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해야 할 의사가… 마약류 셀프처방 의사 연간 8000명

신은진 기자 2023. 9.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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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을 악용해 의료용 마약류를 셀프 처방하는 의료인이 매년 8000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사회 전반의 마약류 유행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감시·감독해야 할 의사가 권한을 남용, 의료용 마약류를 '셀프처방'한 사례가 매년 2만5000건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류 셀프처방 이력이 확인된 의사는 연간 8000여 명으로, 처방 이력이 있는 4명 중 1명은 상습 셀프처방을 하고 있었다.

의료용 마약류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하는 필수 의약품 중 하나로, 임상현장에서 수술 후 통증, 암성통증 조절과 함께 신경병성통증, 근골격계통증 등의 비암성통증 조절을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약물이다. 대표적인 의료용 마약류로는 청소년 오남용으로 논란을 빚은 팬타닐을 비롯해 옥시코돈, 부프레노르핀 등이 있다. 진통 효과는 좋지만 그만큼 중독성, 의존성이 강해 매우 신중히 사용해야 하는 약물로 분류된다. 펜타닐의 경우, 인체용 의약품 중 가장 강한 합성 오피오이드(아편성 진통제)다.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100배 강하지만, 중독성과 환각 효과도 헤로인 50배, 모르핀 80배 이상이라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사람도 굉장히 주의해야 하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런데 일부 의사들은 '셀프처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의료용 마약류 셀프처방 이력이 확인된 의사는 총 1만5505명이었다. 이는 2022년말 기준 전체 활동 의사(11만2321명)와 치과의사(2만8015명)의 약 11.0%에 이르는 숫자다.

연도별로는 ▲2020년 7795명 ▲2020년 7651명 ▲2022년 8237명 ▲2023년(1~5월) 5349명으로, 3년 5개월 간 총 2만9032명이 총 9만868건, 알약 기준 321만3043개의 마약류 의약품을 셀프처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처방건수는 ▲2020년 2만5884건 ▲2020년 2만5963건 ▲2022년 2만7425 ▲2023년(1~5월) 1만1596건이었다.

이들 중 2062명(13.3%)은 2020년 이후 올해 5월까지 매년 빠짐없이 마약류를 셀프처방한 이력이 확인됐고, 2000명(12.9%)은 3년에 걸쳐 셀프처방 이력이 확인됐다. 이를 합치면 셀프처방 이력이 확인된 의사 4명 중 1명은 거의 매년 상습적으로 셀프처방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의사들이 셀프처방한 마약류를 성분별로 살펴보면, 처방건수로는 공황장애시 복용하는 항불안제가 가장 많아 전체 처방건수의 37.1%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불면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졸피뎀이 32.2%, 식욕억제제 19.2% 순이었다. 처방량으로 보면, 항불안제가 37.7%, 졸피뎀 19.8%, 식욕억제제 18.8% 순이었다.

최연숙 의원실이 확인한 결과, A요양병원 의사는 지난 한 해만 마약성 진통제와 졸피뎀, 항불안제 등 의료용 마약류 총 16만 정을 셀프처방했다. 이는 하루 평균 440정을 매일 먹어야 하는 양이다. 이에 경찰과 식약처는 오남용 정황이 분명하다고 봤지만,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사실도 확인됐다.

마약류 셀프처방에 대한 점검과 제재가 미흡한 것은 최근 3년간 점검과 수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3년간 식약처가 의료용 마약류 셀프처방을 점검한 인원은 2020년 26명, 2021년 16명, 2022년 19명으로 3년간 61명에 불과했다. 이중 수사 의뢰를 한 경우는 2020년 19명, 2021년 5명, 2022년 14명 등 38명에 불과했다. 15명이 송치됐고, 불송치 15명, 수사중인 인원은 8명이었다.

당국의 점검과 단속이 느슨한 사이에 마약류 셀프처방은 특정 전공과목이나 병원 구분없이 만연해 있는 것도 확인됐다. 마약류 셀프처방 의사를 의료기관별로 구분하면, 2022년 기준으로 개인 의원에 속해있는 의사가 5415명으로 가장 많았고, 종합병원 1101명, 상급종합병원 701명, 병원 499명, 치과병원과 치과의원이 226명, 공중보건의료업 122명, 요양병원 114명, 한방병원 59명 순이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눈에 띄었다. 상급종합병원의 셀프처방 의사수는 2020년 622명, 2021년 546명, 2022년 701명, 2023년 5월 기준 416명으로 연평균 669명이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 1곳에서만 2020년 114명, 2021년 79명, 2022년 99명, 2023년 5월 기준 49명의 의사가 셀프처방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전국의 상급종합병원은 현재 45곳, 병원 1곳당 수련의와 전공의를 포함해 대략 500여 명의 의사가 근무하는 것을 감안하면 해당 병원에서는 의사 5명 중 1명이라는 높은 비율로 마약류 셀프처방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약류 의약품 처방을 한 의료기관 중 셀프처방이 발생한 의료기관을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종합병원 376개소 중 242개소(64.4%), 병원 1707개소 중 337개소(19.7%), 의원 3만2627개소 중 5189개소(15.9%)가 셀프처방을 하고 있다. 이중에는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이 속하는 공중보건의료업도 521개소 중 94개소(18.0%)가 포함됐다. 정부가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셀프처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연숙 의원실에서 국립대병원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병원 전산시스템으로 마약류 셀프처방을 자체적으로 막은 병원은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일부에 불과했다.

최연숙 의원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긴 하지만, 마약류 셀프처방을 금지한 병원이 있다는 것은 병원 내부적으로도 마약류 셀프처방의 위험성과 제재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의사들의 마약류 오남용은 본인 문제일 뿐 아니라 환자의 진료권 침해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인 만큼 의료용 마약류 셀프처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 대부분은 의사의 마약류 의약품 셀프처방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연숙 의원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의사의 마약류 의약품 자가처방(셀프처방)’ 정당성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01명 중 66.8%가 의사의 마약류 셀프처방을 제한하는데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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