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대체재로 주목받지만…지식산업센터 요즘 분위기는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서울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6번 출구로 나와 안쪽으로 걸으면 ‘수출의 다리’가 등장한다. 출퇴근 시간 서울 시내에서 가장 막히는 도로 중 하나로 악명 높은 곳이다. 수출의 다리 아래 건널목을 지나 고개를 들면 번듯한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현대지식산업센터 가산퍼블릭 공사 현장이다. 지식산업센터의 성지라고 불리는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인근에서 보기 드문 신축 지식산업센터다.
오는 10월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공사 진행 상황은 사실상 마무리 수준이다. 대지면적 약 3만㎡, 연면적 약 25만㎡ 지하 5층, 지상 27층 3개동으로 구성됐다. 주변 지식산업센터와 비교해도 규모가 상당하다.
63빌딩보다 더 큰 건물로 2020년 분양 당시 화제를 모았던 현대지식산업센터 가산퍼블릭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무리했다. 분양 시점만 해도 준공이 되면 상당한 프리미엄(웃돈)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이곳 외에도 가산디지털단지 내 신규 지식산업센터 공급이 지속되며 지식산업센터 투자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현재 전국 지식산업센터의 약 8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 중 가산디지털단지가 있는 금천구에는 서울 지식산업센터의 약 40%가 자리 잡고 있다. 3~4년 전 부동산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점으로 인기를 끌었던 지식산업센터지만 최근에는 금리 인상 한파를 감내하지 못하는 투자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가산디지털단지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나 지식산업센터에는 ‘빠른 입주’ ‘급매물’ 등이 적힌 문구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가산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가산퍼블릭의 경우 분양 당시 가산동에서 흔치 않은 신축 지식산업센터라는 점과 함께 워낙 규모가 커 화제를 모았지만 준공을 앞둔 지금은 무피(프리미엄이 없는 물건) 매물도 나오고 있다”며 “2~3년 전과 비교해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한때 알짜 투자처로 인기를 모았던 지식산업센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식산업센터는 1990년대부터 서울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형 공장을 말한다.
벤처기업 붐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공장’이라는 명칭 탓에 부정적인 시선도 적잖았다. 2010년대 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파트형 공장 대신 지식산업센터라는 새 이름을 달면서 대기업 계열사, 협력업체 등이 대거 입주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공급량이 증가했다. 특히 주택 시장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식산업센터는 틈새 수익형 부동산 상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금리 인상과 함께 공급 과잉 영향으로 거래량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금리 인상 직격탄에 공급 과잉까지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거래량은 1024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하반기(2611건) 대비 절반 넘게 감소했다.
2020년 상반기(2199건) 이후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거래량은 2021년 상반기(3470건)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지난해 하반기까지 계속해서 반기별 거래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수도권에서 거래량이 가장 크게 줄어든 곳은 서울이다. 2021년 상반기 거래량은 1085건에 달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169건으로 크게 줄었다.
지식산업센터는 지난 2020년부터 부동산 규제 반사이익으로 인기를 끌었다. 아파트와 달리 전매 제한 등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아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등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또 주택담보인정비율 70~80%까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직장인들의 ‘영끌 투자처’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2022년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되고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20년 당시 2%대였던 대출 금리가 2~3배 이상 오르며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호황기에 착공에 들어간 지식산업센터들이 하나둘 준공되며 공급량도 대폭 늘었다. 이 상황에서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져 공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해 역시 분위기는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다른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매매 거래량은 총 233건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618건) 대비 62.3% 하락했다. 거래 금액은 3550억원에서 1202억원으로 66.2%가량 줄었다.
직방 측은 “올해 주택 시장의 경우 거래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회복되고 있지만 지식산업센터는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은 어떻게
지식산업센터도 입지 따라 양극화
관건은 앞으로다. 지식산업센터 시장 전망은 크게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수도권 오피스 시장 활황으로 지식산업센터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는 투자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오피스 시장 공실률은 1.8%로 전분기 대비 0.9%포인트 추가로 하락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식산업센터는 오피스를 대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식산업센터는 오피스 대비 임대료가 저렴하면서도 최근에는 부대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다. 오피스 임대 수요가 지속해서 늘어나면 지식산업센터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오피스 시장과 지식산업센터는 업무용 시설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성격이 완전 다르다는 분석이다. 현재 서울 내 오피스 시장에서도 임차 수요가 활발한 곳은 ‘프라임 빌딩(주요 도심 권역 내에 위치한 연면적 3만㎡ 이상의 건물)’이다. 반면 지식산업센터는 호수별로 나눠졌다는 점에서 우량 임차인을 확보할 수 없다.
부쩍 늘어난 공급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승인받은 전국 지식산업센터는 1511개다. 2021년 7월에는 1247개였다. 2년 만에 약 20% 가까이 증가했다.
다만 수도권에서 거래되는 평균 거래금액만 놓고 보면 오히려 오르는 추세다.
직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당 거래 금액은 558만1000원이다. 직전 반기(496만4700원)보다 12.4% 상승했다.
직방 측은 “올해 상반기 들어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역세권 등 입지가 우수하고 오래되지 않은 지식산업센터 위주로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늘어난 공급량과 오피스 공실률 감소, 줄어든 거래량과 평균 거래 가격의 상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지식산업센터 역시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입지나 건물 규모, 준공연도, 각종 부대시설 등에 따라 지식산업센터 역시 향후 전망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성수동에 위치한 신축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성동구 성수동1가 ‘포휴’는 올해 2월 7층 전용 107.71㎡가 21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전용면적 ㎡당 가격은 1968만원으로 2000만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성동구 성수동2가 성수역에스케이브이원타워 전용 80.56㎡ 역시 올해 5월 9층 매물이 15억원에 거래됐다. 전용면적 ㎡당 가격은 1862만원에 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 나온 마이너스 프리미엄이나 프리미엄이 없는 매물은 단시간에 소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일부 기업이 이 같은 매물 중 급매를 먼저 소화할 것으로 보이며 투자자라면 금리가 안정화되고 공실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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