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하루키, 40년 전 미완성 소설 다시 꺼내다

김남중 2023. 9. 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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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768쪽, 1만9500원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설치된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판매대에서 한 여성이 벽에 걸린 작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무라카미 하루키(74)의 새 소설이 출간됐다.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 만에 나온 신작 장편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한국에서도 예약판매만으로 3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하루키가 31세이던 1980년 한 문예지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400자 원고지 150매 분량의 중편소설을 40년이 지나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단편이나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하는 일은 소설가들에게 드물지 않다. 하루키는 71세였던 2020년 3월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고 한다.


1980년이라면 하루키가 데뷔한 이듬해다.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나왔다. 당시 하루키는 도쿄에서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데뷔 후 첫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출간한 게 1982년이다. 그러니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하루키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쓴 완벽한 초기작에 해당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열일곱 살 소년과 열여섯 살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된다.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청년문학을 상징하던 하루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하루키 문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리고 하루키가 왜 여러 번 이 소설을 고쳐쓰려고 했는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 긴 소설을 읽어가도 좋겠다. 하루키는 잡지에 발표한 소설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단행본으로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쓴 소설 가운데 책이 되어 나오지 않은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그러면서도 하루키는 “이 작품에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고, 고쳐쓸 생각을 계속 가졌다.

하루키는 ‘작가 후기’에서 1985년 발표한 초기 대표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개작 시도였다고 밝혔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스타일리시하고 냉소적인 의식 세계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무의식 세계 ‘세계의 끝’이라는 두 세계를 나란히 펼쳐 보인다. ‘세계의 끝’에는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잘라 버려야 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그 비현실의 도시 역시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실세계에서 만난 소녀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 안이야.”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대역에 지나지 않아. 흘러가는 그림자 같은 거야.”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 소년은 그림자를 버린다.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대해 자신이 미완성으로 여겼던 소설에 대한 한 가지 대응이긴 했지만, 다른 형태의 대응이 또 있어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적절한 결말을 냈다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키가 두 세계를 끌고 어떤 결말로 데려가는지 주목하면서, 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겠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됐다. 하루키는 1부를 완성하고 반 년 정도 원고를 묵혀두는 사이에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2부와 3부를 추가로 썼다고 한다. 2부에서는 소년이 마흔다섯 살이 되어 시골 마을에서 도서관 관장이 된다. 그리고 도서관에 매일 오는 한 소년에게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려주게 된다. 그 소년 역시 그 도시에 가고자 한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2부 이후로 어른이 된 소년과 또 다른 소년 이야기로 바뀐다.

3부에서는 주인공이 벽에 둘러싸인 도시를 떠나는 장면이 묘사된다. 첫사랑 소녀를 만나러 그 도시에 들어갔던 주인공이 마침내 소녀를 향해 “안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깥세계에 있는 분신(그림자)이 자신의 용감한 낙하를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믿으며 벽을 넘는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벽, 어쩌면 스스로 마음 속에 지은 벽, 가설과 공포로 구축된 벽….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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