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YS의 단식, 이재명의 단식

서경호 2023. 9.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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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어떠한 소식이 들리더라도 그것에 연연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민주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결의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나의 호소요, 당부입니다.”

1983년 5월 18일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생명을 건 단식투쟁에 나섰다.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0명이 넘는 경찰과 정보원들이 서울 상도동 자택을 삼엄하게 포위한 가운데 단식투쟁이 시작됐다. ▶민주화 투쟁으로 구속된 인사 석방 ▶언론의 자유 보장 ▶직선제 개헌과 빈민주악법 폐지 등 민주화 5개항 요구를 내걸었다. 부인 손명순 여사가 성명서를 외국 언론사에 전화로 직접 낭독해 줬고, 외신들은 일제히 세계에 타전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로 YS의 단식 돌입을 보도한 국내 언론사는 없었다.

「 비장감 넘치는 YS 성명서 10장
민심 움직여 전두환 독재에 균열
이재명 1·2차 단식 이기적 아닌가

단식 8일 차에 강제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 진료와 음식은 단호히 거절했다. 단식 11일 차인 5월 28일, 전두환 정권이 가택연금 해제를 제안하며 외유를 권했다. YS는 “나를 해외로 내보낼 방법이 있다.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동조 단식이 국내외에서 이어졌다. 미국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일본 사회당 등의 지지 성명이 나왔다. 국내 언론도 정권의 보도지침을 우회해 ‘모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가 화제다’ 등의 방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단식 23일째가 한계였다. 탈진한 YS를 대신해 김덕룡 비서실장이 성명서를 대신 읽었다. “앉아서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단식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YS 도서관에 게시된 단식투쟁 성명서


YS의 단식은 지금 다시 봐도 비장미가 흐른다. 상도동 김영삼도서관 1층의 YS 기념 전시 공간에서 당시 성명서를 찾아봤다. YS의 손글씨가 A4용지 10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가택연금에 외부 인사의 방문도 봉쇄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국민 여러분께 전달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쓴 날짜는 5월 2일. 단식에 돌입하기 보름 전에 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리를 마쳤다. “민주주의를 향한 힘과 지혜의 결집이 중요하다”며 민주 진영에 단결을 호소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 망명 중이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즉각 호응했다.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현지 항의집회에 참석했으며 뉴욕타임스에 기고도 했다. 이듬해 YS와 DJ가 힘을 합쳐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했고, 1985년 2월 12대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으로 이어졌다. YS의 단식이 철옹성 같던 전두환 독재에 균열을 냈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정기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국회 다수당 대표가 단식이라니,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단식 이유가 궁금해서 당시 발언 전문을 찾아봤다. “정권의 편 가르기에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른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합니다.” “진영 대결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이념이 민생 위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까진 동의하는 국민이 꽤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1 야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그 스스로도 인정했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국민의 삶이 이렇게 무너진 데는 저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6년에도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성남시 등 경기도의 부자 지자체로 가는 재정 일부를 가난한 지자체로 돌리는 개편안이 지방자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의하기 힘들었다. 참 이기적인 주장이었다. “이념보다 민생! 갈등보다 통합! 사익보다 국익!” 국회에 설치한 단식 텐트에 내건 구호다. 이 아름다운 말들을 먼저 정기국회에서 구현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단식도 결국 검찰 수사를 앞둔 이기적인 ‘방탄 단식’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글=서경호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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