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한 마음에... '시'를 이렇게 써먹었다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최은경 기자]
시집을 읽어야겠다고 벼른 적이 있다. 갑자기 웬 시? 문학적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제목을 잘 뽑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마음에 남는 시인의 한 줄이 꽤나 멋져 보였다. 짧고 압축적인 문장, 곰곰이 숨은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시 한 줄이 어찌나 있어 보이던지. 그런 폼 나는 제목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에 관심이 갔다. 시적인 제목에 대한 로망 때문에.
얄팍한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시인도 아니고, 시인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시인의 문장을 흉내내려 하다니.
▲ 시인도 아니고, 시인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시인의 문장을 흉내내고 싶었다. |
ⓒ 최은경 |
일일이 나열하긴 어렵지만 한때 유명 시를 패러디해서 짓는 제목들도 꽤 있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대표적. 얼마 전 물리학자 김상욱씨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도 냈더라. 보자마자 윤동주 시인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목이 연상되는 게 나뿐만은 아닐 터.
잘 알려진 시이거나 화제가 된 시 등이 그 대상이 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경향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책도, 시도 읽지 않는 시대라서 그런가. 시집 몇 권 읽는다고 시인처럼 쓸 수는 없었지만 시적인 제목을 뽑는 재미는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간 어떤 시를 제목에 써먹었을까. 찾아보니 이런 것들이 눈에 띄었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꽉 찬 냉장고... 통장 잔고를 잃고 살을 얻었네 https://omn.kr/1muq2
<풀꽃>, 나태주,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 조금 떨어져 보아야 안다, 아이도 그렇다 https://omn.kr/1jaty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워킹맘이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https://omn.kr/frzc
지금 10~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40대 이상은 알 만한 시들이다. 유명 시의 문장을 약간 비슷한 문장으로 바꿔 단 경우다. 혼자만 몇 번 '근사하다'고 생각했던 시인의 문장 따라하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뉴스 제목으로 시적인 표현은 독자의 시선을 끄는 문장이 아니라는 걸 자주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각보다 조회수가 안 나왔다. 독자들은 상징이나 은유보다 대놓고 드러내놓고 말해주는 제목을 더 선호했다. 떠먹여 주는 걸 좋아했다.
'실망스러운 놀면 뭐하니, 나영석에게 배워라', '삼척 사는 중학생인데요, 등굣길이 이모양입니다', '몇 학번이냐고요? 대학 나온 사람만 보십시오' 등의 사례에서 보듯 직관적인 제목들은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부터 달랐다. 새로고침을 하기 무섭게 숫자가 확확 늘었다.
▲ 이런 사진 보면 시 한 문장 생각나지 않나요? 글도 그런 글이 있습니다. 시심을 부르는 글. |
ⓒ 최은경 |
생각해 보면 시와 제목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간결하고 압축적이다. 박연준 시인의 말처럼 시가 '생략에 능하고 설명이라면 질색을 하는 장르'라면 제목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독자들은 이런 시 언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무슨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암시적인 제목은 자주 독자의 외면을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분식집 떡볶이 같은 존재랄까. 마라탕에 길든 아이들이 잘 찾지 않는.
물론 100%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시아버지에게 올리는 믹스커피 한 잔', 이 제목이 시적인가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글이 포털에서 믿을 수 없는 조회수를 기록했던 적도 있으니까.
더러 독자의 외면을 받아도 자연스럽게 문장이 떠오르는 시적인 제목이 있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람 마음을 은근하게 울리는 문장이 좋아서다. 시도해 볼 만한 글이 있다면, 글에 어울린다면, 맞는 감성이라면 일단 제목을 달고 본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공들였을 시적인 제목을 발견하면, 그런 감성의 제목을 발견하면... 뭐랄까. 오랜만에 내면이 '딴딴한'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살아있는 한 걷고, 걷는 한 살아있다' 이 제목을 봤을 때도 그랬다. 산책에 대한 글을 이렇게 근사하게 한 문장으로 뽑아내다니. 한 줄의 시 같았다. 덥석 외우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자꾸 입으로 소리 내어 되뇌었다.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고 박연준 시인도 말했듯 제목도 그런 게 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은 제목. 시적인 제목이 그랬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그렇다. 그러니 시적인 제목도 외면하지 마시고 한번 소리 내어 읽어주시라. 말하기 전과 후의 느낌은 분명 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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