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부친도 친일파 아니냐'는 주장, 의도는 다른 데 있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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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박민식 장관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백선엽이 스물 몇 살 때 친일파라고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인 문용형 그분도 거의 나이가 똑같다. 그 당시 흥남시 농업계장을 했다"라며 "흥남시 농업계장은 친일파가 아니고, 고 백선엽 만주군관학교 소위는 친일파냐?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한쪽은 친일파가 되어야 하고 한쪽은 친일파가 안 되어야 하느냐?"고 발언했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에 수록한 친일파는 1006명이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인물은 4389명이다. 일제강점기나 해방 직후의 신문 기사나 문헌들을 읽다 보면 친일파로 충분히 규정되고도 남을 만한데도 진상규명보고서나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는 인물이 허다하다. 진상규명보고서와 <친일인명사전>이 모든 친일파를 전부 다 수록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친일파 연구가 아직 미진함을 보여준다. 연구에 대한 지원도 미약하고, 연구를 제약하는 정치적 요인들도 만만치 않다. 설령 연구가 완성된다 해도, 그것이 친일 청산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1006명과 4389명밖에 수록되지 못했지만, 향후 우리 사회의 역량이 증대된다면 일선 시·군청 중간 간부들의 친일도 얼마든지 규명될 수 있다.
그처럼 친일파 조사·연구를 확대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런 경우에 유의할 것이 있다. 비슷한 지위에 있었으니 친일 수준도 비슷했으리라고 단정하면서 친일의 범위를 무조건 확장시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소위나 중위 같은 친일 군인과 같은 직급의 행정관료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박민식 장관의 태도는 친일파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화시라면 소위·중위와 동급 공무원을 그렇게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전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장 병력 100명을 지휘하는 장교의 역량과 행정 인력 100명을 지휘하는 관료의 역량이 전시나 비상시에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가, 백선엽은 일반 장교가 아니라 항일 투사를 토벌하는 특수부대 장교였다. 백선엽은 동일 연령대의 행정관료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대형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인물이었다.
당장 시급한 것은 백선엽 같은 명명백백한 친일파에 대한 청산을 서두르는 일이다. 박민식 장관은 이런 인물에 대한 청산을 훼방하고 있다.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하는 일에 앞장선 인물이 박 장관이다. 그런 박민식 장관이 친일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듯한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너도 친일파 아니냐?'는 주장
박 장관은 7월 6일 언론 인터뷰에서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직을 걸겠다'고 맹세했다. 백선엽같은 명명백백한 친일파에 대해서까지 그런 맹세를 한 그가 백선엽을 보호할 목적으로 친일 증거가 나오지도 않은 문용형의 실명을 거론하며 친일 프레임을 씌웠다. 매우 경솔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박민식 장관의 행동은 한 개인의 적극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 현대사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국회 반민특위가 국민들의 전폭 지지하에 친일파 체포 작업을 벌이던 1949년에도 박 장관처럼 '너도 친일파가 아니냐?'며 친일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친일파들이 있었다. 이런 공격이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능을 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 특히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1949년 1월 8일, 대표적 친일파인 박흥식이 반민특위에 검거됐다. 박흥식 체포가 반민특위 제1호 체포였다. 박흥식 체포를 신호탄으로 최남선·이광수 같은 친일파들이 줄줄이 체포됐다. 친일파가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들의 열기가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자, 일부 친일파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전 중추원 참의 방의석은 밀항 직전에 붙들렸고, 전 수도청 부청장 이구범은 밀항 직전에 부산 시민의 제보로 체포됐다. 밀항 대신, 군대로 눈길를 돌리는 친일파들도 있었다. 상당수의 일제 경찰들은 헌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헌병사령관 전봉덕이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이 이렇게 움츠려드는 가운데, 3월 초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너도 친일파 아니냐?'는 주장이 친일파 진영에서 흘러나왔다.
그해 3월 초, 김태선 서울시경 국장과 최운하 시경 사찰과장이 내사에 착수했다. 반민특위 위원들에 대한 뒷조사였다. 그들이 찾아낸 것이 반민특위 부위원장인 무소속 김상돈(1901~1986) 의원이 일제 때 총대(總代) 일을 했던 이력이다. 지금으로 치면 동장이나 이장 일을 한 경력을 찾아낸 것이다.
그해 3월 11일 자 <조선일보> 기사 '모략은 참으로 유감'에 따르면, 9일 자 <평화신문>에 김상돈이 반민족행위자라는 기사가 실렸다. "왜정 하에 정(町) 총대를 13년이나 지내 먹었다"는 기사였다. 오늘날의 동(洞)에 해당하는 곳에서 13년이나 총대 일을 '지내 먹었'으니 친일파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1948년 9월 22일부터 시행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 제3조는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를 사형·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 징역에 처하고 재산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고 규정했다. 단순히 살상·박해한 게 아니라 악의적으로 살상·박해한 자를 처벌한다고 했다. 친일을 조금만 했어도 처벌한다는 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조심성은 제4조 제9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제9호는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이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를 10년 이하 징역이나 15년 이하 공민권 정지에 처하는 한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고 규정했다.
관청이나 공공기관에 몸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아니었다. 민족에 해를 가한 일이 있어야 했다. 해를 가했다고 무조건 처벌하는 것도 아니었다. 악질이어야 했고 그 악질이 현저해야 했다.
박민식 발언을 흘려 들을 수 없는 이유
친일파들은 그런 조심성에 개의치 않았다. 김상돈이 총대 일을 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그들은 이를 대통령 이승만에게까지 보고했다. 그러더니 3월 19일, 김상돈 파면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친일파들이 친일청산을 하겠다며 벌인 일이었다.
파면 동의안은 부결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김상돈도 '우리 과'라고 알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친일파들은 그런 식의 공격으로 친일청산에 혼선을 끼치며 반민특위를 조롱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 다음에, 벌인 일이 있다. 6월 6일 경찰 병력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일이 그것이다. 결국 친일파들은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회의원의 주장이 아니라, 국가보훈부 장관의 주장이다. 단순한 국가보훈부 장관의 주장도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이념전쟁을 일선에서 지휘하고 김원봉·여운형·정율성 같은 독립운동가를 공격하는 이색적인 국가보훈부 장관의 주장이다. '문재인 아버지도 친일파 아니냐?'는 박민식 장관의 발언을 흘려 들을 수 없는 이유다.
1949년의 반민특위 와해는 친일청산을 저지하는 세력이 볼 때 대단한 성공 사례다. 이런 성공 사례를 윤석열 정권이 참고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윤 정권이 강제징용 제3자 변제를 관철시킨 과정도 박정희 정권이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과정과 거의 흡사했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949년 3월에 친일파들이 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논리를 국가보훈부 장관이 들고 나온 사실은 윤석열 정권의 친일청산 훼방 및 친일파 백선엽 비호가 좀더 반역사적인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예고하는 조짐이라고 해석돼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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