트60 프로에는 SK하이닉스가 생산한 반도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국내 반도체 업계도 술렁이고 있다. 테크인사이트는 화웨이폰에 들어간 주요 부품 가운데 SK하이닉스의 스마트폰용 D램인 LPDDR5와 낸드플래시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고, 경위를 파악 중”이라며 “2020년 9월 이후 화웨이와 거래한 사실이 없으며 미국 수출 규제를 철저히 준수한다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중국으로 이미 유입된 하이닉스의 제품을 대리점이나 영업점 등을 통해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대량의 물량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해리·서유진·이희권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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