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이유도 모르는 해촉, 이 기이한 처분 중지할 곳은 법원뿐"
[신상호 기자]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
ⓒ 남소연 |
"직위가 박탈되는 과정에서 나의 입장을 소명하는 청문 기회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나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가 근원적으로 부정되었습니다."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7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해촉 집행정지 신청 재판에서 한 말이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해촉안을 재가하면서 해촉됐다. 내년 7월까지 임기였던 그는 KBS 사장에 이어 또다시 중도 퇴임하게 됐다. 정 전 위원장은 해촉 직후 법원에 해촉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이날 재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위원장은 그간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8월 17일 언론이 일제히 해촉 사실을 보도하였을 때 처음으로 해촉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1시간여 지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처 직원이 전달해준, 대통령 명의의 방송통신위원회 해촉 통지문을 통해서 해촉 사실을 공식적으로 전달받게 됐다"고 밝혔다.
정 전 위원장은 이어 "해촉 통지문 어디에도 해촉 처분에 이르게 된 구체적 근거와 이유는 없었다"면서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직위가 박탈되는 과정에서 나의 입장을 소명하는 청문 기회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가 근원적으로 부정됐다"고 항변했다.
그는 국회에서 해촉 사유를 묻는 질문에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이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사실을 거론하며 "저의 해촉 사유를 해촉 통지문을 보낸 기관의 직원들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저는 과연 무슨 이유에서 해촉된 것인지, 정말 알고 싶다"고 말햇다.
이어 "이런 기이한 '해촉' 처분을 진정 실효있게 중지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법정 뿐"이라면서 "이 법정에서조차 민주주의의 정당한 절차와 저의 권리를 박탈하는 권력 집단의 횡포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룩해 놓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앞날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아래는 정 전 위원장이 재판정에서의 발언 내용 전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직에서 해촉되는 모든 과정에서 저의 입장을 이렇게 짧게나마 진술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주신데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8월 17일 오후 4시 언론이 일제히 저의 해촉 사실을 보도하였을 때 저는 처음으로 해촉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1시간여 지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처 직원이 전달해준, 대통령 명의의 방송통신위원회 해촉 통지문을 통해서 해촉 사실을 공식적으로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촉 통지문 어디에도 해촉 처분에 이르게 된 구체적 근거와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촉'이라는 최종적이고 극단적인 조치로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직위가 박탈되는 과정에서 나의 입장을 소명하는 청문 기회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나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가 근원적으로 부정되었습니다. '해촉' 전 과정은 이처럼 해촉의 근거도, 이유도, 청문의 기회도 사라진 유령같은 것이었습니다.
사흘전인 9월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장위)에서는 저의 '해촉'의 사유를 묻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저의 해촉 사유를 해촉 통지문을 보낸 기관의 직원들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저는 과연 무슨 이유에서 해촉된 것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이런 기이한 '해촉' 처분을 진정 실효있게 중지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법정 뿐입니다. 이 법정에서조차 민주주의의 정당한 절차와 저의 권리를 박탈하는 권력 집단의 횡포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렇게 많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룩해 놓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앞날은 암담할 수 밖에 없습니다.
15년 전, 저는 KBS 사장직에서 해임되었고, 바로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기각되었습니다. 그 뒤 4년여에 걸친 오랜 본안소송 끝에 해임취소 판결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나 실효적인 회복은 불가능해진 상태였으며. 그 재판 과정에서 나의 개인적인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루었습니다. 그 뒤 정권이 바뀌면서 공영방송 사장이 바뀌는 악순환은 그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주시고, 당연히 지켜야 하는 민주주의 절차마져 무시하는 권력의 횡포에 대해 준엄한 심판으로 정의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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